[증시 대책의 조건] (종합)
"저평가 해소만으론 부족"…'돈 머무는 시장' 만들어야

정부가 주주권 보호와 불공정거래 근절 등 증시 정상화 대책을 추진해왔지만 시장의 수급 불안과 투자자 신뢰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증시 급락으로 기존 정책의 한계가 드러난 만큼 이재명 대통령이 예고한 추가 대책에는 투자 자금이 안정적으로 유입되고 장기간 머물 수 있도록 하는 근본적인 활성화 방안이 담겨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그동안 정부가 증시 저평가 해소에 집중하면서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어올리는 성과를 거뒀지만 이를 지속적인 투자수요로 연결하는 정책은 상대적으로 부족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투자 매력이 높아지더라도 시장이 흔들릴 때마다 투자자금이 빠져나간다면 증시 정상화의 효과가 지속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15일 코스피는 외국인의 대규모 순매도 속에 7.57% 급락했다. 대외 악재가 직접적인 원인이었지만 외국인 매도 충격에 흔들리는 국내 증시의 취약성이 다시 부각됐다. 주가 상승기에는 투자 자금이 몰려도 급락 시 이를 받아줄 안정적인 매수 기반이 충분한지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다.
증시 활성화의 기준도 달라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주가를 끌어올리거나 거래를 늘리는 것만으로는 개인투자자들이 국내 주식을 장기적인 자산형성 수단으로 선택하도록 만들기 어렵다.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상장지수펀드) 도입이나 국민연금 리밸런싱 유예 등 주가 부양을 위한 정책들이 대표적이다. 이와 같은 단기적인 부양책이 아닌 투자자가 위험에 상응하는 수익을 기대하고 시장 변동성이 커져도 투자를 지속할 수 있는 여건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추가 대책은 국내외 투자자금의 유입과 장기보유를 촉진하고, 투자자가 체감하는 비용과 불편을 줄이는 방향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정책의 성과 역시 단기적인 지수 상승이나 거래대금보다 투자 저변 확대와 수급 안정, 장기 투자성과 개선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부동산엔 '장특공', 주식엔?…장기투자 유인 늘려야

최근 증시 변동성이 커지면서 투자자들의 자금이 대거 이탈하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어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장기 투자자금을 끌어들여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부동산 장기특별공제(장특공)와 같이 주식 장기투자를 유도할 수 있도록 퇴직연금 혜택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2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자본시장 선진화 추가 대책으로 장기 투자자금을 끌어들일 세제 혜택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장기 투자자금의 기반이 되는 퇴직연금의 혜택을 늘려 안정적인 수급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측면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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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증시 변동성이 커지면서 장기투자 자금 유입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김준석·장근혁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난 7월 '주식시장 변동성 상승의 배경 검토' 보고서에서 "주가 변동성은 기업의 가치를 발견해 나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불가피한 특성"이라며 "다만 무가치한 정보, 과잉반응·군집적 매매 등 기업 본질가치 변화와 무관한 변동성은 불필요하며 주식시장의 기능을 저해하고 신뢰도를 떨어트린다"고 말했다.
따라서 불필요한 단기적 변동성을 완화하는 정책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이를 위해선 국내 장기 기관투자자의 기반을 확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장기 기관투자자는 단순히 국민연금과 같은 거대 공적연금의 덩치를 늘리는 것뿐만 아니라 퇴직연금 등을 통한 개인들의 장기투자 자금을 토대로 확대될 수 있다.
국내 주식 투자하면 오히려 '손해'…장기보유 인센티브도 '부족'

하지만 현행 퇴직연금 세제 혜택은 투자자들을 유인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퇴직연금 계좌에서 국내 주식형 펀드에 투자하면 오히려 손해를 보는 상황이다.
일반 주식계좌에서 국내 주식형 펀드를 매매하면 그 차익에 대해서는 비과세하지만 연금계좌에서는 3.3~5.5% 세금(연금 수령시)이 붙는다. 연금계좌는 운용수익 전액을 과세하는 특성 때문이다. 예금·국내 주식형 펀드 등 어떤 상품에 투자했는지 따지지 않고 원금 대비 늘어난 수익에 대해서만 세금을 매기는 구조다.
