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우리나라 45개 법정기념일 가운데 특정인의 생일은 단 하루다. 바로 4월28일, 충무공(忠武公) 이순신 탄신일이다.
471년 전 오늘(인종 1년·1545년 4월28일) 충무공 이순신은 서울 건천동(현재 중구 인현동)에서 부친 이정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28세인 1572년(선조 5년) 훈련원 별과시험을 보던 중, 낙마해 왼쪽 정강이가 부러지는 바람에 버드나무가지로 부목을 대고 시험을 완수했지만 낙방한 일화는 널리 알려졌다. 결국 4년 뒤인 1576년 32세가 돼서야 무과에 병과로 급제해 권지훈련원봉사(훈련원 봉사 실습생)로 처음 관직에 나선다.
그는 발포진 수군만호와 조산보 만호를 거쳐 1591년 47세 나이에 정3품인 전라좌도 수군절도사에 임명된다. 충무공은 부임하자마자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무기와 군량미를 확충하고 거북선을 건조하는 등 군비를 강화했다.
한해 뒤인 1592년 임진왜란이 터지자 그는 옥포대첩, 노량해전, 당항포해전, 한산대첩 등에서 전승을 거뒀다. 이어 1597년 정유재란 때엔 명량대첩 등에서 승리를 하며 왜군을 철수케 만든다. 충무공은 이듬해인 1598년, 철수하는 적선 500여척이 노량에 집결하자 명나라 제독 진린의 수군과 연합작전을 펴 기습했지만 유탄에 맞아 전사했다.
나라를 구한 뒤 전사한 충무공은 민초로부터 '성웅'(聖雄)으로 추앙받는다. 인조는 1643년 이순신에게 '충무공' 시호를, 1793년 정조는 이순신을 영의정에 추증하는 교지를 내렸다. 구한말엔 단재 신채호와 소설가 최찬식 등이 전기를 쓰면서 민족 영웅으로 부각됐다.
대한민국 정부가 들어선 이후엔 충무공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1967년 충무공 탄신일이 제정됐다. 이듬해인 1968년에는 광화문에 당시엔 최대 규모의 동상이 세워졌다. 당초 광화문에 세워지는 동상으로 세종대왕이 강하게 거론됐지만 '세종로와 태평로가 뻥 뚫려 있어 남쪽 일본의 기운이 너무 강하게 들어와 이를 제어할 필요가 있다'는 풍수지리학자들의 주장을 바탕으로 충무공이 선택됐다고 알려졌다.
1973년엔 충무공 탄신일이 법정기념일에 포함된다. 충무공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우리나라 100원 주화에는 이순신의 초상이 새겨져 있고, 서울엔 충무로라는 번화가가 있다.
우리 해군의 충무공이순신급 구축함 1번함도 그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해마다 발표되는 존경하는 인물을 꼽는 여론조사에서도 여전히 충무공은 세종대왕과 함께 1·2위에 선정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