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소로 출발한 세종문화회관 40년, 대한민국 공연 중심에서 숙제풀이 한창

대담=신혜선 문화부장, 정리=박다해 기자, 사진=홍봉진
2016.10.31 03:10

[머투초대석] 이승엽 세종문화회관 사장 "'공공성+대중성, 시민이 자랑하는 예술명소'로 명성 이어갈 것"

이승엽 세종문화회관 사장은 지난해 2월 취임 뒤 "체력을 기를 것"과 "경쟁력 있는 콘텐츠를 갖추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사진=홍봉진 기자

'세종문화회관'하면 수도 서울에 위치한 지리적인 조건 때문에 서울시라는 지방자치단체의 조직임을 잊는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공연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의미다.

특히 세종문화회관은 ‘무대’를 빌려주는 전시공간만이 아니다. 9개의 자체 예술단을 운영하고, 공연장도 여러 곳 운영 중이다. 돈화문국악당, 삼청각, 북서울꿈의숲 아트센터 등은 위탁 운영 중이다.

이승엽 세종문화회관 사장은 이런 조건에 대해 “두 분야가 성격이 다르고 각각의 난이도도 어렵다”고 털어놨다. 그는 공연장을 객실사업과 부대사업을 운용하는 호텔에 비유했다. 이 사장은 “호텔은 보통 객실영업은 적자고 부대사업에서서 수입을 올린다. 그 안에는 정말 호환될 수 없는 다양한 직원들이 있는 것”이라며 “게다가 복합적인 대중이 이해당사자로 관계돼 있다 보니 굉장히 변수가 많은 사업장이라 (운영이) 어렵다”고 했다.

세종문화회관은 올해 처음 ‘시즌제’를 도입했다. 이승엽 사장이 지난해 2월 취임 직후 “체력을 기르자”고 선언한 뒤 만든 변화의 첫걸음이다. 올해 3월부터 내년 2월까지 세종문화회관 소속 9개 예술단을 중심으로 공연과 전시 48건, 총 463회를 선보이는 일정을 미리 공개했다. 패키지 티켓을 중심으로 관객은 늘었고 내부적으로는 미리 공연을 준비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됐다.

그는 예술의전당에서 14년 가까이 근무한 경험을 살려 세종문화회관의 변화를 하나씩 만들어가고 있다. 그가 공공부문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시장에 닿아있는, 그래서 항상 딜레마가 있을 수밖에 없는 점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이유다.

-취임 후 1년 반이 지났습니다. 취임사로 ‘체력을 기르자’고 하셨죠. 어떤 의미이고, 기초체력은 튼튼해졌나요.

▶서울시를 대표하는 문화공간으로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변화’에 대한 공감대는 널리 퍼져 있습니다. 안에서도 밖에서도 이의가 없어요. 다만 오랫동안 그 기대감이 반영되다 보니까 ‘변화, 혁신’ 등의 키워드가 남용됐죠. 수많은 변화와 외부의 혁신 요구에 대응하다 보니 정작 변화를 통한 체력 강화가 아니라 체력이 떨어져 있더라고요. 안정부터 취하자는 게 취지였어요. ‘변화를 전제로 한 안정’이죠. 지금은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았다는 생각은 들어요. 문제는 혁신할 만큼 체력이 비축됐느냐인데, 그건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변화를 요구받았다고 했는데, 어떤 부분의 변화를, 왜 요구받은 건가요.

▶외부적인 상황도 있고 내부적인 것도 있어요. 먼저 외부적인 것은 우리나라 공연 시장의 변화로부터 읽을 수 있습니다. 지금 (광화문의) 이 건물이 1978년에 문을 열었거든요. 그전에도 역사가 있지만 (이 자리에서) 직접적인 연속성을 가진 것은 1978년으로 봐야죠. 서울 시내에 어떤 것도 없던 때에요. 시설, 콘텐츠, 예술단 숫자…경쟁자가 없는 거죠. (문화 시장을) 선도하는 역할을 자임하고 또 인정했던 그때가 최전성기에요. 그 때부터 10~15년, 길게 보면 20년 정도죠.

미국도, 일본도 그렇고 대체로 공연 시장은 경제적으로 성장하면서 ‘문화폭발’이란 현상을 보이거든요. 갑자기 인프라 늘어나고 공연 숫자도 단체도 늘어나고. 우리도 90년대 중반부터 이 시장이 급격하게 팽창해요. 제가 (어림잡아) 기억 하기론 시장규모가 4.5년에 두 배씩은 늘어난 것 같아요.

그런데 전문공연장이 등장하면서 시장이 변합니다. 얼마 전에 개관한 클래식 전용 공연장 롯데콘서트홀처럼요. (동시에) 관객들도 기대가 높아지고요. (이 시기에) 세종문화회관이 특별히 잘못한 게 없어도 이미 시장은 급격하게 바뀌어버린 거죠.

