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집]내 장례식장까지 달리기하듯 죽음을 대하는 '유쾌한 시선'

김정수 시인
2016.01.16 03:03

<32> 유지소 시인 ‘그것은 바나나가 아니다’

[편집자주] <font color=blue>'시인의 집'은 시인이 동료 시인의 시와 시집을 소개하는 코너다. 시인의 집에 머무는 시인은 독자들이 쉽게 이해하고, 감상하고, 바쁜 일상에서도 가깝게 두고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좋은 시와 시집을 소개한다. 여행갈 때, 잠시 휴식을 취할 때, 시 한편을 읽을 수 있는 여유를 갖는 일, 시 한수를 외우고 읊을 수 있는 삶의 여유를 갖는 것 또한 시인들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font>

‘죽음이 재미있다.’

유지소 시인(2002년 ‘시작’으로 등단)의 두 번째 시집 ‘그것은 바나나가 아니다’는 죽음을 주로 다루고 있는데, 유쾌하다. 도무지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낄 수가 없다. 이 세상에 소풍 온 것이라고 노래한 천상병 시인의 유유자적은 아니지만 죽음을 대하는 방식이 신선하다.

죽음을 달리기에 비유한 시 ‘완주’에서는 ‘죽은 나’가 장례식장에 도착하는 상황을 아나운서처럼 중계한다. “삼단 근조 화환을 들고” “엔틱플라워 사장님이” ‘죽은 나’보다 먼저 장례식장에 도착해 결국 “자기 장례식에도 늦을 놈”이 되고 만다. 영정이 장례식장에 도착하자 “사람들이 일제히 나를 향해 일어”서고, “나는 손가락으로 V를 그리며 찡긋 웃어주”기까지 한다.

시 ‘다정한 모자’에서는 “내가 죽으면 저 바다에 뿌려”달라는 엄마의 유언에 아들은 “쓰레기를 버렸다고 벌금을 물게 될 거”라며 거절한다. 아들이 “차라리 땅을 파겠”다고 하자 엄마는 “나보고 모자를/ 죽어서도 쓰라고 말하는구나 죽어서 쓰는 모자는/ 봉분밖에” 없다면서 모자를 봉분과 동일시한다. 유언에 대한 모자간의 대화는 마치 선문답 같다.

사실 이 시집에서 죽음조차 재미있게 느껴지는 건 “우우우리는 점점 깊어집니다”(‘우리테니스교실’)와 같은 말더듬이어법과 말을 중복해서 쓰는 반복어법 그리고 풍자적 유성어의 빈번한 사용에 있다. 시 ‘우리 집에 살던 귀뚜라미가 죽을 때까지 하신 말씀이’에서는 “난나난나 넌너넌너”를, 시 ‘내 방에 매달린 벽시계가 1초마다 말씀하시길’에서 “넌-나. 난-너.”를 시집 한 페이지나 반복하고 있다. 이뿐 아니라 시 ‘우리 동네 뻐꾸기가 우는 법’에서는 “바꿔! 바꿔!”를 외치며 “몸이 바꾸는 것이 삶”으로 “삶은/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라 한다. 남의 둥지에 알을 낳는 뻐꾸기의 습성을 통해서 거침없이 풍자하고 있다.

그 해변에서는 가벼운 화재도 사소한 싸움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도대체 살아 있는 사람이 도착하지 않는 것이다

그 해변은 지루해서 지루해서 지루해서 작은 모래알은 더 작은 모래알을 질투하는 것이다 더 작은 모래알보다 더

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 작아지려고 자꾸 발끝을 벼랑 위에 세우는 것이다 벼랑이 먼저 무너지는 것이다

모래를 넘어 모래를 넘어 모래를 넘어 모래를 넘어 모래를 넘어 모래를 넘어 모래가 넘어지는 것이다 그 해변은 그렇게 더

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 가까이 세계의 끝으로 다가가고야 마는 것이다

-‘그 해변’ 전문

“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나 “지루해서 지루해서 지루해서”, “모래를 넘어 모래를 넘어 모래를 넘어 모래를 넘어 모래를 넘어 모래를 넘어”의 반복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완충해주는 역할을 해준다. “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가 죽음에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선반 위의 물건을 꺼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게 언어가 가지고 있는 힘이고, 이 시를 이끌어가는 동력이다. “나는 한글을 쓰는 사람이다”는 시인의 말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신(神)은 모르겠으나 생명이 있는 것들은 다 죽는다. 죽음만큼 평등한 것도 없다. 그래서 시인은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는 것 정말 매력적인 평등이야.”(‘선물용 과일 바구니’)라며 유쾌하게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하면서 “발끝을 벼랑 위에 세”울 수 있는 것이다.

◇ 이것은 바나나가 아니다=유지소/파란/160쪽/9000원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