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1
정신없는 와중에 짬이 나서 조금 적는다. 지금까지는 머저리같은 자서전 나부랭이 때문에 쓴 것이지만 기록하는 것은 중요하다. 특히 지금같은 상황에서는.
선원이 많이 죽었다. 나와 6명밖에 살아남지 못했다. 뭘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
이 별에서 자주 보이던 자기폭풍이 갑자기 들이닥쳤던가, 아니면 운석이라도 떨어졌던가 할 것이다. 그런데 기상 관측은 변수가 있지만 천문 관측은 거의 없다. 그러니 십중팔구 자기폭풍일 가능성이 높다. 정확한 발생 시간은 측정하기 힘들다.
사망을 확인하지 못한 자들도 있으나 함선이 이 꼴이 되었는데 살 수는 없겠지. 모든 이들이 적어도 3년은 나의 선원으로 활동한 자들이었다. 그들에게 안식이 있기를. 그리고 나를 용서해주기를.
젠장, 어째 운수가 너무 좋더라니.
어디서부터 정리해야 할 지 모르겠다. 탐사 중 선원이 이렇게나 죽다니. 이런 일은 처음이다. 우주에 나와 수십년간 거지같은 노가다를 해 왔지만 이런 적은 없었다.
일단 경과를 좀 정리해야 한다.
사건 발생은 이렇다. 지금으로부터 약 26시간 전, AT 0일 16시에, 변함없이 시아 때문에 부산하던 중에 갑자기 찢어지는 듯한 굉음이 들렸다. 이어서 지진과 같이 거대한 진동과 함께 고래가 우는 것 같은 소리를 들었는데, 나는 이것을 경험한 적 있다. 십중팔구 함선의 외부 장갑이 찌그러지는 소리였으리라. 물론 이러한 일은 평범한 압력으로는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닥치는대로 눈에 보이는 인원을 이끌고 탈출선으로 도망쳤다.
진동과 굉음은 한동안 계속되었고 이제 모두 깔려죽겠다 생각했는데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안정되었다. 아마 폭풍으로 지표가 뒤집혔을 테고, 산사태가 일어나 함선을 깔아뭉갠 것이겠지. 제대로 파묻혔는지 지금은 소리도 진동도 없다.
어떤 이유에선지는 모르겠지만 폭풍이 정말 급작스럽게 발생한 것 같다. 그것도 바로 우리 근처에서. 그러나 아무리 급작스러워도 함선을 부술 정도의 규모라면 전조는 있기 마련인데 이렇게 아무런 전조도 없이 발생하다니. 확률로 따지면 몇백만 분의 일은 족히 될 것이다. 아니면 다들 너무 신나서 모니터링을 놓친 것인가?
아직 정보가 불분명해서 알 수 없지만 함선이 찌그러진 것으로 보아 '산사태'의 규모는 대단했을 것이다. 아마도 큰 산이나 작은 소행성만한 질량이 우리 위에 쏟아져내린 것이리라.
그렇다. 우리는 생매장당해 버렸다.
밖에 나가서 장비를 철수시키던 라다와 존, 애니, 발리라는 아마 거대한 폭풍 속에서 명을 다했을 것이다. 훗날 그들의 시신이라도 찾을 기회가 있기를.
그나마 다행인 점은 꽤 많은 숫자가 탈출선으로 모였다는 점이다. 곤살로, 스티브는 시아때문에 원래부터 탈출선에 있었고, 스타니슬라프, 더글라스, 저스틴, 제이스는 다행스럽게도 살아남았다. 재해의 규모에 비하면 다행스러운 일이다.
모두들 놀랐으나, 지금은 어느정도 몸을 추스르고 있다.
탈출선은 내구도가 훨씬 강하다. 함선이 전부 압력으로 붕괴되더라도 오래 버틸 수 있다. 이전에도 지면 함몰을 당했지만 이 놈 덕택에 살아남은 적이 있다.
우리가 살아남을지 죽을지는 전적으로 탈출선의 내구도에 달려있다. 폭풍은 잠잠해진 것 같고, 탈출선이 산사태의 압력을 견딜 수 있을지 없을지는 아무래도 오늘이나 내일 정도, 그러니까 12~48시간 안에 결론이 날 것이다. 그 때까지 버틴다면 솔데로카호가 우리를 구출해 낼 때 까지 이곳에서 버티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당연히 외부와의 통신은 불가능하지만 어느 정도는 희망적인 관측은 가능하다. 이 인원이면 탈출선의 장비와 식량만으로 6개월은 버틸 수 있고, 솔데로카가 우리와의 통신이 두절된 것을 알면 직접 이곳으로 우리를 찾으러 올 것인데, 아무리 길게 잡아도 3개월이면 충분할 테니까.
따라서 48시간정도만 버틸 수 있다면 이론상으로 우리는 구출될 수 있다.
그리고 그게 아니라면 아마 우리는 모두 죽을 것이다. 이 탈출선을 관 삼아 산 채로 묻히겠지.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한 것이 이렇게 되고 나니 남는 것은 후회뿐이다. 시아의 발견 때문에 선원들이 해이해진 것을 분명히 감지했지만, 세기의 발견이랍시고 알면서도 방치한 것이 나의 실수이다. 이전에도 살짝 쓴 적은 있지만 사실 계속해서 불안했다. 비정상적인 일인 것은 변함없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문제가 생긴다면 그것은 모두 함장의 책임인 것이다. 병신같은 놈. 머저리같은 새끼. 이럴수록 지침을 지켰어야지.
