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유럽계 화학기업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원화 기준 200억원 규모의 투자를 검토 중입니다. 이런 외국계 기업이 아시아 지역에서 투자를 할 만한 곳은 한국과 싱가포르, 대만 정도입니다. 이 기업도 우리나라와 싱가포르를 놓고 저울질 중인데, 현금 지원 등 싱가포르 쪽의 조건이 좀 더 좋은지 한국에 대한 투자를 주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국내 투자를 망설이는 한 외국 기업의 사례를 전하는 장상현 인베스트코리아(IK) 대표의 표정에선 아쉬움이 묻어났다. 2019년 외국인투자 법인세 감면 제도가 중단된 이후 외국인투자 인센티브가 현금지원 위주로 개편됐는데 그 지원 분야가 제한적이고, 고용, 신증설 요건 등 지원 조건이 까다로워 외국 기업 유치 경쟁에서 앞서기 쉽지 않다는 얘기다.
현재 우리나라의 외국인 투자기업은 1만4000여개로 전체 기업의 2%에도 못 미치지만 고용은 전체의 5% 이상, 수출은 전체의 약 18%를 담당한다. 외국 기업 하나를 유치했을 때 경제적 효과는 대부분의 국내 기업과는 비교가 안 된다. 최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강조한 해외에서 국내로의 유턴기업 유도와 함께 대규모 해외투자 유치를 위한 전향적인 정책 지원이 필요한 이유다.
코트라(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산하 국가 투자유치 전담기구의 수장으로서 외국 기업들을 국내로 끌어들이기 위해 전 세계를 누비고 있는 장 대표를 22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IK 본사에서 만났다.
다음은 장상현 대표와의 일문일답.
-IK의 역할에 대해 소개한다면
▶IK는 1998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극복을 위한 외환 확보를 목표로 설립된 국가투자유치 전담 기구로, 혁신 글로벌 기업의 투자유치를 통해 경제발전을 이끌고 있다.
2020년 기준으로 국가 전체 기업수의 1.8%(1만4696개)인 외국인투자기업(외투기업)이 국가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살펴보면 △매출 10.9% △고용 5.4% △수출은 17.9%로 집계됐다. 즉 기업수에 비해 국가 경제에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얘기다. 우리 걸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국가 발전을 위해선 외투 기업의 역할이 중요하다. 우리나라가 IMF 관리체제를 가장 빨리 졸업한 것에도 외투기업에 대한 투자 환경 변화와 그로 인한 투자 확대의 덕이 컸다.
공급망 안정화, 탄소중립 실현 등 글로벌 현안 대응을 위해서는 우리 산업 역량을 강화해야 하는데, 우리 기업만으로는 모든 분야에 대한 대응은 불가능하다. 전체 산업 중 우리 기업이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는 투자유치 등을 통해 글로벌 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대응해야 한다.
-국내 투자유치 전담기구이면서도 국내 기업의 해외투자 역시 돕고 있는데
▶ 해외 진출하려는 기업이 있으면 지역 정보 등 도움을 주고 있다. M&A(인수합병)를 예로 들면 내연에서 전기차로 전환하려는 자동차 기업이 기술을 개발해 따라가려면 수년이 걸린다. 최근 그런 측면에서 이스라엘이 주목받는데 배터리나 자율주행, AI(인공지능) 등 기술을 보유한 기업을 인수하는 게 가장 빠른 방법이다. 이런 기술 격차를 줄이는 수단으로서 M&A 등을 위한 해외 투자 정보 지원을 비롯한 도움을 주고 있다.
-요즘 외국 기업들이 한국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지 궁금하다.
▶ 우선 교육수준이 높다고 한다. 한 외투기업 대표는 "내 비서까지 MBA(경영전문대학원)를 졸업했다"고 할 정도다. 일을 잘하는 것은 대부분 외투기업이 공통적으로 느끼고 있고, 업무가 신속한 게 굉장한 장점이다. 해외 IR(투자홍보)을 가면 "한국의 국제전화 국가번호가 82인데, 한국말로 '빨리'와 비슷하다"고 농담을 하기도 한다. 이밖에 세계 최고수준의 IT(정보기술) 인프라와 전자산업 역량, 의료 바이오 산업역량 등도 강점이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에서 강대국으로 들어서려면 플러스 알파(α) 요소가 필요한데 최근 그런 게 나타나고 있다. 2020년 코로나19(COVID-19) 대유행 초기 K-방역이 주목받았고, 최근 몇년 사이 BTS(방탄소년단)과 '오징어게임' 같은 문화 콘텐츠가 알파 요소가 됐다. 과거 한국이라고 하면 "노스(북한)? 사우스(남한)?"이라고 물었는데 지금은 어딘지 모두가 알고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등이 어느나라 기업인지 모르는 사람이 없다. 최근에 IR에서 기념품으로 (오징어게임에 나온) 달고나 세트를 줬더니 너무 반응이 좋았다. 예전이라면 생각하기 어려운 일 아닌가.
