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형 제약기업 세부기준 공개…약가 인하 앞두고 복잡해진 셈법

정기종 기자
2026.08.23 15:26

자회사 연구비·건기식 R&D 제외…임상·기술이전 실적 인정 기준 구체화
복제약 약가 산정률 53.55→45%…혁신형 기업은 60% 우대 적용
제네릭 의존 높고 자체 개발 역량 부족하면 부담…필수의약품 생산은 가점

정부가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에 적용할 세부 기준을 공개하면서 제약사들의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연구개발(R&D) 투자 규모뿐 아니라 비용을 부담한 법인과 임상·기술이전 실적의 인정 범위, 필수의약품 공급 기여도까지 따지기 때문이다. 복제약(제네릭) 약가 인하를 앞두고 인증기업에 대한 약가 우대가 강화되는 만큼 사업·조직 구조와 연구개발 역량에 따라 기업별 유불리가 갈릴 전망이다.

23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지난 18일 '2026년도 혁신형 제약기업 신규 인증 공고'와 관련 질의응답 자료를 공개했다. 지난달 연구개발 투자 기준 상향과 평가항목 개편 등을 담은 관련 법령을 정비한 데 이어 기업별 평가 배점과 연구개발비·임상·수출 실적의 구체적인 인정 기준을 제시했다.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이 전면 개편되는 것은 14년 만이다.

정부는 혁신형 제약기업 연구개발 투자 확대를 위해 인증에 필요한 투자비율을 기업 유형별로 2%포인트씩 높였다. 의약품 매출 1000억원 미만 기업은 연간 연구개발비 50억원 또는 매출 대비 7%에서 70억원 또는 9%로, 매출 1000억원 이상 기업은 5%에서 7%로 상향된다.

미국·유럽의 의약품 제조·품질관리기준을 충족한 기업은 3%에서 5%로 높아진다. 다만 강화된 기준은 3년간 적용이 유예돼 이번 신규 인증에는 기존 기준을 적용한다. 신청은 다음 달 18일까지며 신규 인증기업은 연내 확정된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연구개발비 산정 방식이다. 신청기업의 매출과 연구개발비는 연결재무제표가 아닌 별도재무제표를 기준으로 평가한다. 이에 따라 신약개발 자회사가 자체적으로 부담·집행한 연구비는 모회사의 연구개발 실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다른 기업에 대한 출자금이나 주식·지분 투자액 역시 회계상 자산으로 처리되는 만큼 연구개발비에 포함되지 않는다.

다만 신청기업이 자회사에 지급한 기술도입비나 위탁연구개발비는 별도 손익계산서에 비용으로 반영되고 의약품 연구개발과 직접 관련된다면 인정받을 수 있다. 의료기기와 건강기능식품, 동물의약품 관련 연구비는 평가 대상에서 제외된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연구개발 투자액이 비슷해도 자회사가 비용을 직접 집행했는지, 신청기업이 위탁연구비 등으로 부담했는지에 따라 심사에서 인정되는 실적은 달라질 수 있다"며 "기업별 사업과 조직 구조에 맞춰 연구개발비와 증빙자료를 다시 따져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리베이트 관련 기준도 인증의 필수요건이다. 인증 심사 시점을 기준으로 최근 3년간 의약품 판매질서 위반에 따른 행정처분이 통산 1회를 넘거나, 제공한 경제적 이익의 합계가 500만원 이상이면 심사 대상에서 제외된다. 다만 신청일을 기준으로 5년 이전에 종료된 위반행위는 심사에 반영하지 않는다. 기존에는 행정처분 시점을 기준으로 판단했지만 개편 이후에는 위반행위가 종료된 시점을 기준으로 심사 대상 여부를 따진다.

임상시험과 기술이전, 수출 실적의 인정 기준도 구체화했다. 임상시험은 계획 승인만으로 실적에 반영되지 않는다. 최근 3년 동안 피험자 투약과 연구개발비 집행이 이뤄져야 한다.

기술이전은 신청 마감일까지 최종 계약을 체결해 법적 효력이 발생한 경우에만 확정 실적으로 인정된다. 해외 기술이전으로 받은 계약금과 마일스톤, 로열티는 기술이전 항목에서 평가하지만 의약품 수출액에는 포함하지 않는다. 수출 실적은 완제·원료의약품을 실제로 해외에 판매한 금액으로 산정한다.

평가체계도 기존 120점 만점·25개 세부항목에서 100점 만점·17개 항목으로 개편됐다. 일반 혁신형 제약기업은 △연구개발 투자·인력·시설 등 투입자원 30점 △연구개발 활동의 혁신성 30점 △기술·경제적 성과 25점 △사회적 기여·책임 15점으로 평가한다. 인증 최저점수는 65점이다. 사회적 기여·책임 항목에서는 국가필수·희귀·퇴장방지의약품 생산과 국산 원료 사용 등 의약품 공급망 안정화 기여도에 10점을 배정했다.

외국계 제약기업은 이번 개편으로 별도 평가 유형이 신설됐다. 국내 연구·생산시설과 공동연구, 해외자본 유치 등 국내 산업 기여도를 중점 평가하며 일반기업과 외국계 기업 유형 중 하나를 선택해 심사받을 수 있다.

업계에서는 제네릭 매출 의존도가 높지만 자체 신약개발 역량이 부족한 기업일수록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제네릭 비중 자체가 인증 심사의 감점 요인은 아니지만 자체 연구개발과 임상·기술이전 실적이 부족하면 관련 항목에서 충분한 점수를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만 필수의약품을 생산하거나 국산 원료를 사용하는 기업은 공급망 기여도 항목에서 점수를 보완할 수 있다.

약가제도 개편은 인증 확보의 필요성을 키우는 요인이다. 정부는 건강보험 재정 부담을 줄이고 제약사의 신약개발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제네릭과 특허만료 의약품의 약가 산정체계를 개편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제네릭 약가 산정률을 기존 53.55%에서 45%로 낮출 계획이다. 산정률은 8.55%포인트 떨어지지만 실제 제네릭 약값 기준으로 계산하면 인하율은 약 16%에 이른다. 반면 혁신형 제약기업에는 60%의 우대 산정률을 적용하고, 기등재 특허만료 오리지널과 제네릭에는 49%의 특례 산정률을 4년간 적용할 방침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앞으로는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이 정부 연구개발 사업 참여뿐 아니라 약가와 수익성에도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제네릭 매출 비중이 높은 기업일수록 인증 필요성이 크지만 자체 연구개발 역량과 실적이 부족하면 기준을 충족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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