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전략 고민 '시장론자' 나성린, 기재위 못떠나는 이유는?

집권전략 고민 '시장론자' 나성린, 기재위 못떠나는 이유는?

배소진 기자
2015.06.11 06:00
구글 선호 매체 등록 구글에서 머니투데이 추가하기

[the300][국회의원 사용설명서] 나성린 새누리당 의원

나성린 새누리당 의원/사진=머니투데이DB
나성린 새누리당 의원/사진=머니투데이DB

국회 의원회관 312호는 의원실이라기보단 '비상경제상황실'처럼 보인다.

의원실 한쪽 벽면은 '경제종합상황판'이라는 제목 아래 각종 경제관련 지표가 빼곡하다. 회의실 화이트보드에는 박근혜정부의 경제분야 대선공약과 중점추진 과제, 목표 등을 그린 도표가 자리잡았다.

그에겐 어떤 질문을 해도 대답은 결국 "나라 경제가 어려워 큰일"이라는 결론으로 귀결된다. 임기 8년 중 7년 째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를 떠나본 적 없는 나성린 새누리당 의원(61·부산 부산진갑)의 모든 신경은 경제에 쏠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 의원은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시절부터 작고 효율적인 정부를 강조하던 대표적인 시장주의 경제학자다. 이명박 대통령의 'MB노믹스'를 가장 잘 이해하는 인물로 꼽히며 정책개발에 깊숙히 관여했다. 한반도선진화재단 부이사장으로 활동할 당시 나 의원이 주창했던 '대한민국 선진화'는 MB정부의 국정운영 목표로 채택됐을 정도다.

사실상 MB의 '경제브레인'으로 활약하던 그는 18대 총선에서 공천마감 하루 전날 비례대표직을 제안받았다. 경제전문가로 주목받으며 국회에 입성한 나 의원은 MB정부 내내 감세정책의 선봉에 섰고, 2012년 19대총선에서 당의 경제분야 공약을 총괄했다. 재선 후에는 박근혜정부의 '경제민주화' 정책의 골격을 짜는 데도 일조하는 등 당내 대표적인 경제정책전문가로 자리매김했다.

나 의원에게 국회 기재위는 자신의 소명이다. 다른 상임위로의 이동은 별로 고려해본 적 없다고 했다. 경제학자 출신 정치인이 해야하는 역할이 분명히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선거때가 되면 여야할 것 없이 포퓰리즘적 법안, 경제를 망칠 수 있는 법안들이 마구 나올 겁니다. 저같이 경제이론을 정확하게 아는 사람들이 기재위에서 버텨줘야해요.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가는 길에 걸림돌이 되는 법은 다 막을 겁니다. 저는 그런 사명의식을 가지고 정치를 해요."

[시 쓰던 청년, 경제에 눈을 돌리다]

뽀얀 피부와 깔끔한 외모덕에 부잣집 모범생아들같은 이미지의 나 의원이지만 알고보면 전형적인 서민가정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육군 하사관 출신 직업군인이었다. 초급장교로 전역 후 장사를 시작했지만 살림은 넉넉하지 못했다. 비싼 담배대신 담배가루를 종이에 말아피던 시절, 초등학생 나 의원은 영도다리 밑에서 담배꽁초를 주워 팔기도 했다.

나 의원이 서울대 철학과(미학전공)에 입학한 지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유신이 시작됐다. 문학회에 가입해 운동권 친구들과 매일 대낮부터 술을 마시고 '개똥철학'으로 논쟁하는 게 당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나 의원은 "친구들이 데모를 하다 군대에 끌려가고 난 날의 허탈함에 30분만에 갈겨 쓴 '70년대'라는 시가 대학문학상(75년 가작)에 당선되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그럼 어쩌다 경제학자가 됐을까. 그는 "철학이 너무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1등으로 졸업했지만 평생학문으로 할 정도는 아니었다. 무엇보다 가난하고 혼란스러운 대한민국의 현실을 바꾸려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경제학이다.

