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은행의 자율성, 독립성을 지켜야 하지만 일부에서 협조해야 가능하다. 책임 있는 분의 발언도 정말 신중하실 필요가 있다.”
지난 21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의 연임을 결정하는 인사청문회에서 이 총재가 한 말이다. ‘일부’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지만 전 정권과 현 정권 모두를 겨냥한 것이란 시각이 대체적이다. 즉 최경환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척하면 척’이라고 언급한 것, 지난해 김현철 청와대 경제보좌관이 ‘기준금리 수준이 낮다’는 취지의 인터뷰를 한 것을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정부의 정책에 과도하게 맞춰 통화정책을 한다는 지적에 이 총재는 “정치적 고려에 따른 정부 통화정책 주문은 없을 것으로 기대한다”고도 했다. 재정지출을 늘리기보다 통화정책으로 대응한 박근혜정부의 정책 기조에 부합한 의사결정을 했다는 세간의 평가를 의식한 모습으로 비쳤다.
‘매파’(통화긴축 선호)로 분류되는 이 총재는 2014년 4월 취임한 직후인 8월부터 5년간 다섯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내렸다. 기준금리가 역대 최저인 1.25%까지 낮아지자 매의 본능은 사라지고 ‘비둘기’가 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저금리와 그에 따른 가계부채 증가, 부동산 급등에 대한 책임론도 비등했다.
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 등 대형 악재가 계속 터지면서 경기회복을 지원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게 이총재의 변이었지만 그럼에도 지난 정부의 금리인하 압박에 굴복했다는 잔상은 오래 남았다. 그 때문에 차기 총재 후보군에서 이 총재는 가장 가능성이 낮은 인물이었다. 외부 인사들이 줄곧 하마평에 올랐고 44년 동안 연임한 사례도 없어 그가 다시 낙점받을 것이라 여기는 이도 많지 않았다.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대통령이 내세운 7대 인사원칙에 딱 맞는 이가 없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무성한 가운데 청와대는 이 총재를 고른 배경에 대해 “통화정책의 연속성을 중시한 인사”라고 밝혔다. 속사정이야 어떻든 이 총재는 정권을 달리 하며 ‘두 번 선택받은 사람’이 됐다. 외견상 중앙은행의 독립성과 통화정책의 중립성도 존중받은 모양새다. 그런 만큼 소신 있게 정책을 펼 수 있는 여지도 더 있어 보인다.
그의 앞엔 1450조원을 넘는 가계부채, 역전된 한미간 금리 등과 같은 비우호적인 환경이 펼쳐져 있다. 또 외부에서 보는 시각과 또 다르게 한은 노조가 내부직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통화정책에 대해선 긍정적인 반응이 더 많았지만 연임이나 내부경영엔 부정적 의견이 더 컸다. 정책 결정자로서 뿐만 아니라 조직의 리더로서 진일보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 셈이다. 다시 출발선에 선 이 총재의 임기 2기는 1기보다 나아야 하고 그것이 곧 한은의 역할과 위상을 높이는 길이고, 국민을 위하는 길이다. 건승을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