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발생한 외환위기는 이름 그대로 우리나라가 보유한 외환이 바닥나면서 일어났다. 한보철강을 시작으로 부실 기업들이 줄줄이 파산했고 한국 경제가 신뢰를 잃자 외국인들은 앞다퉈 자금을 빼냈다. 주가가 폭락하고 원/달러 환율은 2000원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계속된 경상수지 적자와 기업 도산에 국가의 비상금과 다름 없는 외환보유액은 200억달러를 밑도는 수준까지 고갈됐다. 그해 11월21일 한국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해야 했다.
어렵게 IMF 구제금융을 졸업하고 뼈 아픈 교훈을 얻은 정부는 20년간 경제 체질을 강화하고 대외건전성을 개선하는 데 주력했다. 그 결과 올해 1월말 기준 외환보유액은 3957억5000만달러로 사상 첫 4000억달러 돌파를 눈 앞에 두고 있다. 지난해말 기준으로 전 세계 9위 수준이다. 지난해 경상수지 흑자액은 784억6000만달러로 20년 연속 흑자 기록을 이어가는 중이다. 지난해말 기준 한국의 순대외채권은 4567억달러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우리나라가 외국에서 받을 돈이 외국에 갚아야 할 돈보다 4567억달러나 많다는 뜻이다.
최근 원/달러 환율은 1070~1080원대에서 안정적 흐름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1200원을 넘었으나 1100원선 아래로 떨어진지 오래다. 국내 경기 회복세와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기대에 원화 가치가 오른 결과다. 오히려 원화 강세로 수출 기업들의 가격 경쟁력 악화를 우려해야 할 상황이 됐다.
이에 더해 외환당국은 주요국들과 통화스와프 계약을 확대하면서 위기 시에 활용할 수 있는 이중, 삼중의 외화 안전판을 더해가고 있다. 지난해 10월 중국과의 통화스와프 연장에 성공한 데 이어 11월 캐나다, 올해 2월 스위스 등 기축통화국과의 통화스와프 협정을 새로 체결했다. 2015년 종료된 일본과의 통화스와프 재계약에 대한 기대감도 커진 상황이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지난달 추가 통화스와프 계약 성사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일본이 아무래도 관심사"라며 "지금은 여건이 좋지 않지만 자연스럽게 시간이 경과하면 통화스와프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경제의 대외건전성과 외환방어막은 강화됐으나 전문가들은 마음을 놓고 있을 수는 없다고 입을 모은다. 무엇보다도 이달 11년 만에 한·미 금리가 역전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우려되는 대목이다. 한·미 금리역전은 비기축통화국인 우리 경제에는 부담스러운 요인이다. 단기 투자자금 유출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주열 총재는 양호한 대외건전성을 이유로 "한·미 금리가 역전이 된다 하더라도 당분간은 외국인 증권자금이 대규모로 유출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한·미 금리 역전은 최근 11년 간 '가보지 않은 길'인 만큼 변동성이 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미 금리 역전 상태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한국 경제의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인식이 퍼지면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 순간에 빠져나가며 위기가 증폭될 가능성이 있다"며 "충격을 줄이기 위해선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금융시장이 안정적이고 믿을 만하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