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나 온라인 플랫폼 영향으로 콘텐츠 시장은 이미 시공간을 뛰어 넘어 전 세계와 연결돼 있어요. 콘텐츠 한류가 지속되려면 결국 전 세계인의 취향에 맞는 양질의 한국산 콘텐츠를 지속 공급해야 하는 게 관건이죠. 그러려면 앞으로 열릴 시장의 가능성을 먼저 보고 우리 콘텐츠 기업들이 걱정 없이 새로운 실험을 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3년 전 글로벌 영화계를 뒤흔든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알린 프랑스 칸에서 지난 8일 또 다른 한류 낭보가 전해졌다. 세계 최대 방송영상콘텐츠마켓 '밉티비(MIPTV)'에서 북미·유럽 미디어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대상을 한국인이 받으면서다. 인기 예능프로그램 '복면가왕' 포맷으로 전세계 53개국 방송가를 장악한 박원우 디턴 대표의 이름이 호명되자 잘 나가는 글로벌 콘텐츠 종사자들이 엄지를 치켜세웠다.
무대에 오른 박 대표는 "대한민국의 창의성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 한국콘텐츠진흥원(이하 콘진원)에게 감사한다"는 소감을 건넸다. 국내 방송에도 수년간 오르지 못하고 표류하던 포맷 IP(지식재산)가 미디어시장의 꽃인 미국으로 건너가 시청률 1위라는 쾌거를 올릴 수 있도록 해외진출의 가교 역할을 한 게 콘진원이기 때문이다.
이날 수상 소식을 접한 조현래 콘진원장은 제2의 복면가왕을 찾기 위한 구상을 그리고 있었다. 글로벌 주류문화로 자리잡은 한류를 단편적인 유행에 그치지 않고 한국경제의 새로운 먹거리로 만드려면 방송·영화·음악·게임·만화 등 문화콘텐츠산업 곳곳의 숨은 보석같은 기업을 발굴해 세계에 알려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조 원장은 지속가능한 한류를 위해선 여러 콘텐츠 기업과 종사자들이 돈이나 사람 걱정 없이 자유롭게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갓 태어난 콘텐츠 스타트업이 대기업과도 협업하고 해외 유수 바이어와도 명함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분주히 움직이는 이유다. 이날 서울 청계천 콘텐츠코리아랩(CKL) 기업지원센터에서 그를 만나 K콘텐츠 진흥 로드맵을 들어봤다.
-한류 콘텐츠가 글로벌 라이프스타일로 자리 잡았다. 우리 콘텐츠가 성공가도를 달리는 이유와 가장 큰 성과를 꼽자면.
▶BTS(음악), 기생충(영화), 오징어게임(드라마), 배틀그라운드(게임), 핑크퐁(캐릭터) 등 다양한 장르의 K콘텐츠와 기업들이 성과를 보이고 있다. 결국 콘텐츠는 사람의 감정에 바탕을 둔 경험재인데, K콘텐츠는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가치와 메시지를 전달하며 전 세계인의 수요에 맞추고 있다고 생각한다.
역사를 기원전(BC)와 기원후(AD)로 나누듯, 콘텐츠산업도 지난해 커다란 성과를 낸 오징어게임의 등장 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한국 콘텐츠도 세계시장에서도 충분히 통한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성과가 크다. 미지의 영역이었던 시장까지 새롭게 개척할 수 있구나란 생각이 업계에 퍼지고 있고 업체의 시장 파이도 달라진 게 고무적이다.
-콘텐츠 무한경쟁 시대에 콘진원의 역할은.
▶정부가 정책, 업계가 현장을 담당한다면 콘진원은 중간에서 업계의 아이디어를 신사업 아이템으로 만들어 정부 예산을 통해 활성화하는 가교로 봐야한다. 민간이 시도하기엔 시장이 열려있지 않고, 성공을 보장할 수 없는 리스크가 큰 사업이 가능성이 있다면 공적 영역이 기술·인력·인프라 지원으로 키우는 것이다.
