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로 읽는 시대감각] 헤어질 결심, 다시 생각과 만나기 위하여

이시종 국립세계문자박물관 홍보디자인부장
2026.07.12 06:00

[키플랫폼 전문가 칼럼] 이시종 국립세계문자박물관 홍보디자인부장

[편집자주] 머니투데이 지식·학습 콘텐츠 브랜드 키플랫폼(K.E.Y. PLATFORM)이 소개하는 전문가 칼럼 코너
국립세계문자박물관 개관 당시 열렸던 첫 번째 기획특별전<긴글주의-문자의 미래는?>(2023.6.30~2023.11.19)의 프롤로그 공간 전경 /사진제공=국립세계문자박물관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 서래(탕웨이 분)는 스스로를 해준(박해일 분)의 '미제 사건'으로 남기기로 결심한다. 깔끔하게 풀리는 대신 오래 남기를, 잊히는 대신 끝내 질문으로 머물기를 택한 것이다. 어떤 것은 결론이 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사람 안에 오래 살아남는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결심도 그와 닮은 데가 있다. 다만 헤어져야 할 대상은 사람이 아니라, 우리를 대신해 너무 빨리 답을 내주는 편리함이다.

요즘 사람들은 무엇을 볼지, 무엇을 들을지 스스로 정하기 전에 먼저 추천받는다. 알고리즘은 취향을 분석하고, 화면은 좋아할 만한 것을 끊임없이 밀어 올린다. 직접 찾기보다 추천받은 것 안에서 고르는 흐름이 점점 뚜렷해진다. AI 이후 이 흐름은 더 빨라졌다. 예전에는 정보를 찾는 데 시간이 걸렸다면, 이제는 AI가 요약하고 정리해 준다. 효율만 놓고 보면 놀라운 변화다. 그런데 우리가 소비하는 것은 이제 생각 그 자체가 아니라 '생각의 결과물'에 가까워졌다. 질문을 통과하는 과정은 건너뛴 채, 이미 도착해 있는 답만 받아 든다.

이런 흐름을 앞서 읽어낸 이들이 있다. 철학자 한병철의 말처럼 우리는 외부의 억압이 아니라 스스로를 끊임없이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지쳐 있고, 쉼 없이 소비하고 생산하는 동안 멈춰 생각할 시간을 잃는다. 보드리야르가 짚었듯, 우리는 실제 경험을 하기도 전에 이미 요약되고 편집된 버전을 먼저 만난다. 무엇이 '진짜'인지 판단하는 감각 자체가 흔들리는 것이다.

지금 시대의 특징은 '정보 부족'이 아니라 '해석 과잉'에 가깝다. 뉴스에는 이미 결론이 달려 있고, 추천 시스템은 비슷한 의견만 반복해 보여준다.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에 분노할지까지 알고리즘이 점점 더 빠르게 예측하고 설계한다.

문자를 다루는 박물관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이 변화를 하나의 전시 제목에서 먼저 읽었다.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이 개관과 함께 처음 선보인 기획특별전의 제목은 <긴 글 주의– 문자의 미래는?>이었다. '긴 글 주의'는 원래 인터넷과 SNS에서 쓰는 말이다. 글이 길어 읽기 번거로우니 각오하고 보라는 일종의 경고문이다. 이 짧은 문구 안에 이미 시대의 징후가 들어 있다. 우리는 어느새 긴 글 앞에서 마음을 한 번 가다듬어야 하는 사람이 되었고, 문장보다 이미지와 영상에, 말보다 이모티콘에 익숙해졌다.

흥미로운 건 전시가 이 징후를 다루는 방식이었다. 전시는 "문자는 죽는다"거나 "그래도 문자는 살아남는다"는 결론을 관람객에게 배달하지 않았다. 대신 문자와 비문자가 각각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놓치는지 보여준 뒤, "우리는 어떤 소통의 미래를 만들 것인가"라는 질문을 관람객의 손에 돌려주었다. 답을 정리해 주는 대신, 답을 스스로 짓게 하는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여기에 콘텐츠를 만들며 내가 붙드는 원칙이 있다. 좋은 전시도, 좋은 콘텐츠도 결국 하나의 '판단'을 담는다. 무엇이 지금 중요한지, 무엇을 봐야 하는지 먼저 골라 제시하는 일이다. 그러나 그 판단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사유를 대신 끝내는 판단이다. 알고리즘처럼, 당신이 이미 좋아할 것을 더 정확히 밀어 넣어 되받아 생각할 여지를 지운다. 다른 하나는 사유를 여는 판단이다. "이게 중요하다"고 책임지고 말하되, 그 판단을 다시 상대에게 돌려주어 스스로 완성하게 한다. <긴 글 주의>가 택한 것은 두 번째였다.

그렇다면 질문만 던지고 끝내도 좋은가. 그렇지 않다. 질문은 시작일 뿐, 우리가 구하는 것은 결국 답이다. 다만 그 답의 값어치는 '무엇'이 아니라 '어떻게 도달했는가'에서 갈린다. AI가 건네는 답은 이미 완성된 형태로 주어지지만, 스스로 물어서 얻은 답은 자기 삶의 맥락 안에서만 완성된다. 같은 결론이라도, 남이 정리해준 것과 내가 통과해 얻은 것은 전혀 다른 무게를 지닌다.

때로 그 답은 깔끔하게 떨어지지 않고 미결로 남는다. 영화 속 서래가 스스로를 미제 사건으로 남겼듯, 오래 사람 안에 살아남는 것은 깔끔하게 닫힌 답이 아니라 끝내 닫히지 않은 질문이다. 스스로 감당한 미결은, 남이 대신 내려준 확신보다 오래 나를 살아 있게 한다. 인간은 원래 효율만으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었다. 쉽게 결론 나지 않는 질문과 오래 설명되지 않는 감정 속에서 의미를 만들어가는 존재에 가까웠다. 그러니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빠른 정답이 아니라, 그 정답과 헤어질 결심이다. 익숙한 답과 헤어지기로 결심할 때, 우리는 비로소 다시 생각과 만난다. 어쩌면 이 글에도 '긴 글 주의'가 붙어야 할지 모른다. 그럼에도 여기까지 읽어낸 당신은, 이미 그 결심을 한 번 해낸 셈이다.

이시종 국립세계문자박물관 홍보디자인부 부장

필자는 종합여성지 <Queen>과 월간 <문학사상>에서 편집장으로 일했으며 현재 국립세계문자박물관 홍보디자인부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박물관 브랜딩과 전시 커뮤니케이션, 문화콘텐츠 기획 업무를 맡고 있으며 '콘텐츠는 인간을 어떻게 움직이는가', '문화기관은 어떤 질문을 남겨야 하는가'에 관심을 두고 있다. 언론과 문화기관 현장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콘텐츠와 인간의 관계를 시대 감각의 관점에서 관찰하고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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