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임기 중 반드시 완수할 3대 개혁과제로 꼽은 노동·연금·교육개혁이 국회에서 발목이 잡혀 1년째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인기를 잃고 욕 먹어도 미래세대를 위해 추진하겠다고 국가지도자가 결단한 일이지만 여소야대 구도 속 정치논리에 밀려 관련 법안들이 표류하고 있다. 내년 4월 총선까지 통과시키지 못하면 결국 폐기되고 국회 논의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만큼 여야 간 협치를 통해 시급한 법안부터 처리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윤 대통령은 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거야(巨野) 입법에 가로막혀 필요한 제도를 정비하기 어려웠던 점도 솔직히 있다"고 밝혔다. 노동·연금·교육 등 3대 개혁 입법이 국회에서 가로막힌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한 것이라고 참모들은 설명했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3대 개혁에서도 노동개혁에 대한 윤 대통령의 의지가 강한데, 노동개혁을 하고자 해도 입법이 가로막혀 못하고 있다"며 "근로시간 유연화, 노사 법치주의, 노조문제도 법안 통해야지 시행령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3대 개혁과제 가운데 그나마 성과를 거둔 게 노동 분야다. 지난해 11월 파업에 돌입한 화물연대에 엄정 대처해 결국 파업 철회를 이끌어내면서 노조의 탈법적 행태에 경종을 울렸다. 정부·여당은 △ '노조회계 투명화법' △노조원 자녀의 고용세습 등을 막기 위한 '공정채용법' △상습 임금체불 사업주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임금채권보장법 개정안' 등의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여당은 이달 초 노동개혁특별위원회를 출범하기도 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 노동개혁 정책의 핵심인 근로시간 제도 개편은 근로시간 유연화라는 애초 목표가 '69시간제'라는 숫자의 프레임에 갇혀 오해를 사면서 추진 동력을 잃었다. 정부는 추가로 여론수렴을 거친 뒤 새 개정안을 내기로 했다.
야당이 국회에서 강행 처리를 예고한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개정안)' 문제로 정국이 급랭하면서 또 다시 노동개혁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도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할 경우 노동계의 극심한 반발이 예상된다. 이성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민들에게 윤석열 정부의 노동개혁 의지를 보여 지지여론과 추진 동력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연금개혁은 국회 논의의 공회전으로 좀처럼 속도가 붙지 않고 있다. 정부는 국회에서 먼저 여야가 합의해 개혁안을 만들길 기대하고 있지만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연금특위)는 논의를 지지부진하게 이어가며 개혁초안조차 내놓지 못하고 있다. 국민연금의 재정수지 균형을 맞추기 위한 모수개혁은 물론 기초연금, 퇴직연금과의 연계성 강화, 연금 기금운용의 전문성 강화 등 상당한 진통이 예상되는 과제들만 국회에 쌓여가는 중이다.
국민연금 기금은 저출생·고령화로 빠르게 소진돼 2055년에는 고갈된다. 이 와중에 연금 기금 수익률은 지난해 역대 최저 수준인 -8.22%를 기록했다. 결국 '더 내고 덜 받는' 개혁 외엔 대안이 없지만,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표심 눈치를 보느라 연금개혁의 공을 결국 정부에 떠넘길 것이란 회의적인 전망까지 나온다.
학령인구 감소 문제 등에 대응하고 대학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교육개혁 역시 답보 상태다. 자녀의 학교폭력 문제로 국가수사본부장에서 낙마한 정순신 변호사 사태 등 쟁정에 개혁 법안들이 뒷전으로 밀리면서다. 올해부터 3년간 한시적으로 초·중등 교육에 쓰이는 교육세 일부를 떼어내 대학 교육·연구역량 강화를 위해 10조원 가량을 지원하는 내용의 '고등·평생교육지원특별회계법'이 제정된 것 외엔 뚜렷한 성과가 없다. 교육위 소속 국민의힘 측 관계자는 "교육개혁 관련 입법이 시급한데 여당의 입장이나 주장이 반영되지 않고 있어 답답하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의 3대 개혁과제 가운데 가장 크게 주목받은 게 노동개혁이다. 정부·여당이 추진 중인 노동개혁 관련 주요 입법 과제는 △ '노조회계 투명화법' △노조원 자녀의 고용세습 등을 막기 위한 '공정채용법' △상습 임금체불 사업주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임금채권보장법 개정안' 등이다.
