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노믹스의 화살촉이 부러졌다?'
머니투데이 특별취재팀이 100일 만에 방문한 일본 현지에서 나오는 얘기다. 지난 여름 도쿄를 방문했을 때만해도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경제정책인 '아베노믹스' 덕분에 일본 경제는 분명 살아나는 모양새였다. 아베가 쏘아 올린 세 개의 화살 덕분에 GDP(국내총생산) 성장률, 물가, 주가지수, 고용률 등의 지표가 눈에 띄게 좋아졌다.머니투데이 6월18일자 1면 참조- [창간기획]'잃어버린 20년' 일본, 부활의 현장을 가다
하지만 아베의 화살촉이 시험대에 올랐다. 최근 경제 지표들이 마이너스로 돌아서는 등 심상치 않은 모습이다. 게다가 아베노믹스를 뒷받침하던 내각 지지율도 곤두박질쳤다.
평소 정치에 무관심했던 수 만명의 일본인들이 거의 매일 길거리로 나와 "아베는 물러나라", "우리는 전쟁을 반대한다"며 소리 높였다. 국민의 뜻을 무시한 아베 정권에 강한 분노를 표출한 것이다. 또 그들은 "아베가 집권하면서부터 경제가 살아난 게 사실"이라면서도 "그러나 정작 우리 서민들의 삶은 나아진 게 하나도 없다"고 울분을 토했다. 지난 100일 동안 일본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걸까.
◇급한 불 껐지만… 다음은? =머니투데이 취재팀이 일본을 찾았던 지난 6월 일본은 '잃어버린 20년'을 되찾는 모습이었다.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돈을 풀어 엔화 가치를 떨어뜨렸다. 기업들의 수익성은 개선됐고, 주가는 올랐다. 아베노믹스 도입 전 8000선이었던 일본 주가지수(니케이지수)는 2만5000선을 기록했다. 또 대규모 공공투자를 통해 경기부양을 시도한 결과 지난해 말 기준 일본의 실질 GDP성장률은 1.5%까지 상승했다. 실업률도 같은 기간 3.4%로 낮아졌다.
그러나 기자가 100일 만에 다시 찾은 일본 경제는 흔들리고 있었다. 일본의 최근 실질 GDP성장률은 -0.3%를 기록했다. 지난해 3분기(-0.3%) 이후 3분기 만에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 순항하던 배가 갑자기 뒤집힌 꼴이다.
일본 경제의 60%를 차지하고 있는 개인소비와 수출이 경기를 끌어내렸다. 개인소비는 임금보다 물가가 빠르게 오르면서 전 분기 대비 0.7% 감소하며 4분기 만에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중국 경기둔화로 인해 수출 역시 전 분기 대비 4.4%나 줄었다. 그러면서 2만선을 넘었던 주가마저 1만8000선대까지 하락했다. 경기와 주가가 뒷받침해줬던 내각의 지지율은 자연스럽게 30%대로 떨어졌다.
1990년대 초 버블이 붕괴하고 나서 일본은 20년간 눈과 얼음에 갇힌 '겨울왕국'이었다. 이런 일본이 '아베노믹스'로 깨어난 듯했지만 최근 성장세를 보면 아베의 세 개 화살이 벌써 꺾인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한 단계 고비를 넘어선 일본이 다음 단계로 도약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무코야마 히데히코 일본종합연구소 상석주임연구원은 "지금까지의 아베노믹스는 70~80점 정도"라며 "디플레이션에 대한 불안감이 해소되고, 기업 업적, 고용도 좋아졌지만 이를 넘어 제2단계로 나아갈 있는 지에 대해선 아직 불안하다"고 말했다.
