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 '아주 보통의 연애' 등 한국 젊은 여성들의 감수성을 대표해온 소설가 백영옥이 신간 '애인의 애인에게'를 펴냈다. 뉴욕 예술계를 배경으로 한 남자를 둘러싼 세 여자의 사랑과 고독을 다뤘다. 'Hello stranger'란 이름으로 웹진에 발표했던 단편이었으나 독자들의 호응에 힘입어 장편소설로 재탄생했다.
결혼 실패 후 뉴욕으로 유학온 이정인은 예술 강의를 듣다 같은 반 수강생 포토그래퍼 조성주를 짝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성주는 강사 김수영을 사랑하고 성주의 아내 장마리는 그의 외도를 눈치챈다. 결국 이혼을 결정한 성주 부부는 한 달 간 이별여행을 떠나고. 정인이 그들의 집을 렌트한다.
첨엔 성주의 체취를 맘껏 훑을 요량이었다. 헌데 눈에 밟히는 건 성주가 아닌 마리의 흔적. 집안 곳곳 마리의 외로움이 어지러이 널려 있다. 특히 뜨다만 스웨터. 성주를 위해 뜨기 시작했을, 그러나 완성하지 못한 스웨터가 마치 누군가의 '잘려나간 몸' 같이 느껴졌다. 결국 정인이 대신 스웨터를 완성하는데 성주가 아닌 마리를 위한 스웨터다. 남겨질 마리를 감싸 안아줄.
한 남자를 두고 미묘한 관계를 형성하지만 세 여자에겐 질투나 원망이 없다. 오히려 동질감과 짠한 감정이 묻어난다. 특별히 이정인이 그렇다. 성주의 집에서 발견한 마리가 뜨다 만 털실을 풀어 마리를 위해 하는 뜨개질. 그것은 자신과 닮은 마리를 향한 격려와 위로의 메시지다.
한편 계속된 유산과 불행한 결혼 생활로 지친 김수영은 성주의 열렬한 사랑에 잠시 흔들리지만 그것이 사랑이 아님을 직감한다. 산란하는 빛을 찍는 포토그래퍼 성주는 '예술가라면 창작을 위해 자학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 성주는 지금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젊은 예술가의 비극적 사랑에 도취됐을 뿐이다. 정인은 수영에게도 스웨터를 짜 보낸다.
사랑을 이야기하지만 소설이 주목하는 건 실연과 실패를 경험한 여인들의 심리이며 사랑을 갈구하는 이들의 애잔함이다. 누구의 사랑도 마주 보지 못한 채 엇갈리는 이들의 모습은 사랑이야말로 가장 고독한 것임을 생각하게 한다. 수영의 말처럼 인간은 각자의 사랑을 할 뿐인지도. 내가 그를 사랑하고 그가 나를 사랑할 뿐, 두 사람이 같은 사랑은 하는 것은 아니다.
◇애인의 애인에게=백영옥 지음. 예담 펴냄. 280쪽 /1만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