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노는 2학년 5반으로 들어갔다. 교실 안은 매우 어두웠다. 교실 뒤편에서 희미한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쓰레기통이었다. 주노는 과자 봉지와 휴지찌꺼기가 뭉쳐있는 쓰레기통으로 손을 넣었다. 쓰레기를 뒤지던 그녀는 푸른색으로 빛나는 아이템을 발견했다.
교복 재킷에 꽂을 수 있도록 옷핀이 붙은 이름표였다.
‘백아영’이라고 쓰여 있는.
주노는 이름표를 손바닥으로 감싸 쥐고 다른 장소로 향했다. 이번에는 1분단 세 번째 줄 책상이었다. 책상은 다리 하나가 몹시 짧았고 상판 껍질이 죄다 일어나 있었다. 의자 또한 고등학생의 신장에 맞지 않는 초등학생용이었다.
책상 서랍에서 푸른빛이 흘러나왔다. 주노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서랍에 손을 넣었다. 안에서 갈기갈기 찢어진 체육복과 머리카락 뭉치, 운동장 모래 등이 쏟아져 나왔다. 그녀는 그것들을 보자마자 뱃속이 뜨거워지고 등 뒤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아영이 죽은 뒤 반 아이들은 주노의 책걸상을 빼앗고 창고에서 낡고 망가진 책상을 대신 가져다 놓았다. 주노는 쓰레기통에 버려진 자기 소지품을 주워 낡은 책상 서랍에 넣어야 했다. 흐느껴 우는 그녀의 등 뒤에서 아이들은 깔깔대며 웃기 바빴다. 그들은 고3이 되기 직전이었고 왕따에 시달리다 자살한 반 친구를 불쌍히 여길만한 감정적 여유가 없었다. 그들은 죄책감을 느끼거나 죽은 아영에게 사죄하는 대신, 자살사건으로 반의 면학 분위기를 침체시킨 책임을 주노에게 돌리기 시작했다.
주노는 쓰레기 더미 속에서 물에 푹 젖은 노란 포스트잇과 멀쩡한 파란 볼펜을 찾아냈다. 두 번 접은 쪽지에 이니셜 ‘Y’가 쓰여 있었다. 그녀는 물에 젖은 종이가 찢어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쪽지를 펼쳤다.
네가……알지만
이번이……마지막이야.
방과 후에 컴퓨터실로 와줬으면 좋겠어.
……해.
물에 번져서 읽을 수 없는 부분이 있었지만, 적어도 다음에 가야 할 장소가 어디인지는 알게 되었다. 주노는 쪽지와 볼펜을 주머니에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때였다.
“저 미친년 좀 봐.”
주노는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교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진짜 뻔뻔하다. 아영이가 누구 때문에 죽었는데?”
다시 말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환청이라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또렷한 목소리였다. 누군가 목구멍에 휴지를 처넣은 것처럼 숨이 꽉 막혀왔다.
“닥쳐.”
주노는 이를 갈며 어디서 들리는지 알 수 없는 목소리들을 향해 말했다.
“미친 건 너희들이야. 아영이가 죽은 건……!”
“억울해? 억울하면 아영이처럼 너도 뛰어내려봐. 왜? 못하겠어?”
“우리가 아영이를 왕따 시켜서 죽였다고 선생한테 꼰질러보지 그래?”
다음 목소리가 주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 그 애의 백일장 수상을 취소시킨 것처럼.
“……난 아무 짓도 안 했어.”
주노가 허공에 대고 외쳤다.
“난 아영이에게 아무 짓도 안 했어!”
그녀가 고함친 순간 교실 창문에 뭔가 부딪혔다. 창 밖 버드나무가 돌풍에 이리저리 머리카락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나뭇가지가 채찍처럼 유리창을 가격했다. 유리는 얇은 호숫가 얼음처럼 걷잡을 수 없이 쩍쩍 갈라졌다.
마지막 채찍이 날아들자 교실 유리창 다섯 개가 동시에 깨졌다. 파편들은 고스란히 거센 바람을 타고 교실 안에 날아 들어왔다. 쓰러진 주노는 눈을 뜨지도 못하고 팔다리를 허우적대다 겨우 몸을 일으켜 교실 밖으로 달려 나갔다.
컴퓨터실로 향하는 통로를 달려가던 주노는 발바닥이 축축하게 젖어 들어가는 느낌에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손과 발이 유리조각에 찔려 온통 피투성이였다. 상처 부위를 확인하자 그제야 수십 개의 날카로운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특히 팔뚝과 무릎의 상처는 3센티미터 이상 찢어져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일순 눈앞이 컴컴해지고 바닥이 훅 꺼져 들어갔다. 주노는 쓰러지기 전 겨우 벽을 붙잡았다. 그녀는 유리에 찔리지 않은 왼발로 몸무게를 지탱하고 힘겹게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녀의 스마트 워치에서 시청자 반응을 알리는 신호가 울렸다.
- 이거 진짜 재밌다. 나 팝콘 들고 왔음.
