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계좌 내역 등이 포함된 국민건강보험공단의 내부 자료가 외부로 유출된 정황이 확인돼 논란이다. 건보공단 직원으로부터 제보받았다는 '자백'이 나오고 결재 라인까지 제시됐지만 관할서인 강원 원주경찰서는 '보완 자료'를 요구하며 10개월째 사건 수사를 중단한 상태다.
26일 의료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원주경찰서는 의사 A씨가 지난해 6월 건보공단과 소속 직원을 상대로 제기한 국민건강보험법 위반(정보누설 등) 혐의 사건을 4개월 후인 지난 10월 수사 중단했다.
A씨는 당시 시민단체인 B단체와 한 방송사에 건보공단의 수사의뢰서 등이 유출된 정황을 파악하고 관할서인 원주경찰서에 고발장을 접수했다.
B단체는 2024년 7월 A씨가 '1인 1개소 법'을 위반해 사실상 다수의 병원을 운영하고 있다며 경찰에 이를 고발하고 기자회견을 열었는데, 이것이 건보공단의 수사의뢰서 내용과 거의 동일하다는 게 근거였다.
그런데 A씨는 이미 동일한 혐의로 1년 넘게 진행된 경찰 수사 결과 2023년 6월과 8월, 인천경찰청과 용산경찰서 등 두 곳으로부터 불송치(혐의없음) 결정을 받은 상태였다.
건보공단은 경찰 수사가 완료된 직후인 같은 해 9월 서초경찰서에 또다시 수사를 의뢰하면서 문제가 되는 수사의뢰서를 작성했고, 이것이 1년가량 지난 2024년 시민단체와 언론으로 흘러가 새로운 '고발 근거'가 됐다. 건보공단과 B단체의 고발 사건도 2025년 3월 불송치 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건보공단측은 "(최초) 불송치 결정 이전에 진행한 행정조사에서 혐의 내용이 상당 부분 입증돼 수사 의뢰한 것"이라고 밝혔다. A씨 측이 기밀 자료가 유출됐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선 "내부 자료가 유출된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
A씨가 경찰 수사 종결 이후에도 동일한 혐의로 고발을 당하고 반복적으로 수사를 받자, 의료계 내부에선 여러 뒷말이 나왔다. 일각에서는 공공기관과 연계해 사건을 키우고, 경쟁 병원을 제거하는 '의료 브로커'가 존재한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원주경찰서는 관련 증거가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A씨 측이 지난해 강원경찰청에 이의신청 1차례, 올해 총 4차례에 걸처 수사재개요청서를 제출하며 배후 조사를 강력히 요구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A씨가 B단체를 상대로 제기한 민사소송에서 이 단체의 대표가 "2024년 5월 건보공단 직원의 내부고발 제보"가 있었다고 밝혀 구체적 주체와 시점이 제시됐다. 이를 토대로 A씨 측이 △작성자 △전달자 △결재권자 등을 특정한 추가 자료를 제출했지만 수사는 재개되지 않고 있다.
A씨는 건보공단과 각 직원 등을 상대로 총 1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하고 향후 문서제출명령 등을 활용해 사실관계를 파악한다는 입장이다. A씨 측은 "공공기관 내부자가 민감한 정보를 빼돌리고, 이에 따라 피해자가 양산되는 일은 반복돼선 안 된다"며 "B단체 대표 등을 대면 조사하거나 건보공단 결제라인 대상자의 업무용 컴퓨터를 압수수색한다면 유출자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수사당국의 관심을 촉구했다.
원주경찰서는 A씨 측이 유출자로 특정한 건보공단 직원을 이미 참고인 조사했고, 그 결과 건보공단의 수사의뢰서 다운로드 기록이 저장되지 않았고 결제라인 이외에도 100여명의 직원이 수사의뢰서에 접근할 수 있다고 판단해 수사를 중단했다고 밝혔다. 강제수사 범위가 너무 광범위하기 때문에, 유출 과정이나 유출자 등이 구체적으로 확인돼야 수사를 재개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런 사실을 A씨 측 변호인에게도 전달했다고 한다.
의료계 일각에선 경찰의 수사 중단 결정이 향후 규제기관에 기밀 정보가 유출되는 등 유사 사건의 재발을 부추길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에 대해 원주경찰서는 "사건마다 세부 내용이 다르고 일률적이지 않다"며 "유사 사건이 발생한다 해도 모두 (유출자를) 특정할 수 없고 강제수사가 안되는 것은 아니다"고 답했다. A씨 고발 사건에 대해 "재판 과정에서 (유출자가) 특정되지 않더라도 관련 있는 단서가 나오면 수사 재개를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