이 때문에 개인투자자들은 퇴직연금 계좌를 해외 주식형 펀드에 투자하는 용도로 활용하는 추세다. 일반 주식계좌에서 해외 주식형 펀드에 투자하면 매매 차익에 15.4%를 과세하지만 퇴직연금으로 투자하면 세금 부담이 크게 낮아진다. 게다가 세금을 나중에 내는 과세이연, 여러 상품 간 손익을 합산해 계산하는 손익통산 혜택까지 누릴 수 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이미 투자자들 사이에선 퇴직연금에 국내 주식 상품을 넣으면 불리하고 해외 상품을 투자하는 게 더 유리하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며 "국내 장기투자 자금을 끌어들여야 할 퇴직연금 계좌가 오히려 해외로 자금 유출을 부추기고 있는 꼴"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퇴직연금 계좌에서도 국내 주식형 상품에 대해서는 매매차익을 비과세하는 방안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퇴직연금 장기 적립을 유도하는 인센티브도 부족하다. 현재는 나중에 연금을 얼마나 긴 기간 동안 나눠 받는지에 따라 퇴직소득세액을 감면해준다. 퇴직금을 연금으로 20년에 걸쳐 나눠 받을 경우 세금 50%를 깎아주는 식이다.
하지만 퇴직·이직이 잦은 청년층에겐 20~30년 뒤에나 일어날 퇴직소득세 감면 효과는 체감하기 어렵다. 국가데이터처 '2024년 퇴직연금통계'에 따르면 25~34세 청년이 이직·퇴직으로 IRP(개인형퇴직연금)에 이전된 금액은 1인당 925만원으로 이중 해지된 금액은 901만원(97%)에 달했다. IRP는 퇴직급여를 이전받거나 개인이 추가로 자금을 납입·운용해 만 55세 이후 연금으로 수령할 수 있는 계좌다. 통계는 청년층 대부분이 퇴직금을 연금으로 굴리는 대신 한번에 인출하는 것을 선호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에 업계는 퇴직금을 한번에 빼지 않고 IRP를 유지하는 기간에 따라 퇴직소득세를 감면해주는 방향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퇴직금을 깨지 않고 얼마나 오랫동안 보유했는지에 따라 세금을 깎아주는 방식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감면되는 세금이 눈에 보이기 때문에 장기 보유할 유인이 생길 수 있다"며 "중도 해지시 '5년간 쌓은 세금 감면 혜택이 0이 된다'는 점을 안내하면 손실도 눈으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해지를 방어할 장치로도 작용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외 개미도 K주식 쉽게 사게"...거래문턱 낮추고 투자수요 넓혀야

외국인 투자자의 이탈이 최근 증시 급락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꼽히는 가운데 해외자금 유입을 위해서는 거래 편의성을 높일 투자 인프라를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예컨대 외국인 '개미'(개인투자자)들이 국내주식을 더 편리하게 거래할 수 있도록 외국인 통합계좌를 활성화하고 기업 영문 리서치 리포트(분석보고서)를 제공하는 등 기본적인 인프라 확충이 꼽힌다.
2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홍콩·뉴욕 등 글로벌 금융 중심지에선 한국 기업에 대한 투자 수요가 늘고 있지만 거래 인프라와 투자정보 접근성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실정이다. 대표적으로 국내기업에 대한 리서치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투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기업에 관심이 많은 홍콩·대만 등 아시아권을 비롯해 각국의 개인투자자들의 관심이 크고, 투자 의사결정을 할 때 참고할 지표와 리서치에 대한 수요가 많다"며 "개별 증권사 차원에서도 외국인 개인투자자들의 투자정보 접근성을 높일 방안을 고민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올해 들어서야 외국인 개인투자자들이 기존 계좌를 가지고 국내주식에 투자할 수 있게 됐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12월 17일 금융투자업규정을 일부 개정해 외국인 주식통합계좌의 계좌개설 주체 요건을 완화했다. 올해 4월에는 '외국인 주식 통합계좌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해외 증권사들이 외국인 통합계좌 업무를 수행할 때 필요한 기준과 절차를 정했다.
