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 채우고 장 보러 가보세요. 그러고도 트럼프 행정부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지 말해주십시오." (뉴욕주 연방하원 선거 TV 광고)
"국경을 봉쇄하고 이민자 유입을 막았습니다. 미국의 안전을 최우선에 뒀습니다. 과거로 돌아갈 순 없습니다." (공화당 슈퍼팩 디지털 광고)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TV와 소셜미디어, 스트리밍앱을 뒤덮은 30초짜리 정치 광고의 일부다. 후보들과 정당, 외곽 후원조직(슈퍼팩)이 110억달러(약 14조6700억원)에 달하는 역대 최고 규모의 자금을 쏟아부으면서 유권자의 불안과 분노를 자극해 지지를 호소한다. 민주당은 고물가를, 공화당은 반(反)이민정서를 발판으로 삼았다.
'경제·이민·낙태권' 3대 사안에 자금 70% 이상 쏠려
31일(현지시간) 정치 광고 데이터 분석업체 애드임팩트와 주요 캠페인 집계에 따르면 올해 중간선거에서 집행된 전체 광고 예산의 70% 이상이 경제(물가 및 세제), 이민·국경 안보, 낙태권 및 여성 건강 등 3대 사안에 집중 투입됐다.
경제 관련 광고가 전체 광고의 32%, 이민·국경 안보 관련 광고가 24%, 낙태권 및 여성 건강 관련 광고가 18% 수준이다. 나머지는 범죄·치안, 의료비, 인공지능(AI)·에너지·관세 등과 관련된 광고다.
집권 여당인 공화당과 야당인 민주당의 공수 관계가 선명하게 갈리면서 양당의 자금 집행 화력도 정반대의 사안에 집중된다. 민주당은 유권자들이 체감하는 장바구니 물가와 주거비 상승, 유가 불안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과 공화당의 경제 실패 탓으로 돌리면서 민생 물가를 잡겠다는 공격성 메시지를 최우선에 배치했다. 연방대법원의 '로 대 웨이드' 폐지 이후 이어지는 여성의 낙태권 제한 논란을 고리로 공화당 후보들을 유권자의 자유를 침해하는 극단주의자로 규정하는 광고에도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었다.
공화당은 감세 성과와 강력한 이민·안보 프레임에 광고 자금을 집중한다. 지난해 추진한 소득 감세와 팁·오버타임 세금 면제 성과를 집중 홍보하는 한편,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한 국경 단속과 범죄 소탕 성과를 앞세워 보수층과 중도층 표심을 집결시키는 방어 및 결집 전략을 편다.
'네거티브 vs 정책 홍보' 7 대 3… 선거 막판 '상대 깎아내리기'
본 선거일이 가까워질수록 비방과 공격의 수위는 급격하게 높아지고 있다. 올 여름까지만 해도 후보 본인의 이력과 정책 비전을 소개하는 정책 홍보형 광고가 과반을 차지했지만 10월 들어 네거티브 공격 광고 비율이 전체의 70%를 넘어섰다. 특히 정책적 대안이나 근거 제시 없이 상대 후보를 도덕적·인격적으로 매장하려는 고자극 흑색선전이 기승이다.
오하이오주 주지사 선거에서는 공화당 비벡 라마스와미 후보 진영이 민주당 에이미 액턴 후보의 의절한 친모를 광고에 등장시켰다. 액턴 후보의 친모가 "내 딸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 "평생을 거짓말하며 살아온 아이"라고 말하는 가족 폭로성 네거티브 광고는 오히려 라마스와미 후보에 역풍으로 작용한 분위기다.
텍사스주 연방상원 선거에서는 공화당 켄 팩스턴 후보 진영이 민주당 제임스 탈라리코 후보를 향해 트랜스젠더 아동과 급진적 젠더 이념에 집착하며 학교에 성적 그루밍(심리적 지배)을 밀어붙이고 있다고 공격했다. 미시간주에서는 민주당 후보가 미국에 이슬람 율법을 도입하려 한다는 종교 음모론 광고가 등장했다.
민주당과 친(親)민주당 외곽지원조직 슈퍼팩 역시 못지않은 고강도 네거티브를 쏟아내고 있다. 공화당의 행정 절차 개정안 표결을 왜곡해 공화당 후보들이 고령층의 메디케어(의료보험) 혜택을 박탈하고 억만장자 기부자들에게 팔아넘겼다거나 상대 후보의 법적 리스크를 자의적으로 잘라내 부패한 범죄자로 덧씌우는 등 자극적인 생존 공포를 주입하는 광고를 내보냈다.
'AI 딥페이크 동원' 도덕적 해이…"정책 사라지고 인상만 남아"
후보 캠프가 직접 제작하는 광고보다 외곽지원조직인 슈퍼팩이 집행하는 광고는 네거티브 비중이 더 크다. 슈퍼팩 광고의 경우 80% 이상이 상대 후보의 과거 발언, 도덕적 결함, 표결 기록을 자극적인 편집과 어두운 톤의 배경음악, 대조적인 그래픽으로 자극하는 공격형 메시지로 채워진다. 생성형 AI를 이용해 상대 후보가 급진·극단주의자들과 함께 서 있는 가짜 영상과 이미지(딥페이크)를 제작해 숏폼으로 유포하는 사례도 보고된다.
스티븐 안솔라베히어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는 "부동층 유권자를 내 편으로 만드는 비용보다 상대편 지지자의 투표 의욕을 꺾거나 부동층에게 상대 후보에 대한 비호감을 심어주는 것이 가성비가 뛰어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캐슬린 홀 자미슨 펜실베이니아대 아넨버그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는 "오늘날의 30초 정치 광고는 복잡한 사회적 합의나 정책 토론을 생략한 채 유권자의 감정을 자극하는 쇼트폼 콘텐츠처럼 소비된다"며 "결국 자금력이 풍부한 캠프가 유권자의 미디어 환경을 어떤 자극적인 키워드로 도배하느냐가 선거의 승패를 가르는 기현상을 낳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