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년 전 오늘…사이공 독립궁에 월맹기 나부끼다

박성대 기자
2016.04.30 06:30

[역사 속 오늘] 북베트남군, 남베트남 수도 사이공 함락… 베트남전 종식

사이공 함락 직전 헬리콥터를 이용해 탈출하는 남베트남인들./출처=위키피디아

1945년 8월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마자 베트남은 전쟁 전 지배권을 찾으려 군대를 파견한 프랑스와의 전쟁을 시작한다. 호찌민이 지도하는 베트남 독립연맹(비엣민·월맹)은 1954년 프랑스군을 물리쳤지만 서구 열강은 제네바 협약을 통해 베트남을 남북으로 분단시킨다.

제네바 협약에 따르면 같은 해 베트남은 남북 총선거를 통해 통일 정부를 구성하게 돼있었다. 하지만 프랑스에 의해 세워진 남베트남 정부(월남)와 이들에게 경제원조를 하던 미국은 협약을 거부했다. 미국의 원조에 의존하는 남베트남의 경제는 정부의 부패로 인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결국 농민들은 무장봉기를 일으켰고 '베트남 전쟁'이 시작된다. 호찌민이 이끄는 북베트남(월맹)은 남베트남의 무장봉기를 지원하게 되고, 남베트남이 자력으로 국가를 유지할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한 미국은 1964년 통킹만 사건을 빌미로 직접 전쟁에 개입한다.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폭격과 공습, 포격, 수색 섬멸 작전을 펼친 미국은 북베트남에 대한 폭격을 펼친다. 한국, 타이, 필리핀,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중국 등이 참전하면서 국제전으로 비화됐다. 당시 미국은 이 전쟁에 314만명의 병력과 1650억달러의 전쟁비용을 투입했다.

하지만 미국의 참전에도 남북 베트남 민간인들의 완강한 저항으로 전쟁은 장기전 양상으로 이어진다. 결국 미국 내에서의 거센 반전 운동이 이어지면서 미국은 1973년 1월 북베트남과 파리 협정을 맺고 두달 뒤 군대를 철수한다. 미국 전쟁사에 기록된 첫 패배였다.

미국 철수 후 북베트남은 남베트남 정권에 대한 미국의 지원이 크게 줄어들고, 남베트남 지도층의 극심한 부패에 따른 일반 국민들의 분노가 극에 달한 것을 파악하고 공세를 감행하기로 결정한다.

결국 미국 철수 2년 3개월만인 41년 전 오늘(1975년 4월 30일) 오전 11시30분, 남베트남 수도 사이공(현재 호찌민시)을 함락시키고 도시 중심부에 자리잡은 독립궁(현 통일궁)에 북베트남기가 게양된다.

남베트남은 무조건 항복을 선포했다. 베트남 전쟁이 끝나는 장면이자 통일의 순간이기도 했다. 베트남 통일을 지상과제로 역설했던 호찌민이 눈을 감은 지 6년만이었다. 호찌민을 기리기 위해 북베트남 정부는 사이공 함락 당일 사이공시의 명칭을 호찌민으로 변경한다.

전쟁은 막을 내렸지만 약 19년 5개월 동안 이어진 전쟁으로 당시 베트남 전체 인구의 10% 가량인 400만명 이상이 목숨을 잃거나 부상했다. 특히 북베트남의 경우 전쟁기간 미국의 대공습으로 도로·항만·철도·발전소 등 인프라가 거의 파괴돼 전후 경제 재건에 큰 부담을 초래하기도 했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