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임대도 부모찬스? "보증금 14억" 그런데...자산 6.6억 넘으면 탈락

공공임대도 부모찬스? "보증금 14억" 그런데...자산 6.6억 넘으면 탈락

배규민 기자, 윤지혜 기자, 김지영 기자
2026.09.0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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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 공공임대의 역설 (上)

[편집자주]  보증금이 14억원에 육박하는 장기전세주택이 등장하면서 무주택자의 주거 안정을 지원한다는 공공임대의 취지가 무색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높은 보증금과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소득·자산 기준의 모순을 짚고 공공임대의 개선 방향을 살펴본다.

공공임대 맞아?..."보증금 무려 14억" 서울 아파트 전셋값의 2배

강남권 주요 장기전세 보증금 상승 현황, 보증금 10억원 초과 장기전세 모집 물량/그래픽=윤선정
강남권 주요 장기전세 보증금 상승 현황, 보증금 10억원 초과 장기전세 모집 물량/그래픽=윤선정

서울 강남권 장기전세주택 보증금이 14억원에 육박했다. 주변 전셋값에 연동해 공공임대 보증금도 5년 새 40% 가까이 뛰면서 최고액은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의 2배에 달했다. 입주자는 일정한 소득·자산 기준을 충족해야 하지만 보증금은 보유할 수 있는 자산의 2배를 웃도는 '공공임대의 역설'이 커지고 있다.

3일 서울주택도시개발공사(SH) 장기전세Ⅰ·Ⅱ 입주자 모집공고에 따르면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퍼스티지 전용면적 84㎡의 보증금은 13억8840만원에 이른다. 2021년 모집 당시 10억100만원에서 5년간 3억8740만원(38.7%)이 올랐다. KB부동산이 집계한 지난 8월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 7억1178만원보다도 6억7662만원(95.1%) 비싼 수준이다.

보증금 10억원 초과 물량은 '장기전세Ⅰ' 82가구와 '장기전세Ⅱ'인 미리내집 89가구 등 총 171가구다. 일부 단지와 주택형이 겹치지만 SH는 각각 별도로 배정된 물량이라고 설명했다. 전체 171가구 가운데 168가구가 강남·서초구에 몰렸고 나머지 3가구는 양천구에 공급됐다.

단지별 최고 보증금은 반포자이 전용 84㎡ 12억6360만원, 청담자이 전용 82㎡ 11억9340만원, 청담르엘·래미안대치팰리스 전용 59㎡ 11억7000만원 등이다. 래미안 원펜타스와 래미안퍼스티지 전용 59㎡도 각각 11억4660만원, 10억4520만원으로 10억원을 웃돌았다.

장기전세주택은 무주택 서울시민에게 주변 시세보다 낮은 보증금으로 공급하는 공공임대주택이다. 장기전세Ⅰ 신청자는 소득과 자산 기준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매입형 전용 60㎡ 이하는 도시근로자 가구당 월평균소득의 105%, 맞벌이는 140% 이하다. 전용 60㎡ 초과는 각각 150%, 200% 이하다. 기본 총자산 기준은 6억6200만원, 자동차 가액 기준은 4542만원이다. 최고 보증금은 기본 총자산 기준보다 7억2640만원 많아 2.1배에 달한다.

장기전세 보증금은 인근 2~3개 단지의 전세계약금액 평균을 토대로 정해져 민간 전셋값이 오르면 함께 상승한다. KB부동산에 따르면 지난 8월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1년 전보다 9.2% 올랐다. 신규 입주 감소와 재개발·재건축 이주 수요가 맞물려 강남권 전셋값이 더 오르면 장기전세 보증금도 추가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

"자산 6.6억 넘으면 탈락" 그런데 보증금은 13.9억…어떻게 들어가나

10억원 넘는 장기전세 171가구/그래픽=김다나
10억원 넘는 장기전세 171가구/그래픽=김다나

서울 강남권 장기전세주택의 최고 보증금이 기본 총자산 기준의 2배를 웃돌면서 자격 요건과 실제 자금 조달 능력 사이의 괴리가 커지고 있다. 일정 수준 이하의 소득·자산 기준을 충족해야 신청할 수 있지만 정작 입주하려면 10억원이 넘는 목돈이 필요하다.