국민의힘은 정부의 노동개혁을 뒷받침하기 위해 관련 입법에 속도를 내고 있다. 당 지도부와 정책위원회가 이슈를 띄우면 이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법안을 마련하는 수순이다. 여당은 이달 초 노동개혁특별위원회를 출범하기도 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 3월 취임 후 첫 당정협의 안건으로 노조 회계 투명성 강화를 다뤘다. 노조의 회계 공시 의무를 강화해 이른바 '깜깜이 회계'를 방지하고 노조원의 권리를 강화하는 것이 골자다.
이와 관련,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김형동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달 노조 회계 투명성 강화와 거대 노조 괴롭힘 방지를 위한 '노동조합과 노동관계 조정법 개정안'(이하 노조회계 투명화법)을 대표 발의했다. 노조와 산하조직이 노조 회계 공시시스템을 활용해 규약, 조합원 수, 결산서류 등을 자율적으로 공시토록 하는 내용이다. 또 조합원들이 언제라도 재정 장부와 서류를 열람할 수 있도록 조합원 열람권을 강화하고 회계 서류보존 기간도 3년에서 5년으로 확대했다.
그러나 야당이 반대 취지의 법안으로 맞불을 놓으면서 발목이 잡혔다.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비례)은 현행 노조법에서 규정된 노조의 행정관청에 대한 결산결과와 운영상황 보고 의무를 삭제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여당은 노동시장에 만연한 부조리를 근절하기 위한 대책도 마련하고 있다. 노동개혁 특위에서는 1호 입법안으로 공정채용법(채용 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을 마련하고 당론으로 세운다는 방침이다. 부정채용 시 채용 취소가 가능하도록 근거조항을 마련하고 채용 비리 강요행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국민의힘은 '상습 임금 체불' 문제도 제도 정비를 통해 근절한다는 방침이다. 현행 임금채권보장법 자체를 전면적으로 보완해 상습 임금체불 사업주에 대한 형사 처벌 강화하고 경제적 제재를 강화하는 방안이 담길 전망이다.
윤석열 정부의 노동개혁 드라이브는 노동개혁의 또 다른 큰 축인 근로시간제도 개편이 '주69시간제'라는 비판에 직면하면서 제동이 걸렸다. 실근로시간 단축과 근로형태 유연화라는 취지와는 정반대로 '69시간제'라는 프레임에 갇힌 것이다. 이에 윤석열 대통령이 국민 여론 수렴과 전면 재검토를 지시했고, 특위는 고용노동부가 현재 진행 중인 설문조사 등을 마친 뒤 논의를 해보겠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근로시간제 개편안에 담겼던 포괄임금제 오남용 방지, 휴가 보장 등 현장에서 공감을 얻은 정책에 대해서는 시행령 개정이나 포인트 입법 방식으로 추진해 정부의 노동개혁 정책에 내실을 채운다는 방침이다.
야당이 국회에서 강행 처리를 예고한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개정안)' 문제로 정국이 급랭하면서 또 다시 노동개혁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도 있다. 사용자의 범위를 '실질적 지배력이 있는 자'로 확대하고 노조의 쟁의행위로 인한 사측의 손해배상 청구 권리를 일부 제한하는 내용이다. 윤 대통령이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할 경우 노동계의 극심한 반발이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노동개혁의 성공을 위해서는 국민적 지지를 확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성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많은 정권에서 노동개혁을 부르짖어왔지만 윤석열 정부에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개선, 노사 법치주의 확립이라는 분명한 아젠다를 제시했다는 점은 의미있는 성과"라며 "지난해 말 화물연대 파업 등에 엄정 대응하며 추진 의지에 대한 신뢰감을 심어줬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연구위원은 "이중구조 개혁과제에 대한 공론화가 부족했고 노사정 간 사회적 대화와 국민적 지지를 얻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며 "여소야대 정치 환경에서 법·제도 개선은 정부 주도로 추진하기에 쉽지 않는 만큼 공론화에 주력하는 방향으로 가야한다"고 말했다. 이어 "내년 상반기까지 노사 법치주의를 개혁해서 국민들이 윤석열 정부의 노동개혁 의지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하고 그것을 통해 노동개혁에 대한 지지여론과 추진 동력을 만드는 게 과제"라고 밝혔다.
윤석열 정부는 1년간 원·하청 이중구조 개선, 법치주의 확립 등 노동시장의 오래된 숙제를 풀기 위한 토대 마련에 힘을 