- 외국 기업들이 국내에 투자함에 있어 불만을 갖는 부분이 있다면
▶우선 투자와 함께 들어오는 외국인들의 한국에서의 생활이 수월해야 한다. 국내에서 생활하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이전에 비해 영어도 잘 통하는 등 한국 생활이 좋아졌다고 말하는데, 대부분 서울 등 수도권을 얘기하는 것이다.
문제는 지방이다. 서울 등 수도권 지역을 벗어나면 상대적으로 정주 여건에서 부족함이 생긴다. 대표적인 게 교육이다. 국내 투자기업에서 일하는 외국인의 주된 연령대가 자녀들과 함께 들어오는 나이이다 보니 이들의 커뮤니티(공동체)도 학교를 중심으로 형성된다. 지역균형 발전 차원에서도 외국인 학교와 같은 인프라가 지방에서도 확충·개선될 필요가 있다.
또 일부 신규 진출기업은 인력수급에 애로를 호소하고 있다. 사업장 개설 즉시 성과를 내야하는 외투기업은 당장 실무에 투입가능한 인력 채용을 희망하는데 반도체, 바이오 분야 등의 기업은 관련 분야 대졸자를 채용해도 1년 이상의 전문 분야 재교육이 필요하다. IK는 외투기업의 인력수급의 부조화를 최소화하기 위해 고용실태조사를 통해 외투기업의 수요를 파악하고 이를 서울대, 단국대 등 디지털혁신 공유대학 분야별 주관 대학에 전달할 계획이다.
외국 기업들이 한국에서 아쉬워하는 또 다른 문제가 노동의 경직성이다. 외투기업들은 노조나 분규를 제일 무서워한다. 어떤 기업은 특정 지역의 노조가 강성이라는 이유로 다른 지역으로 가기도 할 정도로 이 문제를 부담스러워하고 문의를 많이 한다. 우리나라에 투자한 외국 기업들 입장에선 한국의 노동유연성이 높길 바라는 게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그 기업의 본국의 노동시장이 반드시 한국보다 더 유연한 건 아니다.
-최근 외투기업들이 특히 관심을 갖는 업종가 있다면
▶아무래도 바이오 분야에 대한 관심이 높고, 반도체는 늘 그렇듯이 주요 투자 분야이다.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바이오 의약품 위탁생산(CMO) 능력을 보유하고 있고, 세계에서 6번째로 의약품 임상시험이 많이 시행되는 국가다. 글로벌 백신 허브화 전략 등 정책적 지원도 외국 의료바이오 기업들이 한국 투자를 검토하는 유인이다.
-인수위가 최근 유턴기업 지원 강화 방침을 발표했다. IK의 역할이 중요할텐데
▶그렇다. 지난해 26개 기업의 유턴을 지원했다. 유턴 기업에 대한 조세지원이나 여러 혜택이 있는데 그 업무를 IK가 담당한다. IK 내부의 유턴지원팀도 2019년 독립부서로 재편하는 등 기능을 강화했다. 예전에는 중국에서 돌아오는 유턴기업이 많았는데 이젠 중국·베트남 등 아시아 뿐만 아니라 미국과 유럽 등 다양한 지역을 상대로 유턴기업을 유치하고 있다.
그동안 해외사업장을 축소하고 국내 투자를 확대하는 기업만이 복귀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어 지원요건이 까다롭다는 의견이 많았다. 정부는 이런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 지난해 6월부터 첨단·핵심공급망 기업의 국내 복귀 시 해외사업장 철수라는 요건을 면제했다. IK는 이런 제도를 적극 활용해 해외진출 첨단기업의 국내 투자확대를 지원하고, 사후관리를 통해 파악한 현장 목소리를 정부에 전달해 기업 친화적인 국내복귀 지원제도 조성에 힘을 보탤 계획이다.
-최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국내 투자유치에 미치는 영향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일찍 끝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장기전으로 가면서 특히 중소기업들의 피해가 크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 이후 공급망 혼란 등에 대해선 대비를 해오던 터라 아직은 큰 영향이 없지만, 전쟁이 더욱 장기화된다면 공급망 등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질 순 있다.
-올해 IK의 투자유치 목표와 비전이 있다면
▶7년째 200억달러(약 25조원) 이상의 투자유치를 달성했다. 지난해 295억달러로 종전 최고치인 2018년 269억달러를 넘어섰다. 금액도 중요하지만 질적인 측면도 중요하다. 스타트업은 국내에서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만큼 특히 투자 확대에 신경을 쓰고 있다. 아울러 지역균형발전도 큰 과제 중 하나다. 대부분의 투자가 수도권에 몰리고 있어 지방 투자 확대를 위해 지방자치단체를 순회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부산 등 9개 지방지원단과 협력해 비수도권 첨단산업 투자유치 활동을 강화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