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은 '트럼프 금관'만 찾아"…한국전 요청 쏟아져도 씁쓸한 이유

오진영 기자
2026.08.16 09:00
지난 4월 국립청주박물관 특별전시실(청명관)에 전시된 서봉총 금관. / 사진 = 뉴시스

"외국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무조건 우리 금 유물입니다. 반짝반짝하고 화려하게 빛나야 인기가 있습니다."

16일 한 지역박물관장은 최근 해외 박물관과의 협력 전시에 대해 묻는 질문에 이 같이 말했다. 우리 유물을 전시하려는 해외의 수요가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지만 금 장식구·향로 등 일부 유물에 한정돼 있다는 아쉬움이다. 그는 "협력 전시나 순회전 문의는 늘고 있으나 금 유물을 꼭 대여해 줘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며 "비용 부담도 만만치 않아 고민"이라고 설명했다.

외국인들 사이 치솟는 'K골드'의 인기가 우리 유물의 해외 전시에 자칫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해 경주에서 열린 APEC(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 정상회담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선물한 금관이 이목을 끌며 수요가 급증했지만, 화려한 일부 유물에 쏠림 현상을 초래했다는 지적이다. '비싼 유물'에 딸려오는 최대 수십억원의 전시 비용도 고민거리다.

우리 유물을 전시하려는 해외의 수요 자체는 최근 몇 년간 큰 폭으로 증가 중이다. 영국 최대의 대영박물관은 오는 10월부터 2000년간의 우리 역사를 선보이는 전시 '한국'을 개최하며, 프랑스의 국립기메아시아예술박물관은 유럽 최초로 신라만을 단독 조명하는 특별전을 오는 31일까지 개최한다. 중앙박물관은 개관 이후 총 145건의 국외 전시를 개최했는데, 지역·사립 박물관을 포함하면 수백건이 넘는다.

/그래픽 = 이지혜 디자인기자

이제까지는 우리가 외국에 전시를 요청했으나, 주요 박물관이 먼저 우리 유물을 대여해 달라는 요청이 늘었다는 점이 의미가 있다. 대영박물관이나 기메박물관 등에서 열리는 전시도 모두 중앙박물관이나 경주박물관 등 우리 박물관에 요청해 우리 유물을 빌려 이뤄지는 전시다. 서울의 한 박물관장은 "콧대 높은 유럽 박물관에서도 한국 특별관을 개설하거나 전시를 열고 싶다는 요청이 많다"고 설명했다.

걱정거리는 이들이 원하는 유물이 대부분 비슷하다는 점이다. 서적이나 의복, 생활용품보다는 장신구나 대형 탑, 석상 등 크고 화려한 유물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특히 금관이나 금 귀고리, 금 향로 등의 인기가 높다. 한 지역박물관 관계자는 "유럽에서 기획전을 열고 싶다는 제안이 왔다가 '금 유물이 사용 중'이라고 하자 무산된 사례도 있다"며 "소박한 유물을 전시하고 싶어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말했다.

전시를 기획하는 학예연구사들은 우리 전통을 간직하고 있는 '소박한 유물'의 해외 진출을 늘려야 한다고 지적한다. 전시가 일부 유물에 집중돼 있으면 올바른 우리 문화를 알리기 어려워 자칫 역사 왜곡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아쉬움도 내놨다. 중앙박물관의 집계에 따르면 전세계 25개국에서 70개 한국실(전시관)이 운영 중이지만 이들 중 상당수는 자체 소장품이 없거나 복제품을 전시 중이다.

지난해 식문화 특별전을 기획한 학예연구사 A씨는 "개다리소반이나 막사발 같은 것이 진짜 한국인의 풍속을 알 수 있는 유물인데 해외에서는 별로 인기가 없다"며 "단순히 전시 숫자에 집착하지 말고, 좀더 다양한 분야의 유물을 알리는 전시를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이재명 대통령에게 선물받은 '천마총 금관 모형'을 지나며 인사하고 있다. / 사진 =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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