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기기관차, 수세식 화장실, 재봉틀, 고무타이어, 전화, 엘리베이터, 이동 보도, 엑스레이(X-ray), 아이스크림, 전자계산기, 텔레비전, 에펠탑, 회전관람차, 자유의 여신상, 피카소의 '게르니카', 아이맥스 영화…
모두 월드엑스포를 통해 세상에 첫 선을 보인 것들이다. 1851년 영국 런던 하이드파크 수정궁(Crystal Palace)에서 열린 만국 산업생산물 대박람회(런던엑스포)를 시작으로 올 10월 열리는 두바이월드엑스포까지 170년간 이어진 엑스포의 역사는 말 그대로 인류문명 발달사를 대변한다. 당대의 최고 기술력을 뽑내는 자리였던 만큼 관람자들에게 상상 이상의 충격을 선사했다.
1회 런던엑스포의 메인 전시관이었던 수정궁만해도 철근, 유리, 목재만으로 가로 563m, 세로 124m 규모의 거대한 온실형태의 거대한 건축물로, 기계문명의 결정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전시물의 면면도 화려했다. 거대 기중기, 기관차, 선박용 증기엔진, 콜트사 권총, 굿이어 타이어 등 첨단 제품은 물론 대형터널 및 다리 모형 등을 처음으로 전세계인들에게 선보였다.
이후 월드엑스포는 새로운 기술과 과학기술의 전시 및 교류의 장으로 역사를 이어왔다. 1876년 미국 필라델피아 엑스포에서는 전화기와 재봉틀이 첫선을 보였고, 1878년 프랑스 파리 엑스포는 축음기의 시제품을 소개했다. 자동차는 1885년 벨기에 안트베르펜 엑스포에서 처음 소개됐다. 1915년 샌프란시스코 엑스포에서는 에디슨이 샌프란시스코에서 동부 뉴저지 주 자신의 집까지 미국 대륙을 잇는 장거리 전화를 최초로 시연하기도 했다. 1933년 시카고 엑스포에서는 코카콜라사가 세계 최초의 자판기를 내놨으며 1970년 동아시아 최초로 열린 일본 오사카 월드엑스포에선 '아이맥스' 기술을 세상에 처음 소개했다.
월드엑스포는 당대 최대의 메가 이벤트였다. 심지어 초기엔 올림픽조차도 월드엑스포의 부대행사에 불과했다. 제2회 올림픽은 1900년 파리세계박람회 기간에 열렸다. 세계박람회에 쏠린 관심을 토대로 올림픽의 흥행력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재정지원도 엑스포 주관기관으로부터 받았다.
한국과 월드엑스포의 인연은 13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883년 5월. 당시 조선은 민영익 홍영식 유길준 등을 외교사절단 '보빙사'로 서방 국가(미국)에 첫 파견했다. 당시 보빙사는 보스턴 박람회를 참관했는데, 이는 우정국 신설, 경복궁의 전기시설 및 목축 시험장 설치 등 서양 문물이식의 중요한 계기가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후 조선은 1893년 미국의 시카고에서 열린 월드박람회에 당시 조선의 국호로 처음 공식 참가했다. 참가단장 정경원은 사무원, 통역원, 장예원 소속 국악사 10명을 이끌고 조선 전시실을 꾸몄다. 작은 규모였지만 도자기, 모시옷, 부채, 갑옷 등 이국적 풍모에 관심을 끌었고 개막식 날 전시실 앞에서 단아한 조선 아악을 연주했다.
시카고엑스포의 성공적 참가에 자신감을 얻어 1900년 파리엑스포에도 참가했다. 320㎡ 규모의 전시장을 만들어 관복, 나전칠기, 머리띠, 부채, 담뱃대, 병풍, 생강 분쇄기 등 특산품을 소개하는 한편 불경, 삼국사기, 팔만대장경 등의 목판 인쇄물도 전시했다.
이후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등을 거치면서 월드엑스포와의 인연이 잠시 끊겼지만 1962년 시애틀박람회에 다시금 모습을 드러냈다. 자력으로 326㎡ 규모의 전시장을 만들었고 재봉틀·라디오·타이어·철물제품· 고무신·치약 등 공산품과 왕골·죽·유기제품·도자기류 등 전통 공예품 1608점을 전시했다. 한국은 이후 열린 BIE 공인 엑스포에 빠짐없이 참가했다. 1967년 몬트리올박람회에서는 한옥의 처마와 단청 등을 현대식 건물에 접목시킨 장방형 목재 전시관을 선보였다.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 고 김수근의 작품이다.
월드엑스포에 참가한지 100년째 되는 해인 1993년 한국은 대전엑스포를 개최했다. 월드엑스포는 5년 주기로 열리는 등록박람회와 그 사이에 한 번씩 열리는 인정박람회로 나뉘는데, 등록박람회가 더 큰 규모다. 대전엑스포는 형식상으로는 등록박람회보다 규모가 작은 인정 박람회였지만 한국이 국력을 집중해 성대하게 치른 세계수준의 박람회였다. 108개 국, 33개 국제기구가 참가했고 관람객만 1400만명이 다녀갈 정도로 흥행에도 성공했다. 자기부상열차, 태양열자동차 등의 첨단기술이 소개됐고 다양하 문화행사도 펼쳐졌다. 한국인의 뇌리에 엑스포 하면 '대전엑스포'가 생각날 정도로 한국에 있어 의미가 깊은 행사였다.
2012년엔 해양과 환경 문제를 주제한 인정박람회 여수엑스포도 성공적으로 치러냈다. 엑스포를 계기로 도로, 철도, 항만 건설과 익산-순천 전라선을 복선 전철화한 KTX 개통 등 기간 교통망과 기타 기반시설 확충을 통해 생태산업, 항만물류, 해양레저 거점으로 발돋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