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만 원작 '비트'를 다시 읽고 나서 깜짝 놀랐다. 대학 시절 읽었던 재미 중심의 만화 그 정도의 수준이 아니었다. 13번째 마지막 권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땐 어떤 시보다 강렬했고, 어떤 소설보다 감동적이었다. '비트'가 이런 서사의 문학과 철학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지 거의 30년 만에 처음 알았다.
만화를 읽었지만, 영화로 각인된 깊은 잔향 때문이었을 것이다. 정우성과 고소영이라는 당시 세대를 대표하는 미남미녀 배우들을 앞세운 데다, 흔들리는 청춘의 우울을 조직폭력물로 엮는 비극적 결말이 오랫동안 아물지 않는 상처로 기억됐을지 모른다.
원작인 만화는 다르다. 허세를 내세우는 조폭물도 아니고, 잠깐 멋있게 빛나다 사라지는 청춘의 화려한 찰나도 아니다. 우리 주변의 형, 동생, 부모, 이웃 등 평범한 소시민의 있는 그대로의 삶을 애잔하게 녹인다.
1994년 영 챔프에서 처음 연재된 이후 30년만인 올해 복간된 만화 '비트'의 재독(再讀)은 우리가 왜 영화와 다른 오리지널 서사에 주목해야 하는지 제대로 알려준다. 만화 속 그림도, 글도 우리가 흔히 아는 만화 같지 않아 더 '만화' 같고 우리가 사는 삶의 현실보다 더 '사실' 같아 새롭다. 마침 올해 데뷔 50주년을 맞은 작가 허영만을 찾아 오랜만에 맛보는 아날로그 만화의 감동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먼저 비트 복간 30주년 소회를 물었다.
"복간하고 나니, 그때 제가 열심히 그렸구나 하는 느낌부터 오더라고요. 하하. 인물 설정도 그렇고 배경도, 서사도 그랬죠. 특히 90년대 소위 '개성' 넘치는 X세대의 출현으로 배경에 특히 주목했어요. 만화에 그릴 그림을 정확히 넣고 싶어서 촬영을 정말 많이 했거든요."
허 작가의 특기는 사실주의 그 자체로 요약된다. 창작자는 흔히 상상으로 더 많은 사실을 부여할 수 있다고 믿기 쉽지만, 그에겐 통하지 않는 수법이다. 되레 사실이 더 많은 해설의 재료로 쓰인다. 더 많은 사실을 위해 그는 가는 곳마다 촘촘히 그물망을 치듯 카메라를 놓고 무작위로 찍는다. 그렇게 찍은 사진들을 바탕으로 사실적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사람이 부족하면 사진과 학생들을 아르바이트로 쓰고 "보이는 것은 모두 찍어오라"를 특명으로 작품을 준비했다. 비트는 그런 열혈정신이 낳은 결과물이다.
"만화에 필요한 구도하고는 좀 다르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 낫기에 해야 했어요. 그림을 그리다 보면 어느 순간 시대에 동떨어질 때가 있는데, 그런 평가를 받기 싫어했던 거 같아요. 앞서 가기 위해서 당시 유행하던 일본 잡지 '논노' 스타일을 많이 따라 해보기도 하고 촬영 사진을 세밀하게 그려보기도 하는 거예요. 비트의 오토바이나 패션 모두 시간이 지나도 현재형처럼 보이는 게 중요했어요."
비트의 아이디어는 어디서 시작됐을까. 허 작가는 국회 앞마당을 지날 때 일화를 떠올렸다. "거기서 학생 한 명을 만났는데, 그가 '재수생인데, 대학을 할 수 없이 가는 거다'라고 답해서 목적의식 없는 청춘의 이야기를 다뤄야겠다고 생각한 거예요. 그걸 박하 작가가 잘 다듬어서 썼죠. 무엇보다 박 작가가 마지막 장면에 그린 서사를 보고 그게 진정한 스토리라고 여겼어요."
'비트' 복간 서문에도 허 작가는 "젊은 시절 부모나 사회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고 자란 이들을 향해 질투를 보내곤 했다"며 "때론 그 질투가 반항으로 이어졌지만 누군가 이 아픔을 진정으로 이해해 줄 수 있었으면 하고 생각했다"고 적었다.
우리가 기대한 대로 결말은 나지 않았지만, 어떤 사람에 대한 믿음과 그 믿음을 넘어서는 또 어떤 사람의 신념은 상반된 주장이 아니라 둘 다 옳은 슬픈 목적이라는 점에서 이 작품은 비극적이다. "어느 누구도 혼자뿐인 사람은 없다"고 말하는 로미(영화에서 고소영)가 신의 발자국을 사례로 수감된 민(영화에서 정우성)을 위로하고, 그 위로의 예시를 로미보다 더 깊이 가슴속에 묻고 실천하는 민의 마지막 모습은 가슴이 미어질 정도다.