나 의원은 "모든 혁명적 이데올로기는 경제학적 사고가 기본"이라며 "가장 실사구시적인 학문을 통해 변혁을 이끌어내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졸업 후 해군장교로 군복무를 마친 그는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당시 무역학과)로 학사편입을 했다. 남들은 한 번 들어가기도 힘든 서울대를 두 번이나 다닌 것이다.

/사진=나성린 새누리당 의원실 제공
/사진=나성린 새누리당 의원실 제공

[키워드→ 영국유학, 마가렛 대처]

1980년 나 의원은 교수의 꿈을 안고 유학을 떠났다. 보통 경제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미국으로 가지만 그는 특이하게도 영국을 택했다. 당시 '요람에서 무덤까지'라 할만큼 사회복지제도가 가장 잘 발달한 영국을 배워, 우리나라도 사회복지국가로 만들어보겠다는 게 당시 나 의원의 결심이었다.

호기롭게 떠난 유학 생활은 쉽지않았다. 하필 나 의원이 떠나기 직전 영국이 국가부도사태를 맞았다. 유학 초기 잠깐 집세보조, 무상의료 등 복지제도의 단맛을 보기도 했지만 영국재정이 어려워질수록 외국인에 대한 혜택이 축소됐다.

생활비와 학비는 아내가 런던의 한국 회사에서 일을 하며 충당했다. 아이가 태어난 뒤 회사를 관둔 아내는 피아노 교습, 미술대학 스케치모델, 베이비시터 등 온갖 아르바이트를 했다. 나 의원이 한 지역방송 인터뷰에서 "집사람은 그 때 기억을 아예 하고싶어 하지 않는다"고 눈시울을 붉힐 정도로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옥스퍼드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던 시절 생활비가 똑 떨어져 고생하던 나 의원에게 돈을 빌려줬던 이웃집 유학생이 있었는데, 바로 손학규 전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이다.

사회복지제도를 배우러 갔지만 정작 나 의원은 "배워온 건 '사회복지 이렇게 하면 나라 망한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오히려 마가렛 대처 수상이 과감한 노조개혁, 공기업민영화, 사회복지지출 감축 등을 통해 소위 영국의 '복지병'을 치유하는 과정을 11년간 지켜보며 시장주의 개혁의 지지자가 됐다.

나 의원은 '당시 영국은 지나친 복지가 독이 돼 경제성장을 저해했고, 성장률이 떨어져 줄어든 세수를 메우기 위해 세금을 올렸다가 내수경제가 더 활력을 잃는 악순환에 빠져있었다'고 진단한다. 현재 정치권의 주요 화두인 '복지와 증세' 문제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설명이다.

[키워드 → 우파 재집권 전략]

그는 자신을 '우파'라 부르는데 거리낌이 없다. 더 정확히는 '합리적 우파', '중도보수'로 분류한다. 우리가 흔히 쓰는 보수-진보 이분법은 잘못됐다고 했다. 우파는 시장의 역할을, 좌파는 정부의 역할을 더 중시하는 것일 뿐 어느 한쪽이 우위에 있지 않다는 것.

나 의원은 "북한에선 공산주의가 보수고 자본주의가 진보 아니냐"며 "시대나 장소에 따라 보수와 진보가 달라질 수 있는데 우리나라는 좌파가 진보를 선점하고 도덕적 우위에 있는 것처럼 돼버렸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시장경제를 신봉하지만 그의 경제정책은 시대에 따라 변화했다. 나 의원이 진보적 시민단체로 꼽히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창립멤버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지않은 사실이다.

1990년대 재벌개혁과 탈세척결 '경제정의'에 목소리를 높이던 나 의원은 2000년 중반 선진화운동을 통해 '성장'을 주장했고, 2008년 국제 금융위기를 겪으며 '분배'에도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2011년 여의도연구소 비전위원장을 맡아서는 성장과 분배의 조화를 강조한 '한나라당 뉴비전'을 내놨고, 이를 계기로 한나라당은 보수에서 중도보수로 외연확장을 선언한다.