내부적인 요소를 보면 세종문화회관은 1999년에 법인화가 됐어요. 그전까지는 일종의 ‘사업소’였거든요. 한강사업소, 상수도사업본부처럼요.

세종문화회관은 서울시 직할 기관이었다. 서울시 국장급들이 순환보직 했다. 공공부문의 뿌리가 깊으니 환경 변화에 적응하는데 약할 수밖에 없다. 이 사장은 “급변기에 충분히 대응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중간에 노사문제 등 공개적으로 갈등이 표출되기도 했고 서울시향이 독립해나갈 때도 큰 진통을 겪었다. 원래 전체 예술단을 법인화한다는 계획이었는데 지금 (서울시향만 하고) 멈춰있는 이유다.

- 그렇다면, 세종문화회관의 정체성은 무엇인가요.

▶‘창작’과 ‘향유’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국립극장이나 국립국악원처럼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내고 다른 문화회관들처럼 (문화를) 접할 수 있게 하는 기능 둘 다 있어요. ‘서울시’라는 지방정부 소속으로 공연을 하는 곳인데, 안에 구조를 보면 ‘생산’에 많이 집중돼있죠. 전속단체가 9개나 됩니다.

- 의외네요. 보통 ‘향유’(공연전시) 쪽으로 많이들 알고 있는데요.

▶‘공장’이 많아요. 대표적인 생산 라인이 예술단입니다. 교육 사업도 하지만 공연이 고유한 일이죠. 서울시향은 10여 년 전에 독립했고요. 지정학적으로, 역사적으로 세종문화회관이 서울의 중심에 있어요. 한국의 중심이기도 하죠. 여기서 하는 큰 이벤트들은 시민들의 정서 한가운데에 있고 ‘대표성’을 갖고 있어요. 그래서 두 가지 미션을 동시에 달성해야 합니다.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것, 또 그에 못지않게 서울시민들의 문화향유에 봉사할 임무가 동시에 있는 겁니다. 저희 슬로건이 ‘시민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예술공간’이라고 내세우고 있어요. 꼭 공연을 보러오지 않는다고 해도 항상 열려있다는 것, ‘세종문화회관’이라는 이름 자체가 뿌듯한 곳이 됐으면 좋겠다는 목표를 정하고 있습니다.

이승엽 사장은 공공기관으로서 세종문화회관이 변화 대응에 취약한 부분이 있었다며 전속예술단을 활용, 공연 횟수를 늘리는 방식으로 변화와 혁신을 꾀하겠다고 말했다. /사진=홍봉진 기자

- 복합적인 상황인 만큼 얼마나 잘 운영하느냐의 문제겠어요. 세종문화회관이 가진, 끝까지 풀리지 않는 조건인 거죠.

▶그렇죠. 중요한 지적이에요. 공공극장의 영원히 풀리지 않는 딜레마죠. (세종문화회관의) 속성을 거칠게 보면 하나는 공공성이고 하나는 대중성이거든요. 대중한테 열려있는 공간이 대중성을 안 가지면 그건 문제죠. 공공성을 확보할 근거가 없어지는 거예요. 콘텐츠도 마찬가지예요. 사람이 보러오지 않는데 그걸 보전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문제는 그 두 개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래서 풀리지 않아요. 예를 들면 이런 공간이 돈을 많이 버는 것이 꼭 좋은 건 아니죠. 그런데 돈을 못 버는 게 잘하는 것도 아니에요. 저희 재정자립도가 35%인데 그게 적정한 건지 정말 애매하죠.

세종문화회관은 자원을 안정적으로 조성하기 위해 기업의 후원을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있다. 지난해 현대자동차와 파트너쉽을 맺고 후원을 받고 세종문화회관 외벽에 ‘세종현대모터갤러리’를 설치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는 세종문화회관의 콘텐츠와 공간, 이름, 시설 등을 기업이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면 ‘윈-윈’전략이 될 것이라고 봤다.

- 예술단 독립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변화와 혁신’에 대한 일종의 압력이나 기대 같은 것들이 대부분 효율성을 강조하면서 업무가 쪼그라드는 형태로 나타납니다. 사업을 축소하거나 인원을 보충하지 않는 거죠. 예술활동은 하면 할수록 손해거든요. 저희 예술단 충원율이 정원 대비 65% 정도 밖에 안 돼요. 안 뽑는 거죠. 지난 10년 정도 “효율 높이자”, “혁신하자”, “경영 합리화하자”고 한 게 결국은 결과적으로 ‘축소’, ‘위축’으로 나타난 겁니다. 이게 ‘네거티브’ 방식이었다면 저는 ‘포지티브’ 방식을 취해야 한다고 봐요. 요체는 활동량을 늘리는 겁니다. 최대한 공연을 많이 하고 프로그램도 많이 하는 거죠. 갑자기 그렇게 할 순 없으니 어려움도 있지만 어쨌든 방향은 그렇게 가려고 합니다.

-실제로 부임하신 뒤 공연횟수가 늘어났나요.

