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켓값이 20만원이라도 'N회차' 관람이 필수입니다. 좋아하는 굿즈(기념품)를 지인들에게 나눠주기 위해 수십만원을 쓰기도 하죠."(뮤지컬 팬 정예슬씨)
공연예술 시장의 큰손으로 떠오른 여성 관객들이 뮤지컬의 든든한 후원자로 자리매김했다. 뮤지컬은 '우먼 파워'를 무기로 다른 장르를 따돌리고 부동의 1위였던 대중음악 부문까지 넘보는 등 덩치가 점차 불어나고 있다. 뮤지컬계의 여풍이 더 거세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12일 공연예술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월 1일~6월 30일) 뮤지컬 부문 티켓예매액은 2232억여원으로 모든 장르 중 대중음악(4527억여원)에 이어 2위다. 연극(759억여원)과 클래식(404억여원), 서커스·마술(59억여원)을 합친 것보다 2배 가까이 많다. 3600회 이상 공연된 클래식이나 2200회 공연된 대중음악보다 공연 횟수가 적다(1800여회)는 점을 감안하면 수익성은 오히려 높다.
여성 '코어 관객'(충성도가 높은 소비자)의 힘이 컸다. 공연예술계는 상반기 여성 관람객의 비중은 70~80% 수준일 것으로 추산하는데 50~60% 수준인 다른 장르보다 높다. 인기작 중 하나인 '알라딘'의 여성 관람객 비중은 75%를 웃돌았다. 같은 작품을 여러 번 보는 반복 관람객이 많다는 점이 특징이다.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집계에서는 뮤지컬의 반복 관람 비율이 60.4%로 모든 장르 중 1위였다.
소비 규모도 남성 관객에 비해 크다. 평균 15~19만원(VIP석 기준)에 가까운 티켓 값이나 수십만원이 넘는 굿즈에도 아낌없이 지갑을 연다. 매달 뮤지컬을 관람하는 이윤지씨(30)는"대본집이나 마그넷(자석), 향수 등을 사다 보면 30~40만원은 기본"이라며 "좋은 작품에 투자한다는 생각으로 소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창작 뮤지컬에 미치는 영향이 뚜렷하다. 해외 대작의 판권을 사와 만드는 '라이센스 뮤지컬'보다 투자가 부족해도 수익성이 보장되는 여성 관객들을 무기로 다양한 작품을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상연 중인 작품 중에는 '파가니니'나 '서편제', '유미의 세포들' 등이 주된 사례다. 배우가 악기까지 연주하는 액터-뮤지션(파가니니)이나 웹툰 원작(유미의 세포들) 등 다양한 시도를 한 작품들이다.
한 뮤지컬 배급사 관계자는 "여성 관객들이 늘며 초연 작품도 어느 정도 수익성이 보장된다"며 "투자·배급사 입장에서도 신인을 투입하거나 무대를 '업그레이드' 하는 등 과감하게 투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여성 관객들의 지지가 탄탄하니 해외 무대에서의 성과도 잇따른다. 지난해 뮤지컬계 최고 권위의 토니상을 한국 작품 중 최초로 수상한 '어쩌면 해피엔딩'에 이어 미국·대만에 진출한 '렛미플라이', 한국 최초로 브로드웨이의 대작 '시카고' 주연을 맡은 배우 아이비 등이 손꼽힌다. 지난 3일까지 열린 'K뮤지컬국제마켓'에도 국내외 관람객 5000여명이 몰리는 역대급 성과를 거뒀다.
뮤지컬계는 '티켓 파워'가 입증된 여성 관객을 겨냥한 작품을 더 늘리겠다는 목표다. 최근 대만에 진출한 쇼뮤지컬 '헝키쇼'가 대표적이다. 여성만 관람할 수 있는 여성 전용 뮤지컬로 현지 최대 공연 기획사가 협력을 자처했다. 대학로에서 활동하는 한 뮤지컬 프로듀서는 "우리 뮤지컬을 소비하는 외국인 여성 관객의 비중도 꾸준히 늘고 있어 해외 무대 진출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