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부'(pudenda)란 단어는 라틴어로 '부끄러운 부분'을 뜻하는 단어에서 비롯됐다. 프로이트는 여성의 성기를 '어두운 대륙'이라고 불렀고, 온갖 해악과 질병이 나왔다는 '판도라의 상자'는 여러 언어에서 '질'을 지칭하는 속어로 쓰인다.
'아래쪽' 아니면 '거기'다. 여성의 성기는 알맞은 용어로 명명하는 것조차 금기에 가까웠던 대상이다. 드러내놓고 말하기에 부끄럽고 신비롭지만 동시에 혐오와 경멸의 의미가 담긴 채 소비돼왔다.
책 '마이 버자이너'는 이러한 금기를 산산조각낸다. 여성의 성기를 의학적 관점에서 낱낱이 해부하고 그를 둘러싼 문화적, 역사적, 인류학적 논의를 살핀다. 책은 2007년 출간됐던 '버자이너 문화사'의 개정판이다.
의사이자 성과학자인 저자는 여성 성기의 구조와 기능부터 생식과 자궁, 오르가슴, 클리토리스 절제와 '바이브레이터'의 기원 등을 상세하게 설명한다. 의학적 지식과 신화, 소설, 그림, 역사 등 풍부한 사례가 실렸다.
후반부에는 여성성에 대한 두려움과 혐오, 숭배 등을 문화인류학적인 관점에서 설명한다. 정조대와 처녀성 검사처럼 여성 성기를 억압해왔던 세계의 문화적 풍습도 소개한다.
책은 여성 성기의 가치를 왜곡해왔던 견고한 틀을 깬다. 오랜 시간 동안 세계를 지배해왔던 남성 중심적인 문화는 여성 성기를 둘러싼 잘못된 신화를 만들어왔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에 주둔한 미군들 사이에서 퍼졌던 "독일 창녀들의 질 안에 면도칼이 있다"는 소문이 대표적이다. 이 같은 신화는 거세에 대한 공포가 여성 성기에 대한 두려움과 혐오로 전이된 것이다. 저자는 질 때문에 다치는 남자보다 음경 때문에 다치는 여자가 훨씬 많다는 점을 꼬집는다.
"잠자는 숲 속의 공주가 깨어나는 데에는 단연코 왕자가 필요하다"는 식의 주장을 정면으로 비판하기도 한다. 저자는 "'삽입에 의한 오르가슴'이 성적 활동에서 최고로 좋은 것이라는 가정 역시 남성 중심적 문화와 시각에서 생긴 결과물"이라며 "여성의 성적 능동성을 폄훼한다"고 지적한다.
현대사회라고 억압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는 여성들의 '팬티라이너' 사용을 예로 들며 여성 성기에 대한 혐오와 자본주의가 만나 어떻게 여성들을 옥죄었는지 설명한다.
역설적이게도 이토록 방대하게 여성 성기에 대해 저술한 옐토 드렌스는 남자다. 그는 책 첫머리에서 "과연 남자 저자가 써도 되는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고 밝혔다.
'남자 저자'란 말에 '혹시나' 하는 여자 독자가 있으면 우려는 접어도 괜찮을 듯 하다. 김명남 번역가는 "온갖 감상들을 일으키는 여성 성기에 대해 지나치게 호들갑을 떨거나 감상에 흐르지 않으면서도 피하는 것 없이 요목조목 알려주는 덕분에 여자로서 많은 궁금증을 풀었다"며 "남자의 저술임에도 읽는 데 마음에 걸린 부분이 없었다"고 전한다.
책의 원제는 '세상의 기원'(The origin of the world)이다. '마이 버자이너'는 왜곡의 꺼풀을 벗긴 채 있는 그대로, 인류의 기원을 탐험할 기회를 제공한다.
◇마이 버자이너=옐토 드렌스 지음. 김명남 옮김. 동아시아 펴냄. 516쪽/1만6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