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 과학문학공모전 단편소설 대상 '피코'
동물이나 인형을 닮은 반려 인공지능(AI) ‘피코’가 있다. 피코는 7년에 1번씩 반드시 교체해야 한다. 자아 정체성이 생기면 인간을 넘어서 종말을 불러올 수 있단 두려움 때문이다. 제타는 정든 피코를 떠나보내지 못하는 주인들을 위해 대신 해체하는 용역업체에 근무한다. 여느 때처럼 근무하던 그는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으로 불법 개조된 피코, 프레야를 만난다.
동물이나 인형을 닮은 반려 인공지능(AI) ‘피코’가 있다. 피코는 7년에 1번씩 반드시 교체해야 한다. 자아 정체성이 생기면 인간을 넘어서 종말을 불러올 수 있단 두려움 때문이다. 제타는 정든 피코를 떠나보내지 못하는 주인들을 위해 대신 해체하는 용역업체에 근무한다. 여느 때처럼 근무하던 그는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으로 불법 개조된 피코, 프레야를 만난다.
총 20 건
AT. 13 씨발, 매일매일이 신세계다. 대체 어쩌다 이런 일이 된 거지. 황당한 일들을 정리하기도 지쳤다. 이제 보니까 우리 바로 옆에 웬 병신같은 무언가가 있었다. 저게 아마 원흉과 관계된 것이다. 애초에 개떡같은 물건을 주워오는 게 아니었다. 일지를 빼먹은 것은 귀찮아서였지 그동안 별 다른 일은 없었다. 싸움 이후로 더글라스와 곤살로가 서로를 무시하는 것 빼면(딱히 문제도 없어서 긁어 부스럼이 될까봐 놔두었다) 별다른 일이 없었다. 바뀐 것이 조금 있다면 선원들이 탈출선 밖으로 가끔 '외출'을 했다는 것 뿐이다. 이유는 여러가지였지만, 기본적으로 안에만 있으면 갑갑하고 불안하기 때문이었다. 좁은데서 바글바글하게 굴어봤자 사이만 나빠질 것 같아서 나도 그냥 용인하고 있었다. 시아의 작업에 몰두중인 스티브와 침울해진 곤살로를 제외하면 조금씩 밖에 나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밖에 있던 괴생명체나 감염 등을 걱정했지만 점차 익숙해졌다. 더글라스 녀석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오늘 저스
AT. 5 악몽을 꾸었다. 무슨 악몽인지는 생각나지 않는다. 단지 몹시 더러운 기분으로 일어났을 뿐이다. 아마 어제 밖에서 본 이상한 것들 때문이겠지. 선원들의 상태도 최악이었다. 더글라스가 아침부터 울며불며 한바탕 난리를 친 상태이다. 나 역시 너무나 피곤하다. 정말 내키지 않지만 나가서 데이빗의 시신을 수습해야 한다. 어떤 방법이 좋을까 논의했는데 끔찍하게 모습이 변한 탓에 마음 같아선 화장을 해주고 싶지만 지금 상황에서 가능할 리도 없고, 관례대로 냉동 캡슐로 정해졌다. 일 자체는 간단하다. 냉동 캡슐을 가져가 시신을 담아오는 것이 전부다. 겁에 질린 더글라스를 남겨 두고, 나머지 놈들을 떠밀다시피 하여 임무를 수행했다. 예상대로 그 괴생명체들이 위험하지는 않았다. 하, 어찌 보면 이 또한 대발견이긴 하다. 외계 생명체라니, 우리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만 아니라면 신이 났겠지. 다만 데이빗을 넣은 캡슐은 선원들이 감염이나 다른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로 탈출선에 넣는 것을
