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5일 '2023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 시정연설을 하면서 새 정부 첫 예산안에 대한 국회 심의 절차가 사실상 시작됐다. 그러나 여야가 정치적 이유로 강대강 대치를 이어가고 있어 헌법상 예산안 처리 시한인 12월 2일까지 처리가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재정당국 직원들도 "역대 어느 해보다 국회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한숨을 내쉰다.
윤 대통령은 이날 국회 시정연설에서 내년 예산안의 주요 내용을 소개하며 "우리 경제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지속되고 있는 시기에 국회에서 법정기한 내 예산안을 확정해 어려운 민생에 숨통을 틔워주고 미래 성장을 뒷받침해 주시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예산안 시정연설은 '예산안에 대해서는 본회의에서 정부의 시정연설을 듣는다'는 국회법 84조 규정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이날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지난 24일 이뤄진 검찰의 민주당사 내 민주연구원 압수수색에 반발하며 전원 시정연설에 불참했다. 이에 대해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야당이 마치 시정연설에 참여하지 않은 것이 특권이라도 되는 것처럼 정치 상황과 연결지어 보이콧 하는 것은 너무 부적절하고 국회의원의 책무마저도 버리는 형태"라고 비판했다.
내년 예산안 심사 착수 시점부터 여야가 강하게 대립하면서 관가에선 "예산안이 법정 처리 시한 내 통과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사실 지난 5월 새 정부 출범 때부터 기획재정부 예산실 직원들은 공공연히 이런 우려를 내비쳤다. 국회 169석 의석을 보유한 민주당이 새 정부의 첫 예산안을 호락호락 통과시켜 줄 리 없다는 것이다.
정부가 지난 8월 639조원 규모 예산안을 발표했을 때에도 민주당은 올해 총지출 대비 규모의 축소, 주요 사업 예산 삭감 등을 강하게 지적했다. 내년 예산안은 올해 1·2차 추가경정예산을 포함한 총지출(679조5000억원)과 비교하면 6% 줄어든 수준이다. 민주당 정책위원회는 지난 8월 30일 보도자료에서 "감액된 사업으로 인해 국민께 아픔과 불안이 되는 모습이어서 심히 우려하는 바"라고 했다.
특히 민주당은 정부가 이른바 '이재명표'인 지역사랑상품권(지역화폐) 관련 예산을 내년 전액 삭감하기로 한 것에 크게 반발했다. 지역화폐 발행 확대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대선 후보 시절 공약 중 하나다. 정부는 지역화폐 예산은 코로나19(COVID-19) 사태 때문에 한시적으로 투입한 것이며, 원칙적으로 각 지방자치단체가 자체 재원으로 추진해야 할 사업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기재부는 국회가 예산안을 제때 처리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대응방안을 고민 중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예산안의 국회 통과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면서도 "(국회 상황에 따른) 다양한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재부는 이번 예산안이 '취약계층 지원'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을 강조하며 야당을 설득할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도 이날 시정연설에서 "경제가 어려울수록 더 큰 어려움을 겪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것은 국가의 기본적 책무"라며 관련 사업 예산 반영을 소개했다.
기재부 내에선 예산안이 법정 처리 시한인 12월 2일까진 아니더라도 정기국회 내(12월 9일)에만 통과되면 '선방'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내년 예산안 처리가 올해를 넘기는 '최악의 경우'는 상정하지 않는 분위기다. 헌법은 새로운 회계연도가 시작될 때까지 예산안이 의결되지 않으면 전년도에 준하는 수준의 '준(準)예산'을 집행할 수 있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지금까지 정부가 준예산을 집행한 사례는 한 번도 없었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