- 나 방금 들어왔는데 지금 게임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설명해줄 사람?
- 그래서 주노가 아영이를 고자질해서 죽였다는 거야?
- 다들 답답해 죽겠네. 백아영이 백일장에서 주노 글을 베꼈는데 들켜서 자살한 거잖아!
- 어이가 없다. 정신력이 얼마나 약하면 그런 일로 자살해? 요즘 애들은 정신 상태가 썩었네.
- 내가 주노랑 같은 학교 나온 언니를 아는데, 주노가 원래 전교 왕따로 유명…….
이제는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주노는 빠른 속도로 사라지는 채팅 목록을 멍한 눈으로 훑다가 일순 시선을 멈췄다.
- 주노 너무 불쌍하다. 방송 때문에 아픈 과거를 다 드러낸 거잖아.
파란 모자를 쓴 익명의 아이콘이었다. 그의 발언에 채팅창에는 조금씩 동조하는 의견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 맞아요. 아무리 시청률이 중요하다지만 방송국이 출연자 개인의 과거사를 일방적으로 밝혀내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 난 주노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는데? 죽은 친구가 불쌍하긴 하지만 자살은 명백한 죄악이잖아.
- 방송에서 일부러 자기 과거를 까발린다니요. 어제 발매된 신작 게임인데 주노 누님이 어떻게 미리 알고 판을 짜놓는단 말입니까? 주노 누님, 이런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방송하시는 모습에 정말 감동받았습니다. 힘내세요!
주노는 희열과 흥분으로 가슴이 뻐근해졌다.
자신을 동정하고 위로해주는 시청자들의 반응은 항우울제나 각성제보다도 더 빠르게 그녀를 일으켜 세울 수 있었다. 기어가는 것처럼 느린 속도로 컴퓨터실을 향해 가는 동안 시청자들은 계속해서 주노에게 응원 메시지를 보냈다. 이제 그들은 한 마음 한 뜻으로 그녀가 미션을 성공하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시청자들은 말했다. ‘팬입니다. 언니 방송 매일 보고 있어요.’, ‘누가 뭐라 해도 전 주노님을 믿어요.’, ‘주노님이 세상에서 제일 예뻐요.’ ‘주노님의 방송은 저를 치유해주는 활력소에요.’, ‘주노님, 사랑해요.’
- 당신이 예전에 무슨 짓을 했다 해도.
그래. 너희들은 나를 사랑해.
주노는 생각했다.
난 너희들을 위해서 뭐든지 할 수 있어.
시청자들은 앉아서 즐겁게 쇼를 지켜보고 환호해주기만 하면 된다. 대중의 관심에 집착하는 정신병자라 불려도 주노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본인이 직접 차에 치이는 장면을 SNS로 생중계하고도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은 BJ가 있는 마당에, 게임 속에서 유리에 좀 찔리는 게 무슨 대수란 말인가? 현실의 주노는 안전한 장소에서 털끝하나 다치지 않은 채 잠자는 숲속의 공주처럼 누워 있을 것이다. 게임에서 부상을 입은 것으로 시청자들의 위로와 동정을 이끌어 냈으니 누가 봐도 남는 장사였다. 주노는 입술 사이로 쉬지 않고 중얼거렸다. 전부 괜찮다고. 문제는 아무것도 없으며, 게임을 끝내기만 하면 가상현실의 아픔쯤은 망각 속으로 사라질 것이라고 말이다.
컴퓨터실로 들어서자 먼지 냄새가 물씬 풍겨왔다. 교실 한 가운데 자리한 컴퓨터 본체에서 초록색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그녀는 컴퓨터 본체 전원을 눌렀다. 낡은 구형 컴퓨터가 부들거리며 굵은 기계음을 내뱉었다. 파란색 화면이 걷히더니 적어도 두 세대 전의 시스템 바탕화면이 보였다. 주노는 바탕화면에 늘어서 있는 아이콘들을 살펴보았다.
주노는 미니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유치한 캐릭터 아이콘으로 덕지덕지 덮인 홈페이지가 화면에 떠올랐다. 그녀는 잠시 멍하니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이 홈페이지는 오래 전 삭제해 더 이상 온라인상에 존재하지 않을 터였다.
홈페이지 배경 화면에 두 장의 사진이 있었다. 한 장은 곱상하게 생긴 남학생의 얼굴이었고, 다른 사진은 긴 생머리에 얌전한 인상을 가진 여학생의 얼굴이었다. 애석하게도 여학생의 눈은 캐릭터 스티커에 덮여 보이지 않았다. 주노는 몇 번이나 스티커를 지우려고 시도해봤지만 이상하게도 번번이 오류가 생겼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사진의 주인공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주노는 고등학교 시절 미니 홈페이지를 정성껏 관리했다. 비밀 게시판을 만들어 아영과 교환 일기를 쓰기도 했고, 잘생기기로 유명한 옆 학교 남학생의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그녀는 같은 학교 친구뿐만 아니라 온라인 유명 인사들과 홈페이지 이웃을 맺는데 골몰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짝사랑하던 옆 학교 남학생이 온라인 쪽지로 데이트 신청을 해왔을 때, 주노는 임금에게 승은을 입은 궁녀처럼 감격해서 잠도 이루지 못했다. 그녀의 마음은 기대에 가득 부풀어 올라 있었다…….