국내 증권사들도 해외 증권사들과의 제휴를 통해 외국인 통합계좌 서비스를 본격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외국인 통합계좌 제도가 도입된 지 8년 만인 지난해 8월 하나증권이 홍콩의 엠퍼러(Emperor)증권과 함께 투자 서비스를 개시했고 삼성증권, 유안타증권 등도 금융당국의 혁신금융서비스를 추가 지정받아 외국인 투자자의 거래 편의성을 높였다. 다른 증권사들도 해외 증권사와의 접촉을 통해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외국인 개인투자 서비스가 시작됐지만, 투자정보 접근성과 거래 인프라는 숙제가 남았다. 한 증권사 해외법인 관계자는 "외국인 투자자들은 우리나라 반도체 기업들과 금융사들, 헬스케어·로보틱스 기업들에 대한 재무분석과 투자의견을 담은 리포트를 원한다"며 "지금은 한국어로 된 리포트를 번역해 투자 포인트를 자체적으로 다시 정리해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형 IB(투자은행)를 비롯한 '큰손'들은 자체적으로 리포트를 내기도 하고 정보를 얻을 채널이 많지만 국내시장에 관심이 큰 개인투자자들은 상대적으로 정보 접근성이 낮다.
외국인 큰손들의 이탈이 큰 와중에 외국인 개인투자자들에 의한 신규자금 유입도 쉽지 않은 배경이다. 금투업계 관계자는 "해외 증권사의 고액 자산가 고객들이 국내시장에 관심이 많아 한국기업 IR(투자설명회)을 열어달라고 제안하는 경우도 있다"며 "해외 증권사들이 이러한 고액 자산가 투자 수요에 맞추기 위해 국내 증권사들에 먼저 제휴 의사를 밝히는 사례가 늘었다"고 전했다.

해외자금을 유입하려면 금융당국의 정책이 투자자의 수요에 맞게 더 세밀하게 설계돼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외국인 개인투자자들은 지난 9월에야 ETF(상장지수펀드)에 투자할 수 있게 됐다.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9일 외국인 통합계좌 거래대상을 ETF, ETN(상장지수증권)으로 확대하는 내용의 금융투자업규정 개정을 고시했다. 올 상반기 국내 ETF 시장이 500조원 이상으로 커지는 도중에 외국인들이 통합계좌를 통해서는 투자할 수 없어 불편함이 컸던 셈이다.
코스닥 시장으로의 해외자금 유입을 위해 기업들의 핵심 원천인 지식재산에 대한 공시를 강화할 필요도 있다. 코스피 시장이나 대형 주도주로의 쏠림 완화를 위해 외국인들의 코스닥 기술기업 정보 접근성을 높이는 방안이다.
정희철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지식재산 비재무정보 공시 활성화 필요성' 보고서에서 "미국·일본·싱가포르 등 주요 선진국들은 이미 지식재산과 무형자산을 기업 가치의 핵심 원천으로 보고 체계적이고 투명한 공시를 위한 제도적 기반을 강화해왔다"며 "지식재산 공시 내실화는 기업의 저평가 위험을 낮추고 자본조달 비용을 절감해 기업들의 성장자금 확보 여건을 개선할 수 있다"고 말했다.
