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슬콘소나무는 4789년을 살고, 크레오소트부시는 1만 1700년을 산다. 식물이 이렇게 오래 사는 것은 세포 분열과 생장이 사실상 무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다르다. 세포 분열로 염색체 양 끝의 텔로미어가 짧아지면 분열이 더 일어나지 않아 노화가 촉진된다. 텔로모레이스라는 효소가 텔로미어를 되감아 세포의 수명을 혹시 늘린다면, 이때 암 발생 위험도 증가한다.
단세포 생물이 다세포 생물로 진화하면서 수명이 연장됐지만, 그 대가로 얻은 부산물이 암인 셈이다.
죽음을 잊는 것은 젊음의 특권이나, 잊힘을 사유하는 것은 노년의 숙명이다. 영화감독 우디 앨런은 “나의 작품으로 불멸을 얻고 싶지 않다. 죽지 않음으로 얻고 싶다”고 했다. 인간 누구나 식물처럼 반 영생을 꿈꾸지만, 진화의 대가로 늙음과 죽음을 얻었다.
번식의 이점 때문에 자연선택은 무려 27억 년을 단세포를 선호해왔다. 단세포에서 다세포 생물로 넘어간 이후 인간은 ‘장수’라는 개념을 획득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장수의 수수께끼는 ‘우리가 왜 이토록 금방 죽는가’가 아니라 ‘왜 이토록 오래 사는가’로 모여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 조너선 실버타운은 생명의 역사 38억 년이 끊임없는 자연선택의 과정이었다고 설명한다. 자연은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하는 생명만 골라 진화시켜왔기 때문이다. 그런 진화의 혜택을 받은 인간은 번식의 대가로 생존을 감수해야 했다. 번식에 유리한 몸이 되면 생존에는 불리할 수밖에 없다. 장수 유전자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이 유전자를 후손에 물려주려면 번식 경쟁에서 승리해야 한다.
책은 ‘상반적 대가’라는 대조법으로 장수와 노화에 대한 비밀을 파헤친다. 이 과학적 논제를 문학, 신화, 역사를 통해 비유하는 건 또 다른 재미 중 하나. 이를테면 유산소 호흡은 악마와 맺은 계약이라고 저자는 보고 있다.
유산소 호흡이 없으면 아예 살 수가 없지만, 산소 호흡을 하면서 영원히 살 수는 없다. 생명의 불에 열량을 태울 때마다 자신을 화장하는 장작을 태우는 셈이다. 이 과학의 ‘상반적 대가’는 셰익스피어가 일찌감치 소네트에서 노년을 이글거리는 불잉걸에 비유한 구절에서 만날 수 있다. ‘청춘의 재로 사그라지는/임종의 침상에서 사위어야 할/타올랐던 것으로 재가 되어 소멸하는 불씨’
수명이 다른 생물의 암 발생률과 비슷하다는 ‘피토의 역설’, 노화속도는 정해져 있는데 인류의 수명이 두 세기 만에 두 배로 증가한 ‘장수 역설’, 노화가 용인되고 폐경이 선호되는 ‘자연선택의 역설’ 등 진화에 따른 노화의 피할 수 없는 증거들이 생생하게 나열돼 있다.
유전자가 장수에 미치는 영향력이 25~35% 정도라는 사실, 생식 후 죽음으로 대가를 치르는 단회번식의 진화 생물들, 틀린 이론으로 확인된 활성산소 노화이론의 근거 등 재미있는 읽을거리도 풍부하다.
저자는 "다른 생물을 이해하면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며 "늙고 죽는 일이 우주 생명체 전체가 지닌 숙명으로 받아들일 때 더 이상 무겁고 심각한 일로 여기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늙는다는 건 우주의 일=조너선 실버타운 지음. 노승영 옮김. 서해문집 펴냄. 256쪽/1만3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