▶네 많아졌죠. 지금까지 늘리는 건 어렵지 않았어요. 근데 계속해서 늘릴 순 없거든요. 거기다 (지금껏 해 온) 네거티브 방식에도 예술단에 대한 보상 등이 충분하지 않아요. 예술에 모두 몰입해달라고 요청할 수가 없는 거예요. 사실 질적인 변화가 필요하거든요. 그런데 보상문제부터 예산 문제까지 여러 조건이 걸리죠.

-시즌제를 도입한 것은 (말씀하신) 양적인 면과 질적인 면 모두를 고려한 거겠네요.

▶양적인 면과 일종의 포맷에 관한 거죠. 우리나라 공연시장은 전반적으로 길게 보지 않거든요. 압축 성장한 사회니까 대응도 즉각적으로 해요. 꼭 나쁜 것만은 아닌데 세계화되니까 해외의 관행도 따라야 하고. 소위 문화선진국이라는 해외는 시즌제가 정착돼있잖아요.

장점이자 단점인데 프로그램 상당 부분을 전속 예술단이 하거든요. 우리 내부의 예술인력을 확보한 건 장점인데 동시에 또 많이 의존하는 건 단점이죠.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서라면 전속단체가 없는 곳이 훨씬 쉬워요. 바꾼 방향대로 프로그램을 짜면 되니까요. 그런데 저희는 죽으나 사나 예술단하고 같이 살아야 하니 장점이자 한계죠.

이승엽 세종문화회관의 사장실은 1층 서비스플라자와 같은 층에 있다. 보통 가장 높은 층에 사장실이 위치한 것과 사뭇 다른 풍경이다. 그는 핫라인, 애플리케이션 등 직원들과의 소통창구를 다양하게 열어놓고 정보를 공유하는 것에 중점을 둔다. /사진=홍봉진 기자

이승엽 사장은 올해 초부터 일하는 분야도, 방식도 다른 직원들과 소통하기 위해 '월요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공유할 정보, 자랑할 거리, 부탁사항 등을 담고 있으며 지금까지 한 번도 거르지 않았다. 정보 불균형을 해소하고 싶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직원들에게 '월요편지'를 쓰신다고 들었습니다. 반응은 어떤가요?

▶반응은 잘 몰라요. 답장을 하려면 기명으로 답이 올 수밖에 없어서 대부분 좋은 이야기만 하죠. 처음엔 주말에 작성해서 월요일 아침 9시에 맞춰서 보내기 시작했는데 요즘은 피곤해서 오후 1시에 맞춰서 해요. 원래 취지는 정보 공유하고 "힘을 좀 내자. 우리 스스로 자랑스러운 게 많다"는 걸 알리잔 취지였는데 상황에 따라선 안 좋은 소리도 하고 부탁도 하고 협박(?)도 하고요.(웃음)

별도로 익명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대나무숲'을 운영하고 있어요. '세종대나무숲'이란 어플리케이션을 만들었습니다. '삼청각 사건' 이후예요. 내부 직원만 쓸 수 있는데 슬픈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죠. '대나무숲'은 쓴 사람하고 저만 볼 수 있어요.

세종문화회관 직원들은 워낙 일하는 방식이 다 달라요. 낮에 일하는 사람도 있고 밤에 일하는 사람도 있고, 광화문에서 일하는 사람도 있고 다른 곳에서 일하는 사람도 있고. 그러다보니 정보 공유가 불균형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적어도 한 식구는 한 방향을 봐야하잖아요. 여러 의견이 있겠지만 적어도 한쪽으로는 봐야죠. 그러기 위해선 일단 정보가 공유돼야 하는데 기존 내부 정보공유망은 너무 딱딱해요. 그래서 공유하기 시작한거죠.

그에게 2017년의 목표를 묻자 "제도보다 콘텐츠에 집중할 계획"이란 답이 돌아왔다. 내년 시즌제도 이미 지난 6월 말에 프로그램의 큰 틀을 짰다. 세종문화회관이 '시민이 자랑하는 예술명소'로서 예술성과 완성도가 높은 콘텐츠를 마련해 이전의 명성을 회복하는 것이 그의 임기 내 목표기도 하다. 이 사장은 "여전히 변화중"이라고 했다.

-관객들에게 내년 시즌에 주목해달라고 할 만한 것 있나요.

▶내년 가을에 '블랙박스 극장'이 개관할 예정이예요. 이름 그대로 극장 안이 까만 가변형 극장이예요. 무대와 객석이 분리되지 않고 자유롭게 둘 수 있어요. 기존의 틀을 깨는 작품들, 20세기 후반부터 많이 만들어지는 실험적인 연극이나 작은 뮤지컬들 많이 올릴 수 있을 거예요. 지하 1층에 300석 규모로 개관하는데 지하철 5호선이 바로 (세종문화회관) 지하로 연결됩니다. 관객들에게 '선물'이라고 한다면 그런 접근성과 새로운 극장이 생긴다는 점이 있겠네요. 내년 9월 개관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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