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데이 모닝 인사이트] 러시아 연료 위기
![[블라디보스토크(러시아)=AP/뉴시스]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의 한 주유소에 25일 기름을 주유하려는 자동차들이 길게 줄지어 서 있다. 최근 몇 주 동안 우크라이나 무인기가 정유소와 다른 석유 기반 시설들을 공격하면서 러시아 일부 지역 주유소의 재고가 고갈돼 운전자들은 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며, 관리들은 판매를 제한하거나 전면 중단시키고 있다. 2025.08.27. /사진=유세진](https://thumb.mt.co.kr/cdn-cgi/image/f=avif/21/2026/08/2026082714182324422_1.jpg)
산유국 러시아가 전례없는 연료 위기를 겪고 있다. 최근 우크라이나 드론이 정유시설을 지속적으로 공습한 결과다. 러시아는 휘발유 등 석유제품을 해외에서 사들여 연료 부족을 메우려 하지만 단기간에 해결이 어렵다는 평가다. 연료난이 악화되면서 물가는 뛰고 러시아 전시경제의 취약성이 심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선데이 모닝 인사이트>는 러시아의 연료난 상황과 경제에 미칠 영향을 짚어봤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지난 20일 인도에서 선적된 휘발유 약 6만 8000톤이 러시아 비티노항에 도착했다. 앞서 7월 말 울산항에서 경유를 포함한 정제유 약 3만 톤이 선적돼 러시아 극동지역으로 향했다. 러시아는 이외에도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모로코 등지에서 석유제품을 들여오는 것으로 알려진다.
석유제품을 수출하던 산유국 러시아가 오히려 수입하게 된 것은 연료난이 심각함을 보여준다. 민간 연료정보 앱 서비스 'GdeBENZ'에 따르면 16일 기준 러시아 전국 주유소 가운데 휘발유 또는 경유 판매가 확인된 곳은 28%에 불과했다. 수도 모스크바에서도 일부 주유소가 문을 닫거나 휘발유 판매를 중단하면서 주유를 기다리는 차량 행렬이 길게 형성됐다.
러시아 정부는 연료난 해결을 위해 2013년부터 퇴출했던 유로-2, 3, 4 등급의 저급 휘발유 생산∙판매를 재허용했다. 황 함유량이 높은 저급 연료는 다량의 오염 물질을 배출하지만 당장 연료난 해결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또 일부 지역에서는 번호판 홀짝제와 판매량 제한같은 배급제도 시행됐다. 23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연료시장 상황으로 국민들에게 일정한 불편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지난 6월 연료 부족을 언급한 데 이어 두 달 만에 공급문제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음을 재차 인정한 것이다.
이러한 연료난은 원유 부족이 아니라 우크라이나의 정유시설 공습에 따른 '정유 병목'에 기인한다. '에너지 인텔리전스(Energy Intelligence)'는 지난 6월 러시아의 1차 정유시설 가운데 3분의 1가량이 가동 중단 상태라고 추정했다. 기존 러시아의 정유 능력은 일일 660만~690만 배럴 정도로 알려져 있으나, 6월 첫 주 처리량은 약 360만 배럴로 2002년 이후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반면 러시아의 7월 원유 생산량은 하루 평균 900만 배럴로 전월보다 오히려 늘었다. 즉 최근 연료난이 심화하면서 러시아는 자국산 원유를 카자흐스탄의 정유공장에 보내 정제한 뒤 휘발유와 경유로 다시 들여오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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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파괴된 정유시설의 조속한 정상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글로벌 상품 및 데이터 분석업체인 '케이플러(Kpler)'는 우크라이나의 공격으로 손상된 핵심 정제설비와 인프라 복구에 수개월이 소요되고, 정유 처리 시설 회복도 4분기 이전에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최근 타격을 입은 모스크바와 오르스크 정유소는 복구에 최대 6개월이 필요할 거란 평가도 나왔다. 아울러 서방 제재로 장비와 핵심 부품 조달이 어려운 가운데 우크라이나의 공격이 지속되면서 정유시설 정상화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세르게이 바쿨렌코 카네기 러시아-유라시아센터 선임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최근 우크라이나의 공격은 복구가 까다로운 2차 정제설비를 타격하고 있고, 제재 속에서 장비와 부품의 해외조달이 어려워지면서 복구가 상당히 지연되고 있다"며 "우크라이나는 공격용 드론 생산을 늘렸고, 이에 따라 공격과 비상정지, 임시 수리가 반복되면서 복구된 정유 설비의 생산성도 크게 떨어졌다"고 평가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AP/뉴시스] 3일(현지 시간) 우크라이나의 드론 공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한 석유 터미널 곳곳이 파손돼 있다. 우크라이나는 이날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비롯해 크론시타트 기지, 탐보프 지역 군수공장 등을 드론으로 공격했다. (위성 사진=미국 상업 위성업체 밴터 제공) 2026.06.04. /사진=민경찬](https://thumb.mt.co.kr/cdn-cgi/image/f=avif/21/2026/08/2026082714182324422_2.jpg)
정유 차질에 따른 연료 공급 부족은 석유제품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러시아 통계청에 따르면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은 2025년 말 리터당 64.65루블(약 1056원)에서 올해 8월 17일 기준 76.38루블(약 1247원)로 상승했고, 같은 기간 경유도 75.83루블(약 1238원)에서 88.48루블(약 1445원)로 올랐다. 특히 드론 공격이 집중된 6월 말부터 7월 말까지 한 달 동안 휘발유는 7% 이상, 경유는 10%가량 급등했다. 이후 석유제품 수출 제한과 수입 확대 등의 조치로 가격이 일부 내려왔지만 8월에도 연료 가격 불안은 지속되고 있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물가 불안이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최근 보고서에서 연료가격 상승이 6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에 있어 약 0.3%포인트, 7월 첫 2주에는 약 0.2%포인트를 직접 기여한 것으로 추산했다. 6월 소비자물가가 전월 대비 0.87%포인트 오른 것을 감안하면, 한 달 물가 상승분의 약 3분의 1이 연료가격 상승에서 비롯된 셈이다.
