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출판 시장에서 번역서 규모는 전체 발행 종수 가운데 5분의 1을 상회한다. 대한출판문화협회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4만 5213종 가운데 번역서가 차지하는 비중은 21.5%(9714종)였다. 분야별로는 문학(2457종), 만화(2033종), 아동(1374종) 순이다.
번역가 양성 과정은 한국번역가협회가 주로 맡는다. 1971년에 만들어진 사단법인 한국번역가협회는 회원 2000여 명을 두고 ‘번역능력인정시험’이라는 자격증 제도를 통해 번역가를 배출한다. 현재 실질적으로 활동하는 번역가는 40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94년 시작된 자격증 시험은 1~3급 중 2급은 따야 인정되는 분위기. 굳이 자격증을 따지 않고 자신의 능력으로 번역가로 활동할 수 있지만, 국가인증자격증이 없는 상황에서 그나마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제도가 이 검정시험이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한국은 번역가 양성 및 번역지원 사업에 관심이 없는 편”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수산 작가는 “일본이 해외 신간이 나오자마자 번역, 보급하는 시스템을 통해 풍요로운 지적 토양을 구축해 자국의 노벨문학상 작가를 배출했다”며 “우리도 정부의 지원과 출판계의 장려가 시급한 실정”이라고 했다.
번역출간 문학 수, 한국은 일본의 16분의 1…“일본에 100년 뒤져”
일례로 지난 2014년 전 세계 1600여 명이 참가한 ‘제20회 세계번역가연맹 총회’에서 한국은 협회 소속 단 1명만 참가해 중국의 33명보다 크게 낮은 수치를 보였다.
김민영 한국번역가협회 회장은 “번역에선 공식적인 국가시험이 없고, 협회에서 치르는 인정시험이 그나마 권위가 있는 편”이라며 “번역이 제도화되지 않은 점 때문에 일본에 비해 최소 100년 이상 뒤처진 것으로 파악된다”고 했다.
김 회장은 이어 “정부 인식이 엉망인 데다, 국가 지원도 약해 우리 문학이 선진국 진입 문턱에서 좌절하기 일쑤”라며 “노벨상에 우리가 왜 약한가는 결국 번역 문제와 연결돼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출간 건수도 상대적으로 적다. 일본은 1950~2005년 반세기 동안 번역 출간된 자국 문학 수가 2만 건을 넘은 데 비해, 한국은 2001년 설립된 한국문학번역원을 통해 나온 1234건이 전부다. 이마저도 연도별로 분석하면 2001년 18개 언어권으로 69건을 지원하던 지원사업은 15년이 지난 2015년 18개 언어권의 161건으로 고작 2배 남짓 늘었을 뿐이다.
98년에 시작된 유명 고전의 번역을 지원하는 명저번역지원사업은 지적 퇴화의 산실이라는 오명까지 쓰고 있다. 한국연구재단이 기획재정부와 교육부가 결정한 예산을 받아 운영하는 이 사업은 지난해 예산 10억 6300만 원으로, 2011년 24억 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해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과제 수도 2011년 89건에서 지난해 24건으로 대폭 감소했다.
한국문학에 심취한 외국인 번역가…3세대를 통한 ‘글로벌 전략’
한국 문학의 외국어 번역 부문에서 번역원과 함께 양대 산맥으로 꼽히는 대산문화재단(1992년)이 지원한 번역 작품 수는 총 600여 종이며, 이 가운데 350권이 출간됐고 200여 종이 출간을 앞두고 있다.
맨부커 상을 받은 한강의 ‘채식주의자’의 출판 지원에 앞장선 대산문화재단은 시대에 맞는 번역가 창출에 능동적으로 대응해 온 것으로 평가받는다. 재단은 번역가를 1~3세대로 분류했다. 1990년대 1세대는 외국어에 능통한 한국인, 2000년대 2세대는 외국어에 능통한 한국인과 한국어에 능통한 외국인의 조합, 2010년대 3세대는 데보라 스미스처럼 한국문학에 심취한 외국인 번역가로 각각 정의한 것이다.
곽효환 대산문화재단 상무는 “1세대와 2세대는 텍스트는 정확히 전달했지만, 행간 언어에서 미묘한 뉘앙스나 문화적 차이는 잘 전달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었다”며 “가장 이상적인 시스템은 한국 문학에 능통한 해당 국가 외국인이 번역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면서 “1차적으로는 세계인이 공감하는 우리의 특수성과 인류의 보편성이 어우러진 소통의 작품이 생산돼야 한다”고 전제했다.
‘빈곤의 삶’이 낳은 번역가의 생태계…“번역청 등 통한 국가 지원 필요”
문학이 글로벌 경쟁에 놓이면서 번역에 관심이 높아지자 2001년 공공기관인 한국문학번역원이 설립됐다. 번역원은 번역아카데미를 통해 수강생의 학비(등록비 10만 원)와 체제비(월 160만 원)를 무료로 지원한다. 문제는 이렇게 양성된 번역가가 본격적으로 활동할 때 보장되는 수익이나 근무여건이 열악하다는 것이다.
캐나다에서 번역가로 일하는 A씨는 “한국 문학 번역가는 역자 후기나 프로필이 실려 다른 나라보다 나름 대우받는다는 인상까지 주지만 번역료는 10년 전과 똑같다”며 “조선 시대 글을 아는 선비를 대하는 태도와 비슷하다”고 했다.
100여 편의 문학 작품을 번역한 B씨는 13년간 일하면서 원고지 1매당 4000원의 번역료를 변함없이 받고 있다. 출판계가 어려워지면서 이 금액도 깎거나 결제가 늦어지는 일이 잦다고 토로했다.
그는 “먹고 살기 어려운 환경이다 보니, 능력자보다 취미생활로 뛰어드는 이가 적지 않다”며 “월급 받듯 생활에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번역가는 손에 꼽기 힘들 정도”라고 했다.
박상익 우석대 교수는 “번역은 이제 국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번역청 설립을 통해 한국 문학의 세계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