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28일) 아침 실·국장 회의 때 김종덕 장관께서도 '문화가 있는 날'에는 2시간 일찍 퇴근하겠다며 모두 유연근무제를 활용해 일찍 퇴근하라고 특별히 지시하셨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28일 기자간담회에서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 열리는 '문화가 있는 날'에 2시간 일찍 퇴근하는 '조기퇴근제'를 선도적으로 실시한다고 밝혔다.
장관부터 일찍 퇴근하는 '모범'을 보여 문화생활을 즐기겠다는 것. 대신 다른 2일 동안 1시간 일찍 출근하거나 4번 조기 퇴근한 뒤 1일 연차(8시간 근무에 해당)를 사용해 '문화가 있는 날'로 쓴 시간을 채워야 한다.
문체부는 산하기관은 물론이고 타 부처나 지방자치단체 측에도 협조 공문을 보냈다. 문화융성위원회 한 관계자는 "나도 이번 주 월, 화 2일 동안 1시간 앞당겨 출근했다"고 거들었다. 제도가 정착될 경우 일반 기업에도 참여를 독려한다는 계획이다.
물론 '문화가 있는 날'을 주관하는 부처인 만큼 행사를 활성화하겠다는 의지는 '선의'로 비친다. 하지만 윗선의 '선의'가 아랫선에선 '고역'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문제다.
위에서 내려온 '지시'에 따라 일찍 퇴근하고 '억지'로 문화행사를 즐긴 뒤 '의무'로 때우기 식 출근을 하는 것이 과연 '문화가 있는 날'을 온전히 즐길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일까.
일반 직장인들에게 '문화가 있는 날'의 조기퇴근제에 대한 의견을 물어봤다.
한 대기업 사원 A씨는 "진짜 문화를 즐기게 하려면 야근이나 주말 출근을 먼저 없애는 것이 맞다"며 "수요일은 한 주의 중간이라 업무량도 가장 많고 제일 피곤한데 밤에 공연이 눈에 들어오겠느냐"고 반박했다. 또 다른 대기업 대리 B씨는 "각자의 일정이 있는 날에 연차를 쓰는 것이 낫지 일이 남아있는데 떠밀려서 문화행사를 보러 가면 얼마나 즐거울지 모르겠다"며 "실정과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중소기업도 사정은 마찬가지. 무역업체에 종사 중인 C씨는 "굳이 내가 원해서 가는 것도 아닌데 문화를 강제로 즐겨야 한다는 소리냐"며 "출·퇴근 시간부터 명확하게 지키는 것이 우선이다. 정해진 시간만 지킨다면 별도의 제도가 필요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문화가 있는 날'의 조기퇴근제는 마치 매주 마지막 주 수요일에 일찍 퇴근하는 혜택을 주는 것으로 보이지만 결국 개인의 희생을 전제로 하는 '조삼모사'격 정책이라는 것이 이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문체부 공무원이라고 다를까. 해당 부처 한 공무원은 "(문체부 소속으로) 어차피 참가해야 한다면 적어도 그날은 야근을 안 하고 조금 일찍 나오면서도 눈치를 안 봐도 되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라며 씁쓸하게 웃었다.
실제로 문화계 현장 관계자들은 우리나라 문화산업 규모가 성장하지 않는 이유로 '시간 부족'을 꼽고 있다. 즐기고 싶어도 즐길 시간이 없다는 것. '문화융성'을 기조로 하는 문체부조차 조기퇴근제와 같은 별도의 제도를 통해 일부러 시간을 내야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것이 '웃픈'(웃기고 슬픈) 현실이다.
그럼에도 조기퇴근제가 우려스러운 것은 '즐긴다'는 말에 포함된 '자발성'을 외면하기 때문이다. 지시 혹은 방침에 따른 일은 '의무'로 둔갑한다. 의무적으로 하는 일을 제대로 즐길 가능성은 희박하다. 휴가 등 개인의 자유일정을 쓸 수 있는 연차를 깎인다면 더욱 그렇다.
'문화융성'이 목표라면 누가 떠밀지 않아도 스스로 문화를 즐길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궁극적으로 정시퇴근 문화를 정착하고 노동시간을 감축하지 않고는 요원한 일이다.
'장관의 특별 지시'로 많은 공무원들이 이제 '자발성'이라는 가면을 쓰고 '문화가 있는 날'에 무더기로 조기 퇴근하는 진풍경을 연출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렇게 준비된 양적 팽창은 성과 기록을 경신하는데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그러나 문화의 진정한 생산성, 즉 가슴에서 느끼는 기쁨의 소리를 높이는데 일조하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