◇"절반의 성공… 너무 빨리 쏘아올린 네 번째 화살" =일본 경제전문가들은 아베노믹스의 첫 번째, 두 번째 화살에 대해선 여전히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엔저로 기업들의 수출 실적이 좋아지면서 숨통을 틔웠고 이에 따라 일본 주가도 상승했다. 정부는 버블 붕괴의 뼈아픈 경험 탓에 투자를 꺼리는 민간 대신 돈을 풀면서 경제를 뒷받침했다.
김은영 한국무역협회 도쿄지부장은 "아직 원하는 만큼은 아니지만 아베노믹스 이후 기업들이 지표상으로 매 분기 사상 최고의 이익을 냈고 고용도 확연히 늘었다"며 "전체적으로 기업하기 좋은 환경이 조성됐다"고 설명했다. 이미 '절반의 성공'은 거뒀다고 평하는 이유다.
다만 전문가들은 성장 전략인 세 번째 화살은 지금 당장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리처드 쿠 노무라종합연구소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세금을 내리고 규제를 완화하는 등의 구조 개혁 성과는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게 아니라 10년 후쯤 결과가 드러난다"고 설명했다.
아베가 세 번째 화살인 구조개혁에 동력을 달아야 할 시점에 이른바 '전쟁할 수 있는 나라'를 의미하는 안보입법 즉 '네 번째 화살'을 너무 빨리 쐈다는 지적도 많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올 들어 일본 중의원에서 처리된 경제개혁 입법은 13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30건에 크게 못 미친다. 그리고 19일, 마침내 아베는 네 번째 활시위를 당겼다. 안보 법안 통과를 강행한 것이다.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힘을 얻은 아베가 안보입법을 추진했는데, 오히려 이로 인해 추진력이 약화돼 경제가 다시 주저앉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각종 경제정책을 추진했는데, 리더십이 꺾이면서 경제정책들도 효과를 나타내지 못한다는 것.
무코야마 연구원은 "일본 경기가 회복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전반적인 성장세를 굳혔다고 판단하기는 좀 약하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4월 소비세(5%→8%) 인상으로 소비가 위축됐다. 또 엔저가 되긴 했지만 기대했던 만큼 수출은 늘지 않았다. 세계 경제 불안과 동시에 일본의 해외 생산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그는 특히 "경제에 힘을 더 쏟아 부어야 할 시기에 정부는 안보법안 강행 처리에 힘을 쏟았다"며 "이건 정부에서 도박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지금 필요한 건 구조개혁" =전문가들은 현재 일본과 일본을 닮아가는 한국에 가장 필요한 것은 구조개혁이라고 입을 모은다. 리처드 쿠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일본과 한국 모두 쫓는 나라에서 쫓기는 나라가 된 만큼 새로움을 추구하는 혁신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한국에, 한국은 중국에 쫓기는 형국이란 얘기다. 그는 "누군가 추격해 오면 더 빨리 뛰어나가는 방법 밖에 없다"며 "정부는 규제를 완화하고 세금을 낮추는 등 민간의 투자를 불러일으키는 리더십을 펼쳐야한다"고 주장했다.
이로 인해 민간이 새로운 제품, 디자인, 음악 등을 만들어 낼 수 있는 힘이 생긴다는 분석이다. 장상수 아시아대학교 특임교수는 "경제를 지탱하는 기업들이 지속적인 확대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환율이나 가격 변동에 흔들리지 않는 기술력과 새로운 가치 창조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무코야마 연구원은 특히 구조개혁의 키워드로 선택과 집중, 소통을 꼽았다. 그는 "성장가능성이 보이는 사업은 투자해서 키워내고 아닌 것은 과감히 도려내는 등 과감한 구조 개혁을 해야 한다"며 선택과 집중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와 동시에 구조개혁이 우리에게 왜 필요한지에 대해 충분히 인식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한국 국민들이 정부가 올해 추진하고 있는 4대 구조개혁이 정부 정책 중 어디에 위치한 건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는 건지 상세히 알지 못할 것"이라며 "정부가 앞으로 무엇을 목표로 달려가는지 국민에게 확실히 이해를 구해야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