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물가지수가 9개월 연속 0%대 상승에 머물고 있지만 올들어 체감물가는 되레 급등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주위를 보면 추석 차례상 장보기나 선물 사기가 두렵다는 의견들이 많다. 정부가 내수진작을 위해 이른바 코리아그랜드 세일을 진행하고, 각 부처 장차관들이 전통시장을 방문하는 것도 체감물가에 대한 우려가 반영된 행보로 읽힌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최근 전국 직장인 80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들이 올해 추석 물가상승률이 평균 2.7% 오른 것으로 인식했다고 밝힌 것이다. 이는 올해 상반기 평균 물가상승률(0.5%)을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국민들이 "0%대 소비자물가지수와 정반대로 체감물가는 연일 급등하는 것 같다"고 지적하는 것이 결코 허튼소리가 아닌 셈이다.
물가지표와 체감물가의 괴리현상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이는 소비자물가지수가 갖는 구조적인 한계 탓이라는 지적이다. 통계청이 발표하는 소비자물가지수는 481개 품목을 대상으로 산정된다. 지수산정시 각 품목에 일정한 가중치를 부여하는데. 가중치는 월평균 소비지출액에서 각 품목 소비지출액이 차지하는 비중을 근거로 정해진다. 가중치가 클수록 소비자물가에 더 많이 반영된다.
소비자물가지수에서 가중치가 가장 큰 품목은 전세값(62)이다. 스마트폰이용료(33.9), 휘발유(31.2), 월세(30.8), 도시가스(20.6) 등도 가중치가 가장 큰 5가지 품목에 포함된다.
최근 소비자물가지수가 낮은 이유도 이들 품목의 가격인상폭이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휘발유만 하더라도 최근 저유가의 영향을 받고 있다. 전세값은 2년에 한번 꼴로 내는 만큼 산식에는 반영되나 매일 소비하는 품목에 비해 체감도는 낮다.
소비자물가지수에서 가중치가 높은 20가지 품목 중에는 중학생 학원비(19.3)와 사립대 등록금(14.3), 고등학생 학원비(13.3), 초등학생 학원비(10.9) 등 4종류의 교육비도 포함된다. 하지만 웬만한 가정에서는 이들 4종류의 교육비를 모두 지출하지 않는다. 올해 초 담뱃값이 크게 올랐지만 소비자물가지수가 크게 요동치지 않은 것도 가중치의 영향이다. 담뱃값의 가중치는 7.7에 그친다.
밥상물가가 소비자물가지수에 차지하는 비중이 낮은 것도 체감물가와의 괴리를 키우는 요인이다. 소비자물가지수 가중치 상위 품목 중 밥상물가에 포함되는 것은 돼지고기(8.4) 정도다. 돼지고기의 가중치는 20번째로 높다.
8월 기준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74.2%의 가격변동을 보인 양파만 하더라도 전체 소비자물가지수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 양파는 31개 품목에 이르는 '채소 및 해조'에 포함되는데, 전체 '채소 및 해조'의 가중치는 17.9에 불과하다.
통계청 관계자는 "체감물가는 구매빈도나 시점외에 심리적 요인에 크게 좌우되는 경향이 있다"면서 "최근 소비자물가지수를 구성하는 품목과 가중치에대한 조정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생활물가를 잡을 수는 있을까. 이는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과거 물가안정이 경제정책의 주요 목표였던 시절에도 정부는 생활물가 만큼은 잡지를 못했다. 2008년 이명박 정부는 서민생활물가를 안정을 명분으로 서민생활과 밀접한 52개 품목을 지정했지만 집중관리품목이 소비자물가지수 보다 더 큰 폭으로 상승하면서 MB지수는 사실상 실패한 정책이 됐다. 최근 기획재정부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김관영 의원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MB지수에 포함시킨 52개 생활필수품중 최근 5년새(2010~2014년) 가격이 내려간 품목은 무와 배추, 파, 양파 등 9개 품목에 불과했다. 박근혜 정부들어 MB지수는 기억저편으로 사라졌다. 기재부는 2013년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면서 “품목별 물가관리를 폐지하고 민간의 시장감시 기능을 강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