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300]종합
촛불이 만든 '랜선 민주주의' 등장…직접 민주주의 욕구 폭발

지난 10월29일 시작된 촛불집회는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가결시킨 원동력이됐다. 분노와 열망이 스마트폰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인터넷 '랜선'을 타고 폭발하면서 국민이 의사결정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뛰어넘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보를 공유하며 스스로 배우고 행동하는 주체적 개인들이 광장에 모여 거대한 연대를 이뤘고, 온라인과 광장의 결합은 더 큰 에너지를 만들어냈다. 8차까지 이어진 촛불집회를 두고 전문가들은 '직접민주주의의 시작' '정치계급의 붕괴'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국회의원 국민소환제 등 직접민주주의 요소 확대 필요성이 정치권에서도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한발 나아가 정치권에서는 앙시앵레짐(구제체)인 '다수결에 의한 대의민주주의'는 그 시효가 다했다며 시민의 직접 참여에 의한 풀뿌리 정치 시스템이 그 대안으로 직접민주주의를 도입하려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직접민주주를 실현하고자하는 움직임은 새누리당을 탈당해 새로운 정치 모델을 구현하려는 탈당파에 의해 구체화되고 있다. 새누리당 선도탈당그룹인 김용태 의원과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시민들이 직접 정책을 제안하는 직접민주주의 모델을 담은 온라인 기반의 시민 참여형 보수정당을 창당하기로 뜻을 모았다.
이들은 국민권력을 강화하는 정당을 만들겠다는 각오다. 김용태 의원은 지난 19일 "당원과 국민이 모든 과정에 참여해 의사결정의 주체가 되는 정당을 만들 것"이라며 △국민제안권 △국민소환권 △국민공천권을 중심으로한 '국민권력 강화 3종세트' 정당의 취지를 설명했다.
그는 먼저 "헌법사항이지만 헌법이나 법률을 개정할 수 있도록 제안하는 권한은 정부와 국회의원밖에 없다"면서 "국민들도 법률개정을 제안할 수 있는 법률을 만들 것"이라며 국민제안권을 내세웠다. 두번째로는 "국민들이 지자체장이 잘못하면 소환할 수 있는 제도는 있는데 국회의원이 잘못했을 경우 소환할 수 있는 제도는 없다"면서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이에 대한 제도가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국민이 국회의원을 소환할 수 있는 제도를 적극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새누리당이 전가의 보도처럼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주겠다고 천명했지만 끝까지 추진하지 못했다"며 "공천권에 국민이 관여하도록해 투명한 공천제도를 마련해 국민에게 신뢰받는 정치를 구현하겠다"고 피력했다.
이들은 국민 참여를 위해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하기로 했다. 정치참여를 위한 온라인 기반의 정당은 전세계적인 추세기도 하다. 이미 2014년 스페인에서는 온라인 기반의 신생 정당 '포데모스'가 돌풍을 일으켰다.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지난 15일 신당창당을 선언하는 자리에서 "포데모스 스페인 정당은 스마트폰 하나로 의사결정을 다한다. 공천권도 필요없다. 우리는 포데모스 정당에 주목한다. 직접 민주주의 형태의 요구가 분출한 촛불민심에 걸맞는 '네트워크형 신당'을 만들어 한국 정치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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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데모스식 정당은 정보기술(IT)·모바일 중심의 4차 산업혁명 기술을 활용해 국민의 목소리와 의견을 수용하는 시스템을 갖춘 것을 말한다. 남 지사도 이 모델을 접목해 시스템을 갖춰 나가겠다는 계획이다. 신당은 보수, 중도 보수, 중도 진보, 진보 등 기존 정치 이념에서 벗어난 새로운 이념의 실용 정당을 추구하기 때문에 이를 실현하기 위해선 기존에 없는 새로운 '플랫폼'을 만들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천정배 전 국민의당 대표도 지난 13일 의원총회에서 "정치가 달라져야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이번 국민혁명을 통해서 국민주권주의를 강화시키는 것이 우리 정치구조 개혁의 과제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천 전 대표는 "국민주권 강화는 두 가지다. 하나는 직접민주주의제도를 강화해야할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대의민주주의 제도를 보다 효율적이고 주권자 의사를 잘 반영하도록 강화시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직접민주주의 제도는 과거 헌법에 오히려 잘 돼 있었다. 국민발안제, 국민투표제, 국민소환제 이런 직접민주주의 제도들이 잘 갖춰져 있었다. 그 후에 오히려 더 후퇴했다"며 "국민들이 아무리 바라는 것이라도 대의기구인 국회나 대통령이 해주지 않는 일에 대해서 국민이 아무런 수단을 못 가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사단법인 '새 한국의 비전'을 이끌며 독자 세력화를 모색 중인 정의화 전 국회의장도 대의민주주의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저비용·고효율의 디지털 민주주의'를 제안한 바 있다.