AT. 3 오늘은 내부를 청소하고 자리를 정했다. 좁다란 곳이지만 그래도 어찌어찌 생활은 된다. 죽는 것 보다는 낫겠지. 식량도 시스템도 큰 문제는 보이지 않는다. 불행하게도 이전의 일지들을 복구할 수가 없다. 내 기본 단말과 백업, 두 번째 백업까지 모두 날라가 버렸다. 필시 나중에 도움이 되었을 텐데. 그래서 잠시 이전의 일을 갈무리해놓는 것이 좋겠다 싶어서 갈무리를 한다. 24일 전, 우리는 이곳에 도착했다. 임무 내역은 평범한 행성 조사였다. 실제 환경과 자원보유량, 채굴 용이성 등 행성의 산업적 가치를 확인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였다. 일은 딱히 어렵지 않다. 대부분의 작업은 매뉴얼과 기계를 통해 하는 것이라 기초학력만 있으면 이해한다. 그저 위험하고 더럽게 오래 걸릴 뿐이지. 한마디로 허드렛일이다. 이번 목표인 JK-152는 사전 탐사에 의하면 대단할 것이 없는 동네였다. 태양계 외딴 곳에 위치하고 있고, 탄소와 철이 많았고 대기는 있으나 산소, 물은 없으며, 일교차는 상
AT. 1 정신없는 와중에 짬이 나서 조금 적는다. 지금까지는 머저리같은 자서전 나부랭이 때문에 쓴 것이지만 기록하는 것은 중요하다. 특히 지금같은 상황에서는. 선원이 많이 죽었다. 나와 6명밖에 살아남지 못했다. 뭘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 이 별에서 자주 보이던 자기폭풍이 갑자기 들이닥쳤던가, 아니면 운석이라도 떨어졌던가 할 것이다. 그런데 기상 관측은 변수가 있지만 천문 관측은 거의 없다. 그러니 십중팔구 자기폭풍일 가능성이 높다. 정확한 발생 시간은 측정하기 힘들다. 사망을 확인하지 못한 자들도 있으나 함선이 이 꼴이 되었는데 살 수는 없겠지. 모든 이들이 적어도 3년은 나의 선원으로 활동한 자들이었다. 그들에게 안식이 있기를. 그리고 나를 용서해주기를. 젠장, 어째 운수가 너무 좋더라니. 어디서부터 정리해야 할 지 모르겠다. 탐사 중 선원이 이렇게나 죽다니. 이런 일은 처음이다. 우주에 나와 수십년간 거지같은 노가다를 해 왔지만 이런 적은 없었다. 일단 경과를 좀 정리
깨어난 주노는 바닥에 엎드려 한참을 울었다. 그녀는 온몸을 뒤틀며 깨진 손톱으로 바닥을 긁었다. 눈물은 아무리 흘려도 그치지 않았고, 목에서는 끊임없이 울음소리가 새어나왔다. 새빨개진 얼굴은 갓난아기처럼 마구 일그러졌다. 눈물과 콧물이 줄줄 흘러 땅 위를 적셨다. 그녀는 쉼 없이 아영의 이름을 부르다, 허공에 대고 용서를 빌다, 다시 양손으로 귀를 막고 고개를 젓기를 반복했다. 선생은 여전히 옥상 난간에 기댄 채 운동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두 눈이 녹아버릴 정도로 눈물을 쏟아내던 주노의 울음이 점차 잦아들었다. 선생은 그녀를 돌아보며 말했다. “왜 우는 거지?” 주노는 겨우 딸꾹질을 멈추고 대답했다. “아영이가……아영이가 죽었어요.” “그런데?” 주노는 다시 왈칵 눈물을 터트렸다. “전부 다……나 때문이었어요.” 주노는 울음을 토해냈다. 선생은 눈썹 한 올 까딱이지 않고 그녀를 내려다봤다. “넌 이미 충분히 대가를 치르지 않았어?” 그녀가 말했다. “아영이가 멋대로 자살을 했기
쌍둥이는 2학년에도 같은 반이 되었다. 아영은 준오가 있어 안심이라고 말해왔지만 정작 그녀의 생각은 달랐다. 학년이 바뀌자 요즘 부쩍 예뻐진 준오에게 관심을 보이는 친구들이 많아졌다. 준오가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기 시작하자 아영은 자연히 뒷전이 되었다. “오늘 점심 같이 못 먹은 건 미안하다고 했잖아. 다른 애들이 자꾸 같이 먹자고 해서 나도 어쩔 수 없었단 말이야.” “그건 알아. 하지만 미리 말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그래. 내가 미리 말 못한 거 정말 미안해. 그렇지만 너도 오늘 같은 날에는 나를 무작정 기다리지 말고 다른 친구랑 같이 밥을 먹던가 했어야지. 그 정도 융통성은 있어야 할 거 아냐?” 물론 준오는 그녀에게 다른 친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영은 입술을 짓씹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때 준오는 뇌리를 스치는 생각에 전율했다. 아영은 더 이상 예전처럼 예뻐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 백일장 사건이 터졌다. 신지수 선생님은 준오를 교무실로 불러 쌍
