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석유 총독' 된 남미 벼락부자, 베탕쿠르 누구[글로벌키맨]

유효송 기자
2026.09.04 06:40

[글로벌키맨]

알레한드로 베탕쿠르 홈페이지 캡처

"논란은 여전하지만 그의 영향력은 트럼프 행정부의 베네수엘라 개입과 이미 한 몸처럼 얽혀 있는 모습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근 베네수엘라와 맺은 대규모 석유 협정의 핵심 인물로 떠오른 베네수엘라 재벌 알레한드로 베탕쿠르에 대한 외신들의 평가다. 미국 정부가 공산권·반미 진영의 영향력을 밀어내고 베네수엘라 석유 매장량의 약 5분의 1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베탕쿠르는 대체 불가능한 민간 파트너이자 최고 막후 실세로 귀환했다. 그가 지정학적 격변을 지렛대 삼아 남미 에너지 패권의 키맨으로 부상하면서 세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세계 최대 석유 딜' 트럼프 정부의 파트너 낙점

2일(현지시간) AFP통신에 따르면 크리스 라이트 미국 에너지부 장관은 로드리게스 베네수엘라 임시 대통령과 만나 17개 핵심 유전을 100년간 개발·운영하는 초대형 석유 협정을 체결했다. AFP는 "미국이 17개 유전에 대한 우선 접근권을 부여하는 이번 계약에는 특히 이전에 러시아와 중국 기업이 운영했던 시설들을 인수하는 내용이 포함될 예정"이라며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 중 하나는 고(故) 우고 차베스 사회주의 정권 시절 불법 거래에 연루된 베네수엘라 사업가 베탕쿠르 의 개입"이라고 지적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베네수엘라에서 석유사업을 하는 민간기업 노스아메리칸블루에너지파트너스(NABEP)의 지분 35%를 확보하고, 이 회사가 생산하는 원유의 20%를 원가에 우선 매입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 이 NABEP의 실소유주가 바로 베탕쿠르다.

베탕쿠르는 하루 산유량을 1만8000배럴에서 20만 배럴까지 끌어올린 인프라 실행력을 바탕으로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중국과 러시아 기업이 관리하던 유전 6곳을 미국 우호 진영으로 전환시키는 지정학적 성과까지 안겨주며 워싱턴의 전폭적인 신임을 얻었다. 외신에 따르면 그는 마두로 정권 축출 이후의 권력 공백기 속에서 임시정부와 미국 수뇌부를 물밑에서 직접 조율한 결정적 '메신저'였다.

차베스 시절 29세 벼락부자…정권 결별 후 글로벌 로비망 구축

위기를 기회로 뒤집는 베탕쿠르의 감각은 지난 20여 년간 남미와 서방 정·재계를 넘나들며 다져졌다. 1980년 카라카스에서 태어난 그는 부유한 가문에서 태어났다.

미국 서퍽대학교를 졸업한 뒤 2009년 29세의 나이에 사촌과 함께 발전설비 업체 '더윅 어소시에이츠(Derwick Associates)'를 설립했다. 우고 차베스 정권의 전력난을 틈타 약 50억 달러(약 6조8000억 원) 규모의 발전소 계약을 싹쓸이하며 단숨에 거부 반열에 올랐다. 베네수엘라에선 그와 같은 신흥 청년 부호들을 '볼리치코(볼리바르의 젊은이들)'라 부른다.

그러다 차베스 사망 후 정권을 잡은 니콜라스 마두로와 갈등을 빚으며 2020년 현지 석유 합작사 지분과 자산을 모두 압류당하는 최대 위기를 맞았다.

국내 기반을 잃은 베탕쿠르는 무대를 세계로 넓혔다. 베네수엘라 야권 인사를 지원하며 미국 보수 진영과 연을 맺었고, 모스크바까지 날아가 마두로 고립을 유도하는 외교적 막후 교섭을 자처했다. 서방 네트워크와 결합해 정치적 리스크를 수익화하는 기술을 체득한 것이다.

그는 NABEP를 공동 설립했던 플로리다의 에너지 재벌이자 공화당 후원자인 해리 사전트 3세와도 가까운 사이였다. 파이낸셜타임즈(FT)는 베탕쿠르의 한 측근은 사전트가 올해 초 트럼프와 그를 잇는 다리가 된 것으로 보도했다. 악시오스(Axios)의 보도에 따르면 미군이 마두로를 체포할 당시 베탕쿠르는 부통령이었던 로드리게스에게 전화를 걸어 마크 루비오 미 국무부 장관과 대화하도록 설득했다.

크리스 라이트(왼쪽) 미국 에너지부 장관이 2일(현지 시간)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의 미라플로레스 대통령궁에서 델시 로드리게스 베네수엘라 임시 대통령과 석유 협정에 서명한 후 기자회견 하면서 악수하고 있다/AP=뉴시스 /사진=민경찬
돈세탁 논란 딛고 비자 복원…'정경유착' 그림자 vs '실용주의 사업가'

성공 가도 이면에는 짙은 그림자도 있다. 그가 차베스 시절 이끌었던 더윅은 반부패 감시단체와 의회로부터 부품 가격을 부풀렸다는 의혹을 받았다. 발전소 계약에서 138~173%에 달하는 이익을 남겨 판매한 것으로 나타났다. 더윅 측은 혐의를 전면 부인하며 "국제 시세에 맞춘 것"이라고 주장했다.

더불어 지난 10년간 자금세탁 혐의로 집중 조사를 받았다. 스위스가 자금 세탁 혐의로 그를 상대로 형사 소송을 개시한 후 지난해 영국에서 체포됐다. 당시 그는 스위스가 영국 정부에 범죄인 인도를 요청하면서 출국이 금지된 상태였다.

하지만 이번 미-베네수엘라 빅딜의 핵심 키맨으로 떠오르자 상황은 급변했다. 스위스가 지난 5월 영국에 낸 범죄인 인도 요청을 철회하면서 출국 제한이 풀렸다. 미 국무부는 그에게 1년짜리 복수입국 비자를 발급했다.

베탕쿠르는 뛰어난 역량으로 찬사를 받는 동시에 냉소적인 기회주의자라는 경멸도 함께 받는다. 이번 거래를 잘 아는 베네수엘라 석유업계의 한 관계자는 "로드리게스와 미국 정부는 자본과 물류 문제를 거듭해서 해결해 낸 인물을 본 것"이라고 전했다.

베탕쿠르를 둘러싼 논란에도 불구하고 베네수엘라 문제에 대한 그의 영향력은 이제 미국의 베네수엘라 개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얽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 석유업계 임원은 "베탕쿠르는 이 서반구의 새로운 '석유 총독'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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