운송비와 생산비 상승이 광범위한 상품·서비스 가격으로 전이되는 간접효과는 더 심각하다. 실제로 최근 러시아에서는 연료가격 급등으로 물류업체의 운송원가가 4.5~5.5% 상승했고, 7월 트럭운임도 전월대비 평균 12~15% 올랐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이러한 운송·생산비 상승과 기대인플레이션 등 간접효과를 감안할 경우 연료가격 상승이 2026년 소비자물가를 최대 1.5%포인트 끌어올릴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에 올해 연간 물가상승률 전망치도 기존 4.5~5.5%에서 6~7%로 상향 조정했다.
연료난은 통화정책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러시아의 현재 기준금리는 14% 수준이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경기침체를 우려해 17%대였던 기준금리를 지난해 하반기부터 낮춰왔다. 그러나 최근 연료난에 따른 물가 불안이 커지면서 추가 금리 인하 여력을 제한하고 있다. 연료가격 상승이 기대인플레이션을 끌어올리고 있어서다. 가계의 향후 1년 기대인플레이션은 6월 12.4%에서 7월 14.7%로 한 달 만에 2.3%포인트 상승했다. 중앙은행은 연료난에 따른 기대인플레이션 급등과 간접적인 효과를 고려할 때 당장 금리를 내리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제성훈 한국외국어대학교 노어학과 교수는 "전쟁 이후 러시아의 물가는 상당히 높은 수준을 유지해왔는데 이번에 연료난이 겹치면서 물가 상황이 더욱 악화됐다"며 "최근까지 지속적인 인하 기조를 취했던 기준금리를 더 이상 내릴 수 없게 됐고, 초반 고성장을 구가했던 전시경제 체제도 1% 미만의 저성장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AP/뉴시스]우크라이나 제14 분리 무인항공시스템연대의 한 우크라이나 군인이 지난 14일 공개되지 않은 장소에서 장거리 드론 An-196 리우티를 발사할 준비를 하고 있다. 정유소, 연료 저장소, 군사 물류 허브 등 러시아 내 전략적 목표물들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장거리 드론 공격이 급격히 증가, 러시아 전역의 에너지 인프라를 강타하고 모스크바의 방공망을 약화시키면서 전쟁 판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2025.10.31. /사진=유세진](https://thumb.mt.co.kr/cdn-cgi/image/f=avif/21/2026/08/2026082714182324422_3.jpg)
연료난은 재정에도 부담을 주고 있다. 러시아 정부는 급등하는 연료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 보조금 등 재정을 투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제도가 '연료 댐퍼(fuel damper)'다. 이는 수출가격이 국내가격보다 높아 정유사들이 해외판매를 선호할 경우 일정 부분을 재정으로 보전해 국내 공급을 유도하는 보조금 제도다. 러시아 재무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러시아 정유사에 대한 댐퍼 지급액은 약 7016억 루블(약 11조 6000억 원)에 달했다. 이는 상반기 재정적자(5조 7310억 루블)의 약 12%에 해당하는 규모다. 전쟁 비용 확대와 에너지 세입 감소로 재정 여력이 약화된 가운데, 연료난 대응비용까지 더해지며 재정부담은 한층 커지고 있다.
연료난을 완화하기 위한 재정지출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러시아 정부는 석유제품 수입관세를 기존 5%에서 0%로 낮추고, 휘발유 증산을 유도하기 위한 소비세 공제와 정유시설 현대화 세제혜택을 연장했다. 기존엔 정유사가 신규 설비투자를 정해진 시점까지 마쳐야 세제혜택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정유시설 가동 차질이 잇따르자 정부는 투자 완료 시한을 연장해 혜택을 계속 적용하기로 한 것이다. 또한 러시아 철도공사(RZD)는 해외에서 수입된 연료를 내륙으로 운송할 경우 철도운임을 할인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직접 재정지출뿐 아니라 관세·소비세 인하 등의 방식으로 연료가격 충격을 재정으로 흡수하는 것이다.
문제는 러시아의 재정 여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점이다. 올해 1~7월 연방정부 재정적자는 6조 4550억 루블(106조 5720억 원)로 GDP의 약 2.8%에 달한다. 지난해 러시아 정부가 연간 예산에서 계획했던 GDP 1.6% 수준을 크게 넘어선 수치다. 재무부는 연초 조기 예산집행의 영향이 크다고 설명하지만 같은 기간 정부지출은 전년대비 14.5% 증가한 반면, 석유·가스 세입은 16.8% 감소했다. 에너지 세입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연료가격을 잡기 위한 지출까지 더해지면서 취약한 재정상황은 더욱 악화하고 있다.
엄구호 한양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는 "전쟁 비용으로 재정은 악화되고 기준금리는 현저히 높은데, 연료난으로 물가가 불안해지면서 금리를 내릴 수가 없으니 러시아 경제가 버티기 어렵다는 말까지 나온다"며 "결국 여론이 악화하면서 러시아 정부는 총동원령도 시행하기 어렵게 됐고, 이는 다가오는 9월 총선에서 푸틴 대통령에게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