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는 학생이면서 어째서 이번 계획에 가담했는가?” 예심판사가 묻자, 배재고보 2학년 김동혁은 “난 조선 사람으로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을 한 것입니다”라고 당당하게 대답했다.
“17세로 독립운동이 무엇인지 모를 텐데, 누구에게 선동 받았나?”라는 심문에서도 이화학당 2학년 유점선은 “스스로의 생각으로 참가한 것”이라고 말했다.
역사책에는 한 줄도 나오지 않는 3.1 운동의 진짜 숨은 주역들은 다름 아닌 평범한 우리들이다. 민족대표 33인 이외의 숨은 민초들은 민주주의를 위해 소중한 삶을 희생하며 ‘오늘의 대한민국’을 이끌었다.
이 책에서 처음 다뤄진 김동혁을 비롯한 평범한 이들은 모두 강요나 강제가 아닌 ‘자발성’에 따라 기획자, 전달자, 실행자 역할을 했다.
저자는 당시 신문자료와 역사사료, 경찰 신문조서 등을 샅샅이 훑어 올해 100주년을 맞은 3.1 운동의 숨은 주역들의 이야기가 대한민국 촛불의 역사를 되짚는 과정임을 증명한다.
‘기획자’들은 독립과 자유의 씨앗을 뿌린 여운형과 신한청년당, 독립선언서로 독립운동의 시작을 알린 손병희와 천도교인들, 교파를 넘어 대의에 합의한 이승훈과 기독교인들이었다. 소수의 기획자들이 공모한 운동이 대규모 민족운동으로 확산한 데에는 ‘전달자’들의 역할이 컸다.
보성사 사무원 인종익은 독립선언서 200여 매를 숨기고도 몸수색에서 당당했고 윤익선 등은 조선독립신문을 통해 독립운동의 열기를 이어나갔다. 인종익은 심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만인을 죽이면 만인의 피가 백만을 물들이고, 백만을 죽이면 백만의 피가 천만을 물들일 것이오. 그럼 결국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지 않겠소?”
‘실행자’들은 10세 아이부터 학생, 교사, 순사보까지 차고 넘쳤다. 순사보 정호석은 아이를 핑계로 휴가를 얻어 넷째 손가락 둘째 마디를 물어뜯은 후 그 피로 광목에 태극기를 그렸다. 그리고 10세 정호석의 딸이 만세를 부르자, 수십 명의 여자 아이들이 만세를 부르며 따라왔다. 3.1 운동 역사상 최연소 시위대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만세시위는 또렷한 족적을 남겼다.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일부 쟁취했고 이를 통해 청년·종교·노동 등 수많은 단체를 만들어내는 청년운동의 시대를 열었다.
독립운동의 방법도 다양화한 계기가 됐다. 일부는 외교적인 수단으로, 일부는 무장투쟁의 방법으로 나타났다. 파괴와 암살을 표방한 의열단체나 사회주의혁명을 통한 공산주의자들의 등장 모두 3.1 운동이 낳은 새로운 독립운동 세대였다.
저자는 “3.1 운동은 조선의 남녀노소, 100년 전 민초들이 이뤄낸 촛불”이라며 “그 촛불은 독립과 자유를 염원하는 희망의 횃불을 밝힌 뒤 등불처럼 번져 독립운동을 다양화하고 민주주의 역사라는 커다란 흐름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만세열전=조한성 지음. 생각정원 펴냄. 336쪽/1만6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