허 작가는 "나도 드라이한 사람이지만, 이 친구(박 작가)는 더 하다"면서 "그렇게 결론을 낸 그를 존경한다"고 말했다. 3년 뒤 이 작품은 영화로 만들어졌다. 허 작가는 "그리면서도 잘 생기고 곱상하고 말수 적은 주인공은 영화로 만든다면 정우성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그땐 싱싱했다"고 웃었다. 정우성은 이 영화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허영만의 작품에는 문학이나 철학에 조예가 깊은 작가들이 함께 참여했다. 1980년대는 그림 그리는 작가가 만화계 중심이었는데, 허 작가는 이른바 '스토리 작가'라는 새로운 방식을 전면에 내세웠다. 한마디로 저작권을 나누는 방식을 도입한 것이다. 1986년 '카멜레온의 시'는 김세영 작가와 함께한 첫 작품으로 기록됐다. 기획-구상-그림-글 모두 역사나 문학, 사회철학, 심리학에 관심 깊은 이들의 합작품으로 탄생하다 보니, 그의 작품들 대부분이 만화라기보다 인문학에 가까웠다.
"전에 드라마와 계약을 하면 제 작품의 이런 내용 저런 내용 빼면서 그 이유로 '만화적'이라는 말을 하는데,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갔어요. 그건 가볍다거나 수준 떨어진다 정도로 해석되는 거죠. 제 만화에서 슈퍼맨이 나오는 얘기가 거의 없고 대부분 동네 아저씨, 형들 얘기가 많은데, 그건 그만큼 '만화적'이라는 이해하기 힘든 말을 안 듣기 위해 더 흔한 얘기를 다룬 것이 아닌가 싶어요. 다른 작가와 더 달라야 한다는 생각도 컸던 것 같고. 결과적으로는 더 많은 드라마와 영화로 만들어졌잖아요."
허영만은 1974년 한국일보 신인만화공모전에 '집을 찾아서'가 당선되면서 만화가로 데뷔했다. 그는 올해 데뷔 50주년을 맞아 "요즘 또 다른 재능이 있다는 것에 놀란다"고 했다. '타짜'나 '식객' 같은 굵직한 작품으로 이미 스타 반열에 올랐지만, 삽화체(극화)가 아닌 만화체 만화에 새로 눈 뜨면서 또 하나의 재능을 발견했다는 것. 코로나 시대에 시작한 '허허 동의보감'(2020·내 몸은 내가 지킨다)은 처음으로 배경이 거의 없는 만화체로만 그린 작품인데 만화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다고 했다.
반세기 활동 중 아쉬운 점으로는 '심의 규정'을 꼽았다. "'각시탈'을 그릴 때였는데, 제 아이디어는 양반과 상놈의 갈등을 얘기하는 거였어요. 그런데 계급 문제 생긴다고 안 된다고 해서 방향이 틀어졌죠. 그 틀(심의 규정) 때문에 제 머리가 더 크지도 못하고 정체됐는데, 나중에 은근슬쩍 (심의가) 없어진 뒤 틀 안에서 머리를 꺼내 보니, 사각형이더라고요. 이걸 원형으로 다시 돌려놓을 때까지 한 3년 걸렸어요."
가장 힘든 작업은 무엇이었느냐는 질문에는 칭기즈칸을 다룬 '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칭기즈칸 이야기가 워낙 방대한데다, 기록할 만큼 중요한 역사적 자료로서의 가치를 보존하고 싶은 욕심이 컸기 때문. 무엇보다 그림이 힘들었다고 했다. 그는 "칭기즈칸은 평생 전쟁을 했는데, 10만명이 싸우면 병사만 그리는 게 아니라 제목처럼 말도 함께 그려야 해서 일이 두 배였다"며 "최소 100명만 그린다고 해도 고된 작업을 피할 수는 없었다"고 했다.
비트 복간을 계기로 타짜 복간 계획도 올해 잡혀있다. 타짜는 영화 4편으로도 이어질 예정이다. 웹툰이 대세이고 문학보다는 로코(로맨틱 코미디), 진중하기보다는 가볍고, 만연체보다는 단문체를 선호하는 경향과 유행이 지배하는 분위기에서 종이 만화의 귀환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요즘 웹툰을 보면 너무 다 잘 그리더라고요. 다만 소위 무게라는 게 없다든가, 작가적 관점이나 철학이 안 읽힌다면 작품의 생존력이 오래 보존될지 우려스럽긴 해요. 옛날 오프라인 만화의 복간은 그런 면에서 소중한 보존(소장)이나 기록의 유산 같은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해요. 아무래도 읽으면서 소유하고 싶은 중요한 텍스트들이 적지 않을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