“그동안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적은 없었어?” 넋이 나간 주노를 대신해 선생이 입을 열었다. “기억이 사라진다거나, 외부와의 통신이 끊어진다거나, 갑자기 몸이 아프다거나. 그 밖에도 꽤 많은 일들이 있었을 텐데?” 사실 짐작 가는 데가 있었지만 주노는 일단 부정부터 했다. “아니, 없는데?” “또 거짓말을 하는구나.” “난 거짓말한 적 없어.” “아니. 넌 오늘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어.” 그랬다. 주노는 그것을 떠올린 지 오래였다. 다만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을 뿐이었다. 선생은 어느새 아영이 뛰어내린 난간 옆에 서 있었다. “8년 전 8월 18일. 네 친구 백아영이 이곳에서 자살했지.” 그녀는 난간 밖으로 상체를 길게 내밀어 교정을 굽어보았다. “그로부터 8년 뒤, 넌 방송국에서 신작 VR게임을 하던 중 기계 오작동으로 혼수상태에 빠졌어.” 선생은 다시 몸을 돌려 주노를 바라보았다. 주노는 어느새 코피를 줄줄 흘리고 있었다. 그녀가 흘린 코피가 옷자락을 적시고 바닥으로
5.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어두웠고, 습했으며, 담배 냄새와 오줌 냄새가 뒤섞인 악취까지 풍겨왔다. 사방은 축축하게 젖은 시멘트벽으로 감싸여 있었다. 하나, 둘, 셋, 넷……열둘. 열둘, 열하나, 열, 아홉……하나. 주노는 계단을 오를 때마다 숫자를 되뇌었다. 층계는 앞으로 세나 거꾸로 세나 모두 12계단이었다. 그녀는 벌써 일곱 번째 층계를 오르고 있었다. 건물 층수로 따지면 3층 이상이 되는 높이를 올라온 것이었다. 그런데도 옥상 문은 나타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주노는 제자리에 멈춰 서서 헛구역질을 했다. 끈끈한 침을 토해낸 그녀는 멍하니 초등학교 때 들었던 괴담에 대해 떠올렸다. 옥상 문 앞에는 12개의 계단이 있는데, 밤 12시만 되면 13계단이 되어 층계를 오른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는다는 이야기였다. 만약 옥상 앞에 13계단이 놓여있으면 어떡하지? 나는 또 죽는 건가? 주노는 계단을 올려다보면서 생각했다. 그녀는 이내 피식 웃었다. 만약 실패해서 죽는다 해도 다시
주노는 2학년 5반으로 들어갔다. 교실 안은 매우 어두웠다. 교실 뒤편에서 희미한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쓰레기통이었다. 주노는 과자 봉지와 휴지찌꺼기가 뭉쳐있는 쓰레기통으로 손을 넣었다. 쓰레기를 뒤지던 그녀는 푸른색으로 빛나는 아이템을 발견했다. 교복 재킷에 꽂을 수 있도록 옷핀이 붙은 이름표였다. ‘백아영’이라고 쓰여 있는. 주노는 이름표를 손바닥으로 감싸 쥐고 다른 장소로 향했다. 이번에는 1분단 세 번째 줄 책상이었다. 책상은 다리 하나가 몹시 짧았고 상판 껍질이 죄다 일어나 있었다. 의자 또한 고등학생의 신장에 맞지 않는 초등학생용이었다. 책상 서랍에서 푸른빛이 흘러나왔다. 주노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서랍에 손을 넣었다. 안에서 갈기갈기 찢어진 체육복과 머리카락 뭉치, 운동장 모래 등이 쏟아져 나왔다. 그녀는 그것들을 보자마자 뱃속이 뜨거워지고 등 뒤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아영이 죽은 뒤 반 아이들은 주노의 책걸상을 빼앗고 창고에서 낡고 망가진 책상을 대신 가져다 놓았
