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네번째로 큰 호수였던 아랄해가 말라버린 우즈베키스탄 북서부 우스튜르투 평원. 풀 한 포기 찾기 힘든 척박한 땅에서 ‘에너지전환 시대’ 중요성이 부각되는 천연가스를 우리 손으로 개발하고 있다. 이를 이용해 만든 제품들은 ‘메이드 바이 코리아(Made by Korea)’ 꼬리표를 달고 전세계 40개국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27일(현지시간) 만난 한국가스공사의 '수르길 프로젝트' 현장은 해외 자원개발 사업의 교과서였다. 현장건설, 가스 시추와 관리부터 이를 이용한 화합물 생산·판매, 프로젝트 시작을 위한 금융조달까지 한국 업체들의 숨결이 곳곳에 묻어있다.
◇천연가스 매년 30억㎥ 생산=수르길 가스전은 우즈베키스탄 수도 타슈켄트에서 1200㎞ 벗어난 북서부 도시 누쿠스에서 차를 타고 3시간 가량 300여㎞를 더 들어간 곳에 있다. 아랄해가 수십년 동안 말라붙으면서 드러난 가스전에서 메탄 천연가스와 에탄·부탄 등 고분자 물질인 콘덴세이트를 시추하는 곳이다.
가스를 생산하는 가스정(gas well)은 시추 설비의 모양에 빗대 이름지어진 일명 '크리스마스 트리'와 시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길 경우 안전하게 가스정을 화학물질로 봉쇄하는 '킬라인', 압력이 과할 경우 남는 가스를 태워버리는 '플레어' 등 3개의 설비가 한 세트로 이뤄져있었다.
시추가 진행중인 가스정들 인근에서는 신규 가스정 확보 작업이 한창이었다. 한 곳은 가스량을 확인하기 위해 플레어로 가스를 내보내며 10여m의 불길을 피워내고, 또 다른 곳은 가스가 존재하는 지하 1.5~3㎞까지 직경 139~400㎜의 파이프를 꽂기 위한 드릴링 작업이 진행중이었다.
총 면적 139㎢의 수르길 가스전 매장된 천연가스 부존량은 총 970억㎥. 93개의 가스정이 가스를 뽑아내고 있다. 한국인 중 현장에 홀로 근무하는 김종각 가스공사 과장은 "2039년까지 총 33개의 가스정을 더 뚫어 연간 30억㎥의 가스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천연가스가 고부가 폴리머로=93개의 가스정에서 모인 가스들은 6개의 포집설비에 모인 뒤 콘덴세이트, 물과의 분리 과정을 거쳐 108㎞ 떨어진 우스튜르트 가스·케미컬 복합 플랜트(UGCC)로 보내진다. 콘덴세이트 역시 별도의 파이프라인을 통해 UGCC로 나간다.
UGCC에서는 콘덴세이트에서 추출한 HDPE(고밀도폴리에틸렌)와 PP(폴리프로필렌)를 만들고 있었다. 수르길에서 배관을 타고 온 연간 8만톤의 콘덴세이트가 영하 100℃~영상 1000℃를 넘나들며 분리돼 가루 형태의 HDPE와 PP로 변했다. 콘덴세이트가 분리되는 설비에 난 조그마한 창문을 열자 얼굴을 데일 듯한 후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UGCC의 운영를 관리하는 윤창배 롯데케미칼 수석은 "여기서 만든 제품을 포장할 가마니 역시 공장에서 즉석 제조해 PE와 PP를 담는다"고 설명했다. 하루에 나가는 25kg 용량 포대만 6000여개로 매일 1500톤의 PE와 PP 등 폴리머 제품이 두 차례 기차에 실려 전세계 40개국으로 배달된다.
연간 30억㎥의 천연가스에 비해 PE와 PP의 원료가 되는 콘덴세이트의 양은 9% 수준이지만, 고부가가치 제품인 덕에 매출 비중은 일대일 수준이다. 국내 석유화학업체들이 나프타를 분해해 PE, PP를 제조하는 것과 달리, 수르길에서는 가스에서 직접 에탄, 부탄 등의 고분자 성분을 별도 추출하기 때문에 훨씬 높은 원가경쟁력을 갖출 수 있게 된 덕분이다.
◇한국형 자원개발패키지 '교과서'=수르길 프로젝트는 2006년 이슬람 카리모프 우즈벡 초대 대통령의 방한을 계기로 시작됐다. 총 투자비 36억달러(약 4조원)으로 한국가스공사(22.5%), 롯데케미컬(24.5%), GS E&R(3%)이 지분 참여했으며 우즈벡석유가스공사(UNG)가 50%의 지분을 보유한 조인트벤처 '우즈코 가스케미컬'이 사업을 총괄한다.
가스공사는 수르길 가스전이 위치한 상류부문의 가스 시추와 설비 유지보수, 현장 관리를 주로 담당하고, 석유화학 플랜트 경험이 풍부한 롯데케미컬은 하류의 UGCC를 담당하는 민관 패키지형태의 자원개발 사업의 성공 사례를 세웠다.
특히 투자금 회수 위험성이 큰 구소련국가, 중앙아시아 지역에 한국 업체들이 처음 진출해 만든 수르길 프로젝트의 금융 조달까지 수출입은행, 무역보험공사 등 국내 공공금융기관이 대부분 맡았다. 이 밖에도 중국 및 유럽계 은행들의 소규모 투자를 유치해 공정한 감시가 이뤄지도록 했다.
건설 과정에서는 현대엔지니어링, 삼성엔지니어링, GS건설이 공사를 일괄 수행하는 EPC 역할을 맡아 국내 중소기업 100여곳과 함께 참여했다. 이곳에서 만들어진 제품의 90%를 롯데케미칼과 삼성물산이 판매를 맡는다. 그야말로 한국의 자원영토라고 할 수 있다.
우즈코는 본격 생산에 들어간 지난해 성과를 바탕으로 지난 25일 첫 배당을 실시하기도 했다. 가스공사는 약 2500만달러(약 280억원)의 수익을 얻었다. 가스공사는 향후 25년간 매년 약 600억원의 수익을 실현할 수 있을 전망이다.
이영태 우즈코 부사장은 "수르길 프로젝트는 우즈벡 건국 이래 최대 규모이자 최초의 PF 방식 프로젝트"라며 "수르길의 성공은 '자원의 보고' 중앙아시아에서 가스공사가 확고한 기반을 확보하게 만들 것"이라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