그는 "온라인 시대에 걸맞게 국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토론할 수 있도록 대의 민주주의에 '직접 민주주의' 요소를 도입해 보완할 필요가 절실하다"며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통신(IT) 기술력과 국민들의 참여 열기를 생각할 때 '내 손안의 민주주의', '스마트 민주주의'는 이미 눈앞의 현실이다. 내년 대선, 그리고 다음 지방선거와 총선을 앞두고 대한민국에 최초의 디지털 정당이 탄생하는 데 기여하고자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일 못하고 민의 거스르는 국회의원, 파면이 정답?

탄핵 촛불집회를 계기로 '대의 민주주의'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민심에 반하면 선출받은 권력도 소추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여론이 급격히 확산되면서다.
탄핵 정국에서 촛불민심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에 반대하는 새누리당 의원들을 향해 '민심에 이반한다'며 국회의원 소추 의견을 내놓기 시작했다. 김진태 의원의 '촛불은 바람불면 꺼진다'란 발언은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의 새누리당 이완영·이만희 의원의 증언 공모 의혹이 불거지자 '국회의원 리콜' 요구에 힘이 실렸다.
이런 이유로 다음 아고라에는 지난달 국회의원 주민소환제 청원 요구 요청글이 올라왔다. 최근 서명자가 1000명을 넘어섰다. 네이버 검색 트랜드 기준으로 보면 2008년 광우병 파동 이후 가장 많은 이용자들이 '국민소환제'를 검색했다.
국민소환제는 선거에 의해 선출된 국민의 대표를 임기가 끝나기 전에 국민에 의해 파면하는 제도다. 현재 우리나라는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 등은 현행 지방자치법과 주민소환에 관한 법률의 소환규정에 따라 '주민소환'이 가능하다. 그러나 국민소환에 관한 규정은 없어 국회의원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다.
◇국민적 요구에 정치권도 앞장
국민적 요구가 거세지자 정치권에서도 국민소환제를 입법화하려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8일 국회의원의 청렴 의무 등을 규정한 헌법 제46조를 위반했거나 직권 남용 및 직무 유기 등의 사유에 해당될 경우 국민들에 의해 파면될 수 있는 내용의 '국회의원의 국민소환에 관한 법률안' 제정안을 20대 들어 가장먼저 발의했다.([단독]국회의원 국민소환제 추진…탄핵 부결되면 압박↑)
김 의원의 총선 공약이기도 했던 이 법안은 국회 스스로 국회의원을 퇴출시키는 방안을 만든다는 것이어서 발의 과정에서 동료 국회의원들의 눈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탄핵 정국으로 국민적 요구가 거세지자 요건을 갖춰 법안 발의를 강행했다.
같은당 박주민 의원도 국민소환제에 관심이 많다. '세월호 변호사'로 잘 알려진 박 의원은 같은날 '국회의원도 리콜이 되나요?'라는 제목으로 국민소환제 관련 라이브방송을 진행해 호응을 얻었다. 민주당은 19일 국민소환제를 포함한 12개 '12월 촛불시민혁명 입법·정책 과제'를 발표하고 늦어도 내년 4월까지 관련 법과 제도를 정비하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국민의당도 적극적이다. 당대표 후보로 나선 문병호 전략홍보위원장은 공약으로 국민소환제와 같은 내용의 '국회의원 탄핵제' 도입을 내세웠다. 문 전략홍보위원장은 "망언이나 증인 위증 교사 의혹 등으로 국민을 능멸하거나 법률을 위반하더라도 국민의 이름으로 제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면서 "국회의원에게도 국민탄핵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정동영 국민의당 의원도 방송 인터뷰에서 현행 대의제로는 불충분하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국민 법안 발의제'와 함께 '국회의원 소환제' 도입을 주장했다.
국민소환제의 표적이 되고 있는 새누리당에서도 변화 움직임은 감지된다.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는 자신의 SNS를 통해 민주당의 입법·정책과제 중 눈길을 끈 제도를 소개하면서 주민소환제 등의 추진을 기대한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지역에 매몰, 포퓰리즘 우려…해외서도 드물어
한편에서는 국민소환제가 국회의원의 소신있는 의정활동을 방해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어 신중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국민의 대표로서 임기를 보장받아 헙법과 법률, 직업적 양심에 따라 수행하는 '자유위임원칙'에 위반될 소지가 있다는 해석이다.
국회 입법조사처에 따르면 국민소환제의 쟁점으로 대의제 민주주의와 자유위임원칙의 위배 문제 외에도 △국민전체의 이익보다 지역구 이익에만 집착하는 문제 △지역과 무관한 소환발의 허용시 반대당 의원 소환 요구 봇물 △지방의원과의 평등성 문제 △우회적 신임투표로의 악용 가능성 등을 문제로 삼았다.
