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곳곳에서 암약하는 무수한 음모론자들에게 지금보다 더 좋은 시절은 없었다. 정치인과 정부는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허위정보를 밀어붙인다. 챗봇은 환각을 일으킨다. 선동가들은 급증한다. 화성에 살고 있다고 해도 될 만큼 유별난 자신들만의 온실 속에 사는 막대한 부유층 인사들은 수억 달러를 쏟아부으며, 서로 충돌하는 현실들 속에서 이미 휘청거리는 유권자들을 조종하려 든다.
여기에 일부 음모론이 최소한 어느 정도 그럴듯한 것으로 밝혀졌다는 사실—조금씩 흘러나오는 미확인비행물체(UFO) 관련 정보 공개를 떠올려보라—까지 얹어지면, 진실이 조작됐다는 관념이 칡넝쿨처럼 걷잡을 수 없이 번성하기에 완벽한 토양이 마련된다.
이러한 날조가 도처에 널려 있다고 해서 민주주의 사회에 덜 위험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쩌면 이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만들어낼 것인가에 대한 구상을 바꿔놓을지도 모른다.
과학이 등장하기 전, 신화는 우리가 자연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의 하나였다. 천둥과 번개에는 토르가 있었고, 난파는 비명을 지르는 세이렌으로 설명했으며, 겨울의 황량함은 페르세포네의 납치 때문이라고 여겼다.
우리는 과학과 기술의 진보에 힘입어 그런 단계에서 대체로 벗어났다.
하지만 인간 심리에 내재된 무언가는 여전히 우리를 비주류 이론의 토끼굴 속으로 거세게 밀어 넣는다. 신화 만들기는 여전히 사람들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제는 신뢰하지 않는 권력기관과 첨단 시스템에 관한 의심에 그 방식을 적용할 뿐이다.
나 역시 종종 내 마음속에서 비주류 이론을 탐색하는 소설가이기에 이를 잘 안다. 지난 여러 해 동안 내 소설이 논픽션처럼 읽힌다는 독자 편지를 많이 받았다. 꼭 그렇게 의도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설득력 있는 스릴러를 구성하려면 작가가 현재 가능한 모든 일을 숙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미래에 벌어질 법한 어둡고 두려운 행위를 현실적으로 그려낼 수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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