옛 일을 떠올리던 주노는 갑작스레 관자놀이를 꿰뚫고 지나가는 날카로운 통증에 머리를 붙잡았다. 그녀의 머릿속에 살고 있는 사악한 요정이 수백 개의 드릴로 두개골을 뚫고 있었다. 귓속에서 칠판을 손톱으로 긁는 듯한 이명이 울렸다. 이게 아니야 뛰어 내리고 있어 누구나 다 알아 그는 네 사진이 만남은 성공적이었지 예쁜 씨발년 누구라도 상관없어 그들은 욕망을 채웠고 넌 좆같은 아무것도 몰라 아니 아는 척 하지 마 걸레 같은 년 구형 휴대폰 액정 위에 떠 있는 전화번호 어두운 골목 이건 끔찍해 죽고 싶어 썅년아 널 죽여버리 주노는 교실이 떠나가라 비명을 지르면서 머리를 마구 흔들었다.
아픔이 잦아든 그녀의 눈앞에 또다시 기괴한 장면이 펼쳐졌다.
아영이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모든’ 컴퓨터 앞이었다.
컴퓨터 화면 불빛에 그녀들의 모습이 촛불처럼 일렁였다. 그녀들은 소맷자락이 찢어지고 치마 솔기가 터진 지저분한 교복을 입은 채 멍하니 컴퓨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컴퓨터 화면에서 미니 홈페이지 방명록 페이지가 끝도 없이 밀려올라가고 있었다. 방명록을 읽은 주노는 곧 구역질이 나올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그녀는 BJ 활동을 하면서 네티즌들이 내뱉는 웬만한 욕설에는 이미 면역이 된 상태였지만, 방명록에는 그녀조차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욕설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창녀’나 ‘걸레’라는 단어가 개중 양호한 욕이라면 말은 다 한 것 아닌가.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네가 남자애들한테 꼬리를 쳤으니까 그런 일을 당한 거지.’였다. 문맥을 보아 남자에게 몹쓸 짓을 당한 여자에게 도리어 행실을 비난하는 것 같았다.
아영의 모습을 한 여자들은 빨리 감기를 누른 영상처럼 현실에는 있을 수 없는 속도로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이고 있었다. 빗소리와 컴퓨터 기계음, 천둥 번개 소리 등이 한데 모였다. 그것은 이윽고 고양이나 새가 목이 뒤틀려 죽어갈 때 내지르는 소름끼치는 단말마로 변질되었다. 주노는 손바닥으로 귀를 막아봤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쉼 없이 흔들리던 그녀들에게서 우두둑 뼈가 부러지는 끔찍한 소리가 들렸다. 40명이나 되는 여자들의 목이 아래로 기이하게 꺾여 하얀 척추 뼈가 드러났다. 주노는 너무도 충격적인 장면에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이윽고 그녀들의 몸뚱이는 염산 구덩이에 빠진 것처럼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살이 지글지글 타들어가는 소리, 코를 쇠꼬챙이로 찌르는 듯한 매캐한 냄새, 살갗 대신 드러난 시뻘건 근육 섬유와 내장, 주노는 잠시 정신을 놓으려 했다.
바로 그 순간 하늘이 반으로 쪼개지는 것 같은 천둥소리가 들려왔다. 학교 전체가 뒤흔들리는 굉음에 주노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 컴퓨터실을 빠져나갔다.
“살려줘!”
그녀는 미친 사람처럼 허공을 향해 악을 썼다.
“날 내보내줘!”
그녀는 어두운 복도를 내달렸다. 다시 번개가 쳤다. 복도 전체가 수천 개의 형광등을 켜 놓은 것처럼 밝아졌다. 주노는 건너편 건물 옥상에서 사람의 그림자를 발견했다. 처음에는 잘못본 거라 생각했지만, 이윽고 두 번째 번개가 내리쳤을 때는 도저히 그 형상을 모른 척 할 수가 없었다.
길고 검은 머리를 늘어뜨리고 찢어진 교복을 입고 있는 여자.
그녀는 옥상 난간 위에 앉아 허수아비처럼 몸을 앞뒤로 흔들고 있었다.
주노는 가슴을 스쳐가는 싸늘한 예감에 전율했다.
아영은 끊임없이 주노를 부르고 있었다.
과거 최후의 순간에 주노를 만나지 못하고 떠나야 했던 게 한으로 남았다는 듯이.
게임을 끝내기 위해서는 옥상으로 가야 한다.
살갗이 찢겨 피가 줄줄 흐르고, 팔과 다리가 부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7회로 계속>
*제목은 연재를 위해 편의상 붙인 것으로 원작품엔 부제가 없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