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을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보내는 로맹 가리의 편지

김유진 기자
2016.03.21 07:05

[따끈따끈 새책] 로맹 가리 '게리 쿠퍼여 안녕'…냉소적 태도를 유지하며 희망을 갖는 법

"과거에는 인과관계라는 것이 확실했지만 이제 그런 시대는 끝났음을 인정해야 했다. 부모들 세대는 운이 좋았다. 그 세대에게는 히틀러와 스탈린이 있었고 그들에게 모든 짐을 지워버리면 그만이었지만, 지금은 히틀러도 스탈린도 아니요 세상 사람 모두가 문제였다."

1960년대는 냉소의 시기였다. 1960년 창간된, 프랑스에서 지독한 냉소로 악명을 떨친 잡지 '하라키리'는 샤를 드골의 죽음에 대해 이렇게 보도했다. "콜롱브의 비극적 댄스파티. 사망 한 명"

체 게바라가 처형된 뒤 마을 교회당에서 주민들에게 비참한 모습으로 전시된 해는 1963년이었다.

이런 시대적 배경을 뒤로하고 로맹가리의 책, '게리 쿠퍼여 안녕'은 미국에서 '스키광'이라는 제목으로 1964년 출간됐다.

베트남전 징용을 피해 스키를 지고 알프스로 온 미국 청년 레니, 가난한 알콜중독자 외교관의 딸 제스, 인간 혐오자 버그, 인종차별 문제를 벗어나고자 미국을 떠난 흑인 청년 척 등 세상에 대한 분노로 가득한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개성 넘치는 캐릭터를 가진 각각의 젊은이들은 알프스의 고도 2500m 지점에서, 각자 자신의 방식대로 시대를 해석한다. 베트남전쟁, 인구 인플레이션, 대중문화와 종교 등 모든 것에 각자의 방식으로 냉소를 보낸다.

이야기를 이끄는 주인공 레니는 무너져가는 세상 속에서 '나'를 지키기 위해 정신적인 싸움을 해 나간다. 세상은 "개자식들을 새로운 개자식으로 바꿀 뿐"인 곳이지만, 텅 빈 가치를 추구하게 될 것을 뻔히 예측하면서도 세상으로 나간다. 어딘가에 다른 곳이 있다고 믿지는 않지만, 믿는 척을 그만두지 못하는 것이다.

"온갖 이념적 출격에도 불구하고 빌어먹을 '나'의 소왕국은 끄떡없이 버티며, 그 한계에서 벗어나 타자들 고통의 거대한 무 속으로 망명하도록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인류의 절반을 삼켜버릴 대재앙이라 할지라도 당신의 '나'만은 지긋지긋하게 손 하나 대지 않고, 그대로 남겨둘 것이다. 세상이야 무너지든 말든 상관 않겠어."

표면적으로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불신이 가득한 이 책은, 결국 그래도 희망을 갖자는 마음을 갖도록 독자를 이끈다. 다만 세상이 원하는 방향이 아닌,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로맹가리가 살았던 시대보다 냉소주의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지금의 젊은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게리 쿠퍼여 안녕=로맹 가리 지음. 김병욱 옮김. 320쪽/ 1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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