4. 여고생이 교무실에 들어서자 문에 매달린 풍경이 흔들리며 소리를 낸다. 푹푹 찌는 바깥 날씨와 달리 교무실 안은 에어컨에서 뿜어져 나오는 냉기로 가득 차 있다. 교무실을 둘러보던 여고생은 어깨에 하얀 카디건을 걸친 여교사의 자리로 향한다. 책상에 일주일 전 치렀던 교내 백일장 답안지가 탑처럼 쌓여 있다. 그 위에 놓인 출석부 표지에는 ‘2학년 1반 담임 신지수’라고 쓰여 있다. 왔구나. 신지수 선생님은 웃으며 옆에 있는 의자를 가리킨다. 여고생은 주뼛주뼛 자리에 앉는다. 선생님은 여고생에게 얼음을 띄운 녹차를 권한다. 친구들이랑은 잘 지내고 있니? ……네. 여고생의 목소리가 흐려진다. 선생님은 그녀의 표정을 유심히 살핀다. 선생님이 널 부른 건 지난주 네가 낸 백일장 답안지에서 몇 가지 확인할 게 있어서야. 솔직하게 대답해 줬으면 좋겠어. 여고생은 놀란 듯이 고개를 든다. 선생님은 파일에서 두 장의 원고지를 꺼내 여고생 앞에 펼쳐 놓는다. 네가 한번 비교해 봐. 두 사람의 글이
3. 빗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떠보니 주노는 교실 의자에 앉아 있었다. 책상 위치로 봐서 교실 오른쪽 구석 자리에 앉아 있는 것 같았다. 반 아이들은 아침부터 흐리고 눅눅한 날씨 탓인지 축 늘어져 있었다. 그녀는 일어나자마자 목을 매만졌다. 구멍이 뚫리기는커녕 흉터조차 남아있지 않은 깨끗한 피부의 감촉이 느껴졌다. 목에서 울컥 뿜어져 나와 상체를 적셨던 핏덩어리도, 목에서부터 시작되어 정수리까지 내달리던 통증과 충격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져있었다. 그러나 방금 전 일은 꿈이 아니었다. 죽음의 기억은 그녀의 목에 꽂혔던 쇠자처럼 뇌리에 단단히 박혀 들어갔다. 지금껏 여러 번 VR 공포게임을 플레이 해봤지만 이처럼 찜찜하고 구역질나는 감각은 느낀 적이 없었다. 그녀는 손목을 확인해봤다. 스마트 워치가 온데간데없었다.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그것이 없으면 현재 네티즌의 반응도, 방송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도 알 수 없다. 혹시나 해서 주변을 둘러봤다. 시계를 훔쳐갔을 만한 사람은 아무도
2. 빗줄기가 창문을 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얇은 창틀이 외풍에 떨고 있는 소리, 나뭇가지와 이파리가 거센 비바람에 마구 흔들리는 소리. 콧속으로 밀려들어오는 곰팡이 냄새와 살갗을 찔러오는 눅눅하고 차가운 냉기까지. 모든 감각을 느낄 수 있게 됨과 동시에 그녀는 눈을 떴다. 어두컴컴한 학교 복도가 시야에 들어오자 주노는 자기도 모르게 양팔로 어깨를 감싸 안았다. 왼쪽 복도에는 창문이 있고 오른편에는 1학년 반이 열을 지어 서 있었다. 반 팻말을 보니 그녀가 서 있는 곳은 3층에 있는 1학년 10반 옆이었다. 복도 건너편은 짙은 어둠으로 감싸여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몇 층에 서 있는지 가늠해 보기 위해 창문 앞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예상대로 창문은 열리지 않았다. 비 내리는 바깥을 바라보는 그녀의 모습만 창문에 반사될 뿐이었다. 그때 그녀의 스마트 워치에서 작은 홀로그램 영상이 떠올랐다. 제작진이 보내기로 약속한 네티즌 실시간 반응이었다. - 헉, 폐교 배경인가? 그런데 진짜 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