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다시 출발선에 선 이주열 총재

구경민 기자
2018.03.28 04:45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들이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중앙은행의 자율성, 독립성을 지켜야 하지만 일부에서 협조해야 가능하다. 책임 있는 분의 발언도 정말 신중하실 필요가 있다.”

지난 21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의 연임을 결정하는 인사청문회에서 이 총재가 한 말이다. ‘일부’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지만 전 정권과 현 정권 모두를 겨냥한 것이란 시각이 대체적이다. 즉 최경환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척하면 척’이라고 언급한 것, 지난해 김현철 청와대 경제보좌관이 ‘기준금리 수준이 낮다’는 취지의 인터뷰를 한 것을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정부의 정책에 과도하게 맞춰 통화정책을 한다는 지적에 이 총재는 “정치적 고려에 따른 정부 통화정책 주문은 없을 것으로 기대한다”고도 했다. 재정지출을 늘리기보다 통화정책으로 대응한 박근혜정부의 정책 기조에 부합한 의사결정을 했다는 세간의 평가를 의식한 모습으로 비쳤다.

‘매파’(통화긴축 선호)로 분류되는 이 총재는 2014년 4월 취임한 직후인 8월부터 5년간 다섯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내렸다. 기준금리가 역대 최저인 1.25%까지 낮아지자 매의 본능은 사라지고 ‘비둘기’가 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저금리와 그에 따른 가계부채 증가, 부동산 급등에 대한 책임론도 비등했다.

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 등 대형 악재가 계속 터지면서 경기회복을 지원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게 이총재의 변이었지만 그럼에도 지난 정부의 금리인하 압박에 굴복했다는 잔상은 오래 남았다. 그 때문에 차기 총재 후보군에서 이 총재는 가장 가능성이 낮은 인물이었다. 외부 인사들이 줄곧 하마평에 올랐고 44년 동안 연임한 사례도 없어 그가 다시 낙점받을 것이라 여기는 이도 많지 않았다.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대통령이 내세운 7대 인사원칙에 딱 맞는 이가 없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무성한 가운데 청와대는 이 총재를 고른 배경에 대해 “통화정책의 연속성을 중시한 인사”라고 밝혔다. 속사정이야 어떻든 이 총재는 정권을 달리 하며 ‘두 번 선택받은 사람’이 됐다. 외견상 중앙은행의 독립성과 통화정책의 중립성도 존중받은 모양새다. 그런 만큼 소신 있게 정책을 펼 수 있는 여지도 더 있어 보인다.

그의 앞엔 1450조원을 넘는 가계부채, 역전된 한미간 금리 등과 같은 비우호적인 환경이 펼쳐져 있다. 또 외부에서 보는 시각과 또 다르게 한은 노조가 내부직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통화정책에 대해선 긍정적인 반응이 더 많았지만 연임이나 내부경영엔 부정적 의견이 더 컸다. 정책 결정자로서 뿐만 아니라 조직의 리더로서 진일보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 셈이다. 다시 출발선에 선 이 총재의 임기 2기는 1기보다 나아야 하고 그것이 곧 한은의 역할과 위상을 높이는 길이고, 국민을 위하는 길이다. 건승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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