3일 서울주택도시개발공사(SH)가 지난달 낸 장기전세주택 입주자 모집공고에 따르면 래미안퍼스티지 전용면적 84㎡의 보증금은 13억8840만원으로 가장 높았다. 신청자는 총자산이 기본 6억6200만원 이하여야 하지만 요구되는 보증금은 이보다 7억2640만원 많다. 보증금이 총자산의 2.1배에 달하는 셈이다. 총자산은 부동산과 금융자산, 자동차, 임차보증금 등을 합산한 뒤 금융기관 대출 등 인정되는 부채를 차감해 산정한다.

고액 보증금은 중대형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전용 59㎡인 청담르엘과 래미안대치팰리스는 각각 11억7000만원, 래미안퍼스티지는 10억4520만원이다.

보증금 10억원 초과 물량도 빠르게 늘고 있다. 2021년 8월 모집 당시에는 래미안퍼스티지 전용 84㎡ 1개 단지·5가구뿐이었지만 지난달 장기전세Ⅰ 공고에서는 6개 단지·82가구로 확대됐다. 같은 달 별도로 모집한 장기전세Ⅱ(미리내집)에도 7개 단지·89가구의 보증금이 10억원을 상회했다. 두 공고를 합치면 10억원 초과 물량이 총 171가구에 이른다.

이번 장기전세Ⅰ의 2인 가구 월평균소득 상한은 전용 60㎡ 이하 615만9584원, 초과 879만9405원이다. 맞벌이는 각각 821만2778원과 1173만2540원까지 허용된다. 소득과 자산 기준을 모두 충족하더라도 보증금을 마련하지 못하면 입주할 수 없다.

장기전세Ⅰ은 계약할 때 보증금의 10%, 입주할 때 나머지 90%를 내야 한다. 래미안퍼스티지 전용 84㎡ 당첨자는 계약금 1억3884만원에 이어 입주 전까지 잔금 12억4956만원을 납부해야 한다. 보증금 분할납부나 월세 전환 방식도 적용되지 않는다.

장기전세Ⅰ·장기전세Ⅱ(미리내집) 자격 현황/그래픽=최헌정
장기전세Ⅰ·장기전세Ⅱ(미리내집) 자격 현황/그래픽=최헌정

신혼부부 대상인 미리내집은 지난 4월부터 최초 보증금의 30%를 퇴거 때까지 유예하는 분할납부제를 시행하고 있다. 보증금이 13억8840만원이면 70%인 9억7188만원을 먼저 내고 유예된 4억1652만원에는 연 2.73%의 이자를 부담한다. 초기 부담을 낮췄지만 여전히 10억원에 가까운 자금이 필요하다.

대출로도 충당하기도 쉽지 않은 수준이다. 수도권 주택은 임차보증금이 7억원을 넘으면 한국주택금융공사(HF)의 일반전세자금보증 대상에서 제외된다. SGI서울보증이나 은행별 상품을 이용할 수 있지만 대출 한도와 금리는 차주의 소득과 신용도에 따라 달라진다.

공공임대마저 이른바 금수저들에게 돌아간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장기전세Ⅰ의 입주 자격은 모집공고일을 기준으로 판단한다. 당시 자산 기준을 충족해 당첨되면 이후 부족한 보증금을 부모 등에게 빌려 납부하는 데 별도의 제한은 없다. 다만 2년 뒤 재계약 심사에서는 임차보증금이 자산에 포함되는 반면 개인 간 차입금은 부채로 인정되지 않는다. 부모의 도움으로 입주하더라도 재계약 때 총자산 기준을 초과할 수 있는 셈이다.

금융기관 대출만으로 10억원이 넘는 보증금을 마련하기 어려운 만큼 현실적으로는 부모가 부족한 자금을 빌려주거나 지원할 수 있는 가구가 유리하다. 결국 부모 지원이 없는 청년·신혼부부는 보증금에 막히고 자산이 적더라도 소득이 높은 맞벌이 가구는 소득 기준에 막히는 구조다.

그렇다고 해서 보증금 수준을 단번에 낮추기도 쉽지 않다. SH는 공사채를 발행해 장기전세주택 사업 재원을 마련하고 입주자가 낸 보증금을 공사채 상환과 기존 임차인의 보증금 반환 등에 활용한다. 보증금 책정 비율을 낮추면 입주자 부담은 줄지만 SH의 현금 유입과 공사채 상환 재원도 감소한다.

형평성 논란과 소셜믹스 취지 훼손도 부담이다. 서울시는 보증금을 일률적으로 낮추면 같은 금액으로 강남과 강북에 거주하는 이른바 로또 전세 논란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한다. 반대로 고가 보증금을 이유로 강남권 공급을 줄이면 다양한 계층이 함께 거주하는 소셜믹스 취지가 훼손될 수 있다.