나 의원의 최근 고민은 차기 집권전략이다. MB정부의 선진화, 박근혜정부의 경제민주화와 같은 거대담론의 흐름을 주도해야 정권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 시대정신을 고민하는 것 또한 경제학자 출신인 자신의 책무라고 강조했다.

[키워드→ 부산의 아들]

나 의원은 18대 비례대표 중 유일하게 재선으로 살아남은 희귀한 케이스다. 그것도 자신의 고향인 지역구에 안착했으니 다른 비례의원들에겐 부러움의 대상이다.

사실 19대 총선은 시작부터 피말리는 반전의 연속이었다. 처음 노린 곳은 서울 강남권이었으나 비례대표 의원에게 수도권 전략공천을 주지않기로 결정이 났다. 다음 무산된 곳은 TK지역. 그리고 PK지역에 전략공천 금지가 내려올 차례였다.

그러나 야당이 '낙동강 벨트'에서 위협적인 기세로 선전하기 시작했다. 때마침 부산에도 경제전문가 출신 의원이 한 명쯤 있어야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선거날을 코앞에 두고 뒤늦게 공천을 받은 나 의원은 조직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고향에 내려왔다.

인지도 부족, 새누리당 탈당인사의 무소속 출마 등 악조건속에 선거가 치러진 부산진갑 지역은 전국에서 세손가락에 꼽히는 '초초박빙' 지역이었다. 심지어 나 의원은 출구조사에서도 패배했었다.

천신만고끝에 자리잡은 지역구인라 애정도 남다르다. 한달에 비행기만 20번 넘게 탈 정도로 '월화수목금금금'이다. 아침 비행기로 서울에 왔다가 점심은 부산, 저녁은 다시 서울로 올라가는 일정도 거뜬히 소화할 정도로 부지런하다. 술도 담배도 하지 않는 그는 "지역구를 돌면서 스트레스를 푼다"고 했다.

[이 사람의 한마디]

"박근혜식 증세가 한계에 도달한 거예요. (중략)이제 국민대타협위를 통해 증세를 논의할 타이밍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증세를 논의하되 우리 당도 책임이 있지만 지금 무상복지를 이대로 두고는 아무리 법인세를 증세해도 충분치 않습니다. 이 기회에 조금씩 선별적 복지로 전환하면서 동시에 증세를 논의하는 게 어떨까 합니다."(2015년2월4일 2014년도 귀속 근로소득 연말정산 현안보고)

"저는 선진국은 이미 물건너갔다, 이렇게 생각해요. 이젠 국민들도 아셔야됩니다. 제가 선진화운동을 펼칠 때가 2005년인데 당시 '2019년이면 고령사회로 접어드니 그 전에 선진국 문턱에 도달해야 한다, 국민소득 3만불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그런데 2008년 금융위기로 제대로 성장을 못하고 경제활성화법 통과 못시키는 사이 고령화사회가 와 버린 겁니다. 이대로는 (경제)성장률이 1~2%밖에 안됩니다. 이미 선진국들은 국민소득 5~6만불로 도약했죠. 단언하지만 선진국은 물 건너갔고 선도중진국 위치라도 제대로 지켰으면 좋겠는데 걱정이예요."(2015년 5월12일 머니투데이 the300 인터뷰)

[이 한장의 사진]

나 의원은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당시 지도교수가 제임스 멀리스 현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 조세이론의 권위자로 1996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가난한 사람과 부자 모두의 근로의욕을 떨어뜨리지 않으면서 불평등은 해소할 수 있는 과세체계를 연구한 '최적조세이론'으로 유명하다. 나 의원도 최적조세이론으로 박사논문을 썼다.