현재로서 내 임무는 먼저 생존자들과 함께 귀환하는 것이고, 두 번째로 시아를 가지고 가는 것이다. 아마 솔데로카는 우리보다 시아를 찾겠지. 애초에 이 쪽으로 오는 것이 그 물건 때문이니까. 다행히 우리는 시아와 함께 있다. 시아를 탈출선에 넣어둔 것이 이런 식으로 효과를 보게 될 줄이야.
젠장, 이번 탐험에서 어떤 발견을 했는데, 앞으로 얼마나 대단한 일이 있어날텐데 고작 이런 일 때문에 문제가 생긴단 말인가? 인정할 수 없다. 인정하고 싶지 않다.
지금은 그저 탈출선의 생존시스템, 한 줄기 음식과 한 숨의 공기가 우리의 생존을 허락해주길 바랄 뿐이다.
가족들이 보고싶다.
AT. 2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 것이, 탈출선까지 부서져 생매장당하지는 않을 듯 하다.
탈출선에서 시아 분석에 쓰던 단말기로 함선 메인컴퓨터 연결에 성공했다. 대부분의 센서들은 심한 손상을 입었으나 다행히 메인 컴퓨터가 날아가지는 않았다.
센서들을 통해 밖의 상황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함선이 전부 토사 속에 파묻힌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아니었다. 함선 내부에 빈 공간이 꽤 되는데, 아마 함선의 무너진 외장이 토사와 잔해들과 맞물려 공동이 만들어진 것 같다. 이 말은 동시에 함선 외장이 제법 압력을 버티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잠잠한 것이 폭풍도 가라앉은 듯 하고. 함선 외장이 완전히 무너지더라도 탈출선은 버틸 것 같으니, 솔데로카가 올 때까지 살 수 있다는 희망이 보인다.
고참들은 불행히도 모두 죽었다. 개중에 리와 라다는 나와 같이 표류해본 적도 있어서 이럴 때일수록 옆에 있어주길 바랬으나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모두가 불안해하고 있다. 일단 교대로 잠을 재웠다. 불행 중 다행으로 함선의 오퍼레이터였던 스타니슬라프는 나와 함께 도망쳐 살아있었고, 녀석과 메인 컴퓨터의 데이터를 뒤져보았다. 서버도 절반은 날아갔지만 절반은 살아있었다. 그래서 사건 경과를 추적해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사건이 발생한 시간인 16시를 전후하여 어떠한 이상 징후도 발견되지 않았다. 기상 관측기도 지진파 감지기도 자기측정기도 잠잠했다. 다시 말해, 폭풍이 발생하기 직전까지 어떠한 징조도 없었다는 것이다.
긍정적인 점은 경보체계에는 문제가 없었다는 소리가 되고, 따라서 이 불찰이 나나 선원들의 과실에 의한 것은 아니게 된다.
그리고 부정적인 점은 이런 일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정도로 거대한 태풍이 아무런 전조도 없이 그냥 나타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빌어먹을, 그냥 관리의 문제인게 나을 수도 있다. 그게 훨씬 단순하다. 나는 어제만 해도 이것이 인재라고 짐작했다. 그런데 그것을 확실하게 부정하는 데이터가 존재한다. 우리 선원들은 맡은 바를 충실히 이행했다. 목숨을 바쳐서.
사람의 실수가 아니라면 가능성은 두 가지뿐이다. 계측기들은 24시간마다 자체점검을 한다. 그러니 열 몇시간 동안 무슨 괴상망측한 일이 있어서 함선 계측기들이 일제히 고장났거나, 아니면 폭풍이 감지해낼 수도 없을 정도로 가까이에서, 아주 급작스럽게 발생했다는 이야기이다. 어느 쪽이든 상식적으로 말도 안되는 일이다. 장비가 전부 고장났는데 그걸 알지 못했다고? 내 동료들은 유치원생이 아니다. 심지어 현시점에서도 몇몇 장비들은 정상적으로 작동한다.
그렇다면 폭풍이 갑작스럽게 발생했다? 이것도 말이 되는 소리가 아니다. 기록을 보나 기억으로 보나 16시 바로 직전까지도 화창했다. 아무리 돌풍이라도 한순간에 발생하지는 않는다. 언제나 작은 폭풍에서 거대 폭풍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인재, 기기오작동, 돌발 폭풍. 가장 원인으로 꼽기 쉬운 1,2,3순위가 전부 확실하게 부정당했다.
이쯤 되니 곤살로가 이 사고가 시아와 관련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견을 제시했다. 나머지 녀석들도 동의하는 눈치이다. 나도 내심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곤살로, 스티브와 이야기를 나눈 후에, 둘에게 시아의 분석을 재개하라 명했다. 말도 안되는 이상현상이 있었다면 유력한 원인은 시아였다. 전대미문의 물건이니까. 해결책을 찾으려면 내용물을 까 봐야 할 것 같았다. 메인컴퓨터도 너덜너덜한 상태지만 리다리를 가동시키는 것은 가능했다. 애초에 시아와 분석기기를 대부분 탈출선에 갖다 둔 덕인데, 이 판단은 정말 잘한 것 같다.
다만 이상현상이 정말로 연관된 것이라면 위험할 수도 있으니, 언어 해석만 하고 시아를 직접 조작하는 것은 결코 하지 못하게 했다. 녀석들도 직접 만지는 것은 무서워하는 눈치이고.
살 수 있다. 일단 한 숨 돌렸다. 이것으로 위안을 삼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