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민이 방사능시설 수용한 까닭은[이지경제]

세종=안재용 기자
2020.07.27 05:00

한달간 숙의과정 정보 비대칭성 줄여…지역적 특성·낙관적 편향도

(경주=뉴스1) 최창호 기자 = 김소영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맥스터) 재검토위원장이 24일 오전 주민의견수렴 발표장인 경북 경주시감포복지회관에서 경주와 울산지역 맥스터 증설 반대단체의 항의를 받고 있다. 재검토위는 이날 오전 10시에 주민의견수렴결과를 발표할 예정이었지만 반대단체의 강한 반발에 막히면서 서류로 대신했다. 주민의견수렴 결과 찬성 81.4%, 반대11%, 모르겠다 7.6%로 나타났다. 2020.7,25/뉴스1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맥스터) 착공시한이 임박해 가동중단 위기에 몰린 월성 원자력발전소를 지켜본 경주시민들이 한 달간 숙의해 증설을 허락했다.

시민들이 공론화 과정을 거치며 전문지식을 얻은 이후에 지역 및 개인주의적 판단을 보류하고 국가 장래를 염두에 둔 대승적 판단을 내린 것으로 평가된다.

흥미로운 사실은 정부가 정책적 소통 노력을 공론화하는 과정에서 관련 논의에 무조건 반대를 하던 시민들까지도 증설 찬성의견으로 돌아섰다는 사실이다. 이에 반해 월성 원전을 멈출 수도 있었던 환경론자들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떼법이나 환경보호를 빙자한 과도한 주장은 공론화를 통해 충분히 타협될 수 있다는 좋은 선례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실제 '모르겠다'에서 '찬성'으로 돌아선 사람이 '반대'로 의견을 바꾼 사람보다 2~3차 조사결과 모두 더 많았다.

26일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이하 재검토위)에 따르면 약 한 달 간 숙의 과정을 거친 결과 주민 81.4%(118명)가 월성 원자력발전소 내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맥스터) 증설에 대해 찬성의견을 밝혔다. 반대는 11%(16명), 모르겠다는 7.6%(11명)를 기록했다.

숙의 학습 후 크게 높아진 찬성비율, '모르겠다→찬성' 70.8%
(경주=뉴스1) 최창호 기자 = 24일 오후 경북 경주시 감포읍 감포복지회관 앞 도로에서 한국수력원자력(주)월성원자력본부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맥스터)증설을 반대하는 시민이 김소영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맥스터) 재검토위원장이 탄 승용차를 막아서자 경찰이 이를 제지하고 있다.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맥스터) 재검토위원회는 이날 주민의견수렴결과를 발표할 예정이었지만 반대단체의 반발에 무산돼 서류로 대신했다. 주민의견수렴 결과 찬성 81.4%, 반대11%, 모르겠다 7.6%로 나타났다. 2020.7,25/뉴스1

지난 6월27일 시행된 1차 조사결과 전체 145명 중 찬성 85명, 반대 12명, 모르겠다 48명을 기록했다. 조사대상 중 41.4%가 맥스터 증설에 반대하거나 판단을 미뤘다. 이 결과가 끝까지 유지됐다면 재검토위가 어느 한 편의 손을 들어주긴 어려웠다. 찬성의견이 다수지만 40%가 넘는 사람들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첫 숙의학습 기간 3주를 지나며 상황은 반전됐다. 1차 응답에서 모르겠다는 의견을 밝힌 48명 중 34명은 2차 조사에서 맥스터 증설에 찬성했다. 4명은 반대로 의견을 바꿨고, 10명은 모르겠다는 응답을 유지했다. 처음에 의견을 밝히지 않은 사람 중 70.8%가 찬성측 손을 들어줬다. 2차 조사에서 전체 찬성 비율은 80%를 기록했고, 최종조사 때까지 큰 변동 없이 유지됐다.

정보비대칭 없앤 공론화, 경주시민들은 '레몬'을 버렸다
월성본부 맥스터/사진=한수원

잘 모르기 때문에 더 심하게 싸우는 경우가 있다. 의견대립이 첨예한 사건을 자세히 살펴보면 찬반 양측이 서로 다른 근거에 기초해 논의 자체가 무의미한 경우가 종종 나타난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정보의 비대칭' 상황이다. 정보 비대칭성이 클 때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불리한 역선택(레몬)을 하기도 한다. 특히 월성 맥스터처럼 전문가와 비전문가간 정보격차가 큰 경우 비일비재하게 나타난다.

이번 공론화 과정은 주민과 전문가간 정보격차를 줄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원자력발전 관련 배경지식과 맥스터에 대한 이해도를 조사한 결과 숙의 학습을 거칠수록 정답률이 높아졌다. 1차 조사에서 45.5%에 불과했던 임시저장방식 관련 정답률은 3차 조사에서 86.9%로 상승했다. 적어도 '노천에 사용후핵연료를 방치한다'는 루머에 휘둘리지는 않게 됐다는 뜻이다.

환경론자들은 왜 경주시민 마음을 흔들지 못했을까
원자력환경공단이 운영하는 경주 방폐장 운영동굴과 건설동굴 입구./사진=원자력환경공단

월성 맥스터 증설에 반대하는 환경론자들이 지역주민을 설득하지 못한 이유는 우선 경주지역이 수십년간 원전과 함께했다는 특수성 때문으로 보인다. 경주는 이미 월성 원전이 착공된 1976년부터 44년간 원자력을 바로 옆에서 경험한 지역이다. 지난 2015년부터는 원전보다 민감한 방사능 폐기물 처분장이 운영됐다. 주민 수용성이 높아 반대보다는 찬성의견을 이끌어내기 유리한 곳이란 뜻이다.

지진 등으로 맥스터에 저장된 폐기물이 유출될 수 있다는 위험성을 강조한 전략도 성공적이지 못했다. 일단 누출 확률이 매우 낮다. 이와는 별개로 낙관적 편향도 작동했을 수 있다. 낙관적 편향이란 자신의 미래에 비현실적으로 희망적 견해를 갖는 현상을 말한다. 예컨대 한국경제 미래가 어두울 거라고 우려하는 구직자들도 본인 취업 가능성은 높게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월성 원전 인근 주민들도 지진 등에 따른 유출 위험성을 상대적으로 낮게 봤을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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