이런 이유로 지난 국회에서도 도입을 약속했지만 실천에 옮기지 못했다. 고 노무현 대통령 탄핵 이후 치러진 17대 총선에서 여야 5개 정당이 국민소환제 도입에 동의했지만 무산됐고, 이후 국회에서도 번번이 입법에 실패했다. 18대에선 김재윤 의원이 '국민소환에 관한 법률'을, 19대에선 이종걸 의원이 '국회의원윤리실천특별법안'에 국민소환제 내용을 담았지만 상임위에서조차 논의되지 못했다.
정치 선진국에서도 국민소환제가 전면 도입된 사례를 찾기 어렵다. 미국의 경우 주의회 의원에 대한 소환제는 있지만 연방의회 단위의 국민소환제는 없다. 독일도 나치를 탄생시킨 배경에 국민소환제도가 있다고 보고 현재는 채택하지 않는다. 영국은 하원의원에 한해 국민소환제도를 도입했지만 범죄사실이 인정되는 등 특수한 경우에 한해 제한적으로 적용된다.
입법조사처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쟁점에 대해 대화와 타협을 시도하지 않고 국민소환운동으로 압박해 정치적 교착상태에 빠질 우려가 있다"며 "국회의원의 대중영합적 정책만 선택하거나 여론의 방향에 따라 정책이 일관성을 가지지 못하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민의 반영 못하는 국회…'국회해산' 주장은 단골손님

탄핵정국에서 국회가 '촛불민심'에 부응하지 못한다는 비난이 쏟아지자 국회 스스로 '국회해산'을 언급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박근혜-최순실게이트' 공범으로 지목되는 새누리당 친박(친박근혜)계 국회의원들이 '버티기'를 하는 현재 상황도 '여론이 가까워도 선거는 멀다'는 역설에서 비롯된다는 지적이다.
국회 해산은 탄핵정국 이전에도 정치 불신에 대한 민심에 편승해 종종 언급돼 온 주장이다. 국회가 '민의의 전당' 기능을 상실했을 때 국민들이 국회 해산을 요구하고 총선거를 치러 다시 국회의원을 뽑아야 한다는 취지다.
지난 2013년 11월 김황식 전 국무총리는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된 후 국회를 찾아 "국회 해산 제도가 있었다고 한다면, 국회를 해산시키고 다시 국민의 판단을 한 번 받아야 되는 그런 상황이라고 생각한다"고 돌직구를 던졌다.
서울대 법학대학원장, 헌법학회장을 지낸 정종섭 새누리당 의원은 2014년 9월 안전행정부 장관 취임 직후 국회에 대해 "내각제였다면 해산해야 할 상황”이라며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은 긴급재정명령은 내릴 수 있어도 국회해산은 못한다. 국회가 자진해산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발언해 논란을 일으켰다.
당초 제5공화국 헌법(제8차개헌)까지는 대통령이 국회를 견제하는 수단으로 국회해산권을 뒀다. 그러나 독재 정권에 의해 국회해산권이 악용되는 경험을 거치면서 제6공화국 헌법(제9차개헌)에서는 국회해산 관련 규정을 아예 삭제해버렸다. 이에 따라 현행 헌법으로는 국회를 해산할 수 있는 길이 전혀 없다.
정종섭 의원의 지적처럼 국회의원들이 의원직을 사퇴해 국회가 자진해산한다고 해도 민의의 요구에 따라 총선거를 치른다는 규정은 없다. 헌법 41조에서 규정한 국회의원 수 200인 이상을 충족시키기 위한 재보선이 치러질 뿐 이전 국회가 계속 이어진다.
국회가 민의를 대변하지 못해도 이를 지켜봐야 하느냐는 국민들의 불만이 표출되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국회 해산 등 민의에 보다 민감하게 대응할 수 있는 내각제 요소를 강화한 분권형 개헌을 대안으로 들이밀고 있다.
내각제에서는 여론의 지지가 현저하게 낮아질 경우 의회가 해산 후 총선거를 치르는 절차를 밟을 수 있다. 국민들이 국회에 불신임 의사를 확실하게 보낼 때마다 선거로 심판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려있다는 뜻이다. 현재 청와대는 물론 정부와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에 대해서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치는 상황에서 당장 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질 가능성이 있다면 새누리당이 민심과 동떨어져 박 대통령과 최순실씨를 감싸고 돌기 힘든 상황이 되는 셈이다.
그러나 내각제가 대통령 중심제에 비해 보다 충실하게 민의를 대변할 것으로 보기 힘들다는 주장도 만만찮다. 지역주의에 기반한 정당 구도와 여전히 '패거리 정치' 성격이 큰 정치 문화 등으로 인해 내각제에서는 오히려 국민들의 요구나 이익, 목소리에서 멀어져 국회가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할 것이란 반론이 제기된다.
한 야권 인사는 "국민투표를 통해 국민적인 동의를 얻어야 하는 개헌에 대해 두세달이면 충분하다고 말하는 일부 국회의원이야말로 민의를 전혀 대변하지 못하는 국회의 진면목 아니겠느냐"며 "지금 당장 국회 해산 후 총선거를 치르면 국민들이 어떤 국회의원들을 솎아내려 할 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