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4년. 미 중앙정보국 CIA의 전신 OSS는 적국에 침투한 스파이를 대상으로 비밀 소책자를 하나 배포했다. 이른바 '사보타주(태업) 현장 매뉴얼'이다. 어떻게 하면 적국에 침투한 스파이가 적국 조직의 생산성을 떨어뜨려 연합군에 기여할 수 있는지 안내해뒀다.
본래 기밀문서였던 이 책자는 2008년, 비밀 기간이 해제되며 CIA 홈페이지에 공개해뒀다. 특히 이 매뉴얼은 '적발될 가능성을 최소화하면서도 조직을 망칠 수 있는 간단한 행동'에 초점을 맞췄다.
CIA가 '공식 인증'한 방해공작은 과연 어떤 행동들일까. 우선 일을 질질 끌라고 했다. 긴급할 때 갑자기 회의를 열자고 하거나 가능한 발생하는 안건마다 별도의 '위원회'를 구성해 떠넘기라고 제안했다.
또 위원회는 최대한 많은 인원으로 구성하고, 5명 이하면 절대 안 된다고 못 박았다. 그래야 논의가 길어지기 때문이다. CIA는 이런 행동이 "미묘하지만 매우 파괴적"이라고 했다.
그런데 '회사를 망하게 하는 법'의 저자인 로버트 M. 갈포드는 이 스파이 방해공작들이 놀랍게도 "웬만하면 현대 직장에서 쉽게 일어나는 행위들"임에 주목했다. 예를 들어 '사소한 일 하나까지도 상부의 허락을 맡고 실행하다'가 있다.
많은 조직이 위험요소를 최소화하기 위해 모든 것을 체계와 절차에 따르도록 요구한다. 하지만 이는 업무 비효율성을 증대하고 큰 위험이 닥쳤을 때 순발력 있고 유연한 대처를 불가능하게 하는 '해사 행위'일 수 있다. 회사에 대한 충성도 높은 직원들이 원칙을 고수하다가 회사를 위험에 빠트리게 된다는 것이 아이러니다.
이외에 아주 길고 상세한 연설을 하거나 상대가 사용하는 단어의 정확성 여부를 가지고 입씨름을 벌이고, 실패하거나 잘못된 가능성을 제기하며 불안감을 조성하는 등의 행위가 있다. 개인이나 조직이 별 생각 없이 또는 "원래 다들 그렇게 하니까" 해온 행동들이다.
이처럼 오늘날의 방해공작은 회사를 정말로 망하게 할 의도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하지만 저자는 오히려 그래서 더욱 알아차리기가 어렵고 방어하기가 까다롭다고 지적한다.
거대한 기계를 망가뜨리는 작은 이물질처럼 이런 방해공작들은 바로 처리하지 않으면 조직의 노력을 한순간 물거품으로 만드는 재앙이 돼 돌아올 수 있다. 그러니 오늘 아침 회의 시간부터 한 번 유의 깊게 살펴보자. 혹시 우리 팀에도 경쟁사의 스파이들이 바글바글하지 않은지.
◇회사를 망하게 하는 법=로버트 M.갈포드·밥 프리쉬·캐리 그린 지음.이지민 옮김.리얼부커스 펴냄.208쪽.1만4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