거래시간 늘린다고 투자 많이하나? 증시 활성화 정책 효과 어땠나

정부가 주식시장 활성화를 위해 거래시간 연장과 결제주기 단축 등 각종 대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실제 투자자금 유입과 장기투자 확대로 이어질지는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거래 기회를 늘리고 시장 인프라를 정비하는 것만으로는 투자자들이 주식을 장기간 보유할 유인이 커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거래 편의 개선과 함께 개인투자자의 장기 투자성과를 높이고 안정적인 수급 기반을 확보하는 정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거래 편의 높이지만…장기 투자자금 유입은 별개
2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증시 활성화를 위해 거래시간 확대, 주식 결제주기 단축, 투자상품 다양화 등 시장 접근성과 거래 편의 개선을 추진해왔다. 그러나 이들 정책은 주식을 사고파는 환경을 개선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어 신규 투자자금 유입이나 장기보유 확대 효과는 별도로 검증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증시 활성화 정책의 성과를 거래대금이나 상품 수뿐 아니라 신규 투자자금 유입 규모와 투자자의 장기보유 현황, 실제 거래비용 변화 등으로 평가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최근 증시 급락은 안정적인 수급 기반의 중요성을 다시 부각시켰다. 문제는 정부가 추진해온 증시 활성화 대책이 불안정한 수급을 개선하는 데 얼마나 효과적이냐는 점이다. 정부가 추진 중인 거래시간 연장은 투자 편의를 높이기 위한 정책이지만 새로운 투자자금 유입으로 이어질지는 불확실하다. 기존 거래가 더 긴 시간에 분산되는 데 그칠 수 있고, 거래가 적은 시간대에는 매수·매도 호가 차이가 벌어져 오히려 투자자의 거래비용이 높아질 가능성도 있다.
주식 결제주기를 현행 거래일 이틀 뒤(T+2)에서 하루 뒤(T+1)로 단축하는 정책도 마찬가지다. 결제 위험을 줄이고 매도대금을 더 빨리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결제 속도 개선이 장기 투자수요 증가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해외 투자자의 환전·결제 부담과 증권사의 시스템 준비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
ETF(상장지수펀드) 등 투자상품 확대 역시 상품 수나 거래대금 증가만으로 성과를 판단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기존 투자자금이 개별주식이나 공모펀드에서 ETF로 이동하는 것이라면 증시 전체의 신규자금 유입 효과는 제한적이다. 일부 대형주에 투자가 집중될 경우 중소형주로 투자수요가 확산되는 데도 한계가 있다.
日·英, 투자자 저변 확대…장기 수익률·거래비용 개선 필요
해외 주요국에서는 개인투자자의 장기적인 자산형성을 지원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은 2024년 소액투자비과세제도(NISA)를 확대하고 비과세 보유기간을 영구화했다. 일본 금융청에 따르면 올해 7월 기준 NISA 계좌는 약 2800만개에 달했다. 다만 NISA 계좌에서는 해외 주식과 펀드에도 투자할 수 있어 계좌 증가가 모두 일본 증시로의 자금 유입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일본은 금융교육을 통해 가계의 투자시장 참여를 확대하는 데도 나서고 있다. 2024년 설립한 금융경제교육추진기구(J-FLEC)를 통해 투자 경험이 부족한 개인에게 장기·분산투자와 자산형성 방법을 교육하고 있다. 예·적금에 머물던 가계자금이 주식·펀드 등 투자상품으로 유입되도록 투자 저변을 넓히고, 단기 시세차익보다 장기투자를 유도해 안정적인 증시 수급 기반을 확충하려는 취지다.
영국도 금융회사의 투자 지원을 확대해 가계자금을 증시로 끌어들이고 있다. 올해 4월 도입한 '타깃 지원(Targeted Support)' 제도는 투자목적이나 상황이 비슷한 고객군에 적합한 투자방안을 제안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전문적인 투자자문 비용이 부담스럽거나 투자 경험이 부족해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던 개인들의 투자시장 진입을 유도하고, 장기적인 주식·펀드 투자 저변을 넓히려는 취지다.
국내에서도 개인투자자의 장기 투자성과를 높일 수 있는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증권사와 자산운용사가 투자목적과 위험 성향에 맞는 분산투자 상품을 제공하고, 상품별 수수료와 장기 수익률을 쉽게 비교할 수 있도록 정보 제공을 확대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국내 주식형 공모펀드 역시 단순한 판매 확대보다 운용비용을 낮추고 장기 투자성과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최근 금융투자업계에서는 향후 증시 활성화 정책의 초점을 단기 거래 확대보다 안정적인 투자자금 유입과 장기 투자성과 개선에 맞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 시장 전문가는 "개인투자자들이 장기투자의 성과를 확인하고 시장에 대한 신뢰를 쌓을 수 있어야 증시 변동성이 커지는 상황에서도 자금 이탈을 줄이고 안정적인 수급 기반을 구축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