[대표법안]

◇금융소득종합과세 기준 하향조정=금융소득 과세강화 방안의 일환으로 2012년 대표발의한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 법안 통과로 금융소득종합과세 기준금액이 4000만원에서 2000만원으로 하향조정되고, 시가총액 70억원 이상을 보유한 주주가 양도하는 주식에 대해 양도소득세를 부과하게 됐다.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폐지=다주택자가 주택을 매매할 때 발생하는 양도차익에 세금을 물던 양도세 중과제도를 폐지했다. 부동산 시장 정상화를 위해 2013년 세법개정 당시 여당이 강력하게 드라이브를 걸어 관철시켰던 법안이다.

◇파생상품 양도소득세 과세=나 의원이 2013년 대표발의한 소득세법 개정안은 파생상품 양도로 발생하는 소득에 대해 250만원의 기본공제를 해주고 나머지 차익에 대해 10%의 소득세를 부과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지난해 조세소위에서는 초기 10% 세율부과, 향후 점진적으로 20%까지 올리는 방안으로 가닥이 모였다. 그러나 2016년 시행이라는 이유로 예산부수법안에서 빠져 정기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한 채 계속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그의 사람들]

◇새누리당 '경제 어벤저스'=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을 비롯해 현 기재위 조세소위원장인 강석훈 의원, 김현숙 의원, 이종훈 의원 등 경제학자 출신들과 한국 경제의 나아갈 길과 새누리당의 다음 시대정신을 함께 고민한다. 박세일 서울대 명예교수와 부산고 1년 후배인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 등도 오랜 신뢰관계가 있다.

◇박원석 정의당 의원=기재위 동료이자 후배 의원으로서 때로는 논리대결을 벌이는 카운터파트너 역할도 한다. 경제철학은 정반대지만 서로 말이 통한다는 평가. 상대방이 주최하는 토론회에 토론자 '품앗이'도 자주 하는 등 소속정당을 뛰어넘는 친분을 쌓아가고 있다.

◇황지우 시인=한 때 함께 자취를 하기도 한 서울대 미학과 절친한 동기.

[요주의!]

경제학자로서의 소신이 분명하고 내가 가는 길이 옳다는 강한 확신이 있다. 그런만큼 자신과 반대되는 경제정책에 대한 평가는 아무래도 박하다. 다소 차가워보이는 외모에 친(親)재벌 이미지까지 씌워지다 보니 '엘리트주의자'로 비칠 우려가 있다.

PK지역은 통상 현역의원 2명 중 1명이 공천에서 탈락할 정도로 물갈이 비율이 높은 곳으로 꼽힌다. 더 큰 문제는 지역구인 부산진갑의 '야성'이 만만찮다는 점. 물론 새누리당 정책통으로서 나 의원의 위상이나 역량은 공고하다. 3선에 성공하기만 하면 당내 굵직한 역할을 도맡을 것으로 기대된다.

[프로필]

△부산 출생(1953년생) △부산진초등학교 △부산중학교 △부산고등학교 △서울대학교 철학과(1976년)·국제경제학과(1981년) 졸업 △영국 옥스퍼드대학원 경제학 박사 △영국 에섹스대 경제학과 조교수 △미국 워싱턴대 경제학과 초빙부교수 △한양대학교 경제금융대학 경제금융학부 교수 △경실련 정책위의장·경제정의연구소장 △한반도 선진화재단 부이사장 △18대 국회의원(비례대표) △한나라당 비전위원회 위원장 △제18대 대선공약단 국민행복추진위원회 민생경제대응단장 △새누리당 정책위원회 의장 대행 △6.4 지방선거 새누리당 중앙공약단장 △19대 국회의원(부산 부산진) △19대 국회 전반기 기획재정위원회 여당 간사 △새누리당 민생경제종합상황실장 △새누리당 정책위 수석부의장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배소진 기자

안녕하세요. 티타임즈 배소진 기자입니다.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