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갔어요. 도와주라고 해서 수원의료원에 갔죠. 그런데 뭘 도와주라는 건지…. 경기도감염병관리본부 예방관리팀장을 거기서 만났어요. 그분이 자료를 주시더군요. 경기도에서 수원의료원을 메르스 전담 병원으로 지정한다는 얘기였어요." (최원석 고려대학교안산병원 감염내과 부교수)
"6월 3일이었어요. 청와대에서 민간 전문가 회의를 열었어요. 저도 갔습니다. 그곳에서 솔직하게 얘기했어요.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라. 신뢰를 회복하는 첫째 방법이다. 전 국민에게 병원명을 공개하기 어려우면 최소한 의료진에게는 알려줘야 대처한다…." (김홍빈 분당서울대학교병원 감염내과 교수)
보이스 피싱처럼 막무가내로 개인정보를 묻는 역학조사관의 전화에 당황하고, 갑자기 파견나간 병원에 도착해서야 자신이 '메르스' 업무를 담당하게 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지난해 대한민국을 공포에 떨게 한, 메르스 사태 현장의 최전방에 있었던 의료진들의 경험담이다. 곳곳에서 메르스 확진자가 튀어나오는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의료진들은 대체 어떤 생각을 했을까.
국내 유일의 전문 인터뷰어로 활동하고 있는 지승호씨가 '메르스 사태 인터뷰 기획팀'을 꾸려 쓴 새 책 '바이러스가 지나간 자리'에는 메르스 사태를 온몸으로 막아낸 의료진들의 속내가 담겼다. 이 책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체계 없고, 주먹구구식이었던 당시의 상황에 대해 조심스럽게 회고한다.
실명을 내걸기도 하고, 익명을 요구하기도 한 메르스 최전방 의료인 10명은 우리 의료 시스템의 실상을 솔직하게 전한다. 무엇보다도 의사에게조차 알려진 정보가 매우 부족했다는 것. 당시 정부가 사태가 최고조에 달할 때까지도 감염 병원을 공개하지 않아 명단이 '찌라시' 형태로 국민들 사이에서 돌았던 것처럼, 의료진에게도 정보가 거의 제공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메르스 환자 중에 중환자가 매우 많았잖아요? 누군가 환자 옆에 붙어 있어야 해요. 옆에서 산소 봐주고, 석션해줘야 하는데요, 그 모든 일을 간호사가 다 해야 하죠. 환자의 분비물 처리까지도요. 간호사들 진짜 펑펑 울었어요."
자신이 병에 걸리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없는 의료 현장에서, 의료진들은 저마다 '룰'을 만들어가며 진료를 해야 했다고 회고했다. 총 80명의 확진자를 끝으로 우리나라에서 종적을 감춘 공포의 전염병, 메르스가 다시 오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이 책은 메르스 사태를 기회삼아 우리 사회의 응급 상황에 대처하는 면역력이 생기기를 기대하며 읽어야 할 책이다.
◇바이러스가 지나간 자리=메르스 사태 인터뷰 기획팀·지승호 지음. 시대의창 펴냄. 356쪽/ 1만6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