"전셋값 미친 상승"...'시세의 80%' 공공임대도 '억소리'

미리내집 연간 공급 현황 및 향후 목표/그래픽=윤선정
미리내집 연간 공급 현황 및 향후 목표/그래픽=윤선정

최근 강남권의 공공임대 주택의 보증금이 10억원대를 넘어서면서 '반쪽짜리 공공성' 논란이 커지고 있다. 공공임대 보증금을 시장가격에 연동해 책정하다 보니 시세보다 저렴하다는 장점보다 민간 임대시장의 시세가 오르면 입주자의 부담도 함께 커지는 약점이 더 부각되는 모습이다. 서울시가 미리내집을 중심으로 장기전세 공급을 확대할 계획인 만큼 공급량 못지않게 '시세 연동형 보증금'의 한계도 들여다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3일 서울시와 업계에 따르면 장기전세 보증금은 주변 전세 시세의 80% 이하 수준으로 책정된다. 공공이 임의로 가격을 정하는 것보다 객관적이고 시장가격과의 괴리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시장가격이 상승하거나 주변 전세가격이 높게 형성된 지역에서는 이 같은 방식이 오히려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시세의 80%를 적용한다고 가정하면 인근 전셋값이 5억원일 때 보증금은 4억원이지만 전셋값이 10억원으로 뛰면 보증금도 8억원으로 높아진다. 할인율은 그대로지만 실제 부담액은 두 배가 되는 셈이다. 공공이 민간보다 저렴하게 공급한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지만 무주택자와 사회초년생 등의 주거사다리로서의 공공임대의 기능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특히 문제가 되는 곳은 강남 등 이른바 선호지역이다. 공공임대주택의 취지는 주거 안정에 있지만 해당 지역의 높은 전세가격을 기준으로 보증금을 산정하면 공공임대조차 상당한 목돈을 요구하게 된다. 10억원을 훌쩍 웃도는 최근 강남권 장기전세의 고액 보증금 사례는 이 같은 구조가 현실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보여준다.

더 큰 문제는 공공임대 보증금 수준과 정책 기준이 서로 충돌한다는 점이다. 공공임대는 입주자 선정시 소득과 자산을 따진다. 주거비 부담 능력이 상대적으로 낮은 가구를 선별해 공공주택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정작 입주자가 내야 할 보증금은 해당 가구의 소득이나 자산보다 주변 집값과 전셋값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집값과 전셋값이 오를수록 두 기준 사이의 간극이 커지고 입주자의 실질적인 주거비 부담도 높아진다.

신보연 세종대 부동산 AI융합학과 교수는 장기전세와 미리내집의 이 같은 구조적 한계를 지적했다. 신 교수는 "미리내집이 시세보다 저렴하게 공급되더라도 강남 등 선호 지역은 주변의 높은 전셋값 때문에 보증금이 신혼부부 등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올라간다"며 "공공임대의 가격을 시장가격에서 완전히 떼어놓기는 어렵더라도 최소한 일정 수준 이상의 상승을 제한하거나 입주자의 소득과 금융비용을 반영해 실질 부담을 낮추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 교수는 또 "서민층이 아니더라도 중산층까지 보편적인 임대주택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필요하다"며 "한정된 공급 물량을 모든 지역에 동일하게 배분하기보다는 실제 미리내집 이용자가 부담할 수 있는 금액이 어느 정도인지 먼저 산정하고 그에 맞는 지역에 공급을 더 많이 하는 방식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장기전세와 미리내집 공급을 지속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미리내집은 2024년 공급을 시작한 이후 올해 8월까지 총 7108호가 공급됐다. 서울시는 매년 약 4000호를 확보해 2030년까지 1만7500호를 추가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공급 규모가 커질수록 현행 보증금 산정 방식이 입주자의 실질적인 부담에 미치는 영향도 커질 수밖에 없다. 공공임대 물량을 늘리는 것과 동시에 시장가격에 연동된 보증금이 실제 수요자의 주거 부담을 키우지 않는지 점검하고 시세 연동 방식의 보완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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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규민 기자

현장에 답이 있다.

윤지혜 기자

안녕하세요. 건설부동산부 윤지혜 기자입니다.

김지영 기자

안녕하세요. 건설부동산부 김지영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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