단적으로 과거에 방송포맷은 해외에서 잘 나가는 포맷을 헐값에 사오는 게 전부였지만, 콘진원이 IP사업을 중요하게 보고 관련 지원사업을 펼치며 복면가왕 같은 해외에서 베껴 가는 포맷이 나왔다. 지금은 방송사나 콘텐츠기업들이 서로 창의적인 포맷을 개발하기 위해 달려들고 있고, 새로운 시장과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있다.
-실제로 콘진원의 가교 역할이 시장을 개척한 사례가 있나.
▶최근 공개된 '광화시대'로 대표되는 실감콘텐츠 분야가 대표적이다. 광화시대는 초기 단계인 실감콘텐츠 산업에 정부가 선도적으로 투자해 국내 관련 기업들이 새로운 기술을 실험할 수 있는 장으로, 일반 국민들도 새로운 콘텐츠 장르를 알아가고 향유하면서 여러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신생 기업이 지기 어려운 위험부담을 정부가 감수해 새로운 시장을 연 것인데, 미국 뉴욕에 거대한 폭포 디지털 아트로 세계적인 기업이 된 디스트릭트 같은 기업들이 기회를 얻고 성장하는 계기가 됐다.
- 차기 정부에서도 K컬쳐 토대가 되는 콘텐츠산업 진흥 구상을 밝혔다. 이에 맞춘 정책 구상은.
▶앞으로 콘텐츠 업계 지원을 '투트랙'으로 구현하려 한다. 콘텐츠는 제품에 하자가 있어도 싸게 팔 수 있는 제조업과 달리 문화적 가치나 통·번역, 유통 등 조금만 흠집이 있으면 소비되지 않는 구조다. 다시 말해 완성도 높은 콘텐츠를 끊임없이 제공해야 하는 건데, 그러려면 사정이 열악한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기조를 유지하면서 경쟁력 있는 업체도 과감히 지원하고 대기업과도 협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콘텐츠산업 수준 전반을 끌어올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영화부터 음악, 만화까지 콘텐츠업계에 필요한 것은 결국 돈이다. 정부지원 뿐 아니라 민간과 연결해 투자처를 발굴하고 자금 걱정을 덜 수 있도록 본부 정책금융팀을 콘텐츠금융지원단으로 확대했다. 오징어게임의 경우 콘진원이 운영하는 '스튜디오큐브'에서 촬영했는데, 이처럼 인프라 측면에서도 대규모 첨단 촬영시설과 각종 테스트베드, 입주시설 지원 등을 펼칠 계획이다.
-결국 콘텐츠 분야에 대한 '과감한 투자'를 위해선 관련 예산 확대가 중요하다.
▶콘진원 한 해 예산이 R&D(연구개발) 예산 1320억원을 포함해 5400억원 규모로 작진 않지만 한국 콘텐츠 장르를 모두 아울러 R&D·투자·제작·마케팅·유통까지 모든 단계를 지원하기엔 모자란 감이 있다. 넷플릭스만 해도 영화와 드라마에만 국내 시장에 8000억원을 투입할 정도다. 해외진출에 있어서도 기업이 떠안기 어려운 리스크를 공적 기관에서 감당하고, 해외 소비자와의 접점을 늘리기 위해 콘텐츠 엑스포를 진행하거나 직접 정부 차원에서 콘텐츠를 사서 해외에 알리는 식의 시도도 필요한데 이것 역시 모두 돈의 문제로 귀결된다. 이를 위해 예산 측면에서도 과감한 편성이 필요하다고 요청할 계획이다.
-지속가능한 콘텐츠 한류를 위한 진흥원의 과제와 목표가 있다면.
▶코로나19로 인한 거리두기의 끝이 보이는 시점에서 한국 콘텐츠에 기회가 왔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란 말처럼 그걸 놓치면 안된다. 각 장르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콘텐츠 종사자들이 많은데, 이들에게 기회가 돌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선 현장과 정책을 이어주는 콘진원 구성원들의 역량이 커져야 한다. 유연한 사고로 콘텐츠 산업을 큰 틀에서 바라볼 수 있고, 개별 업계가 가려워하는 부분을 긁어줄 수 있도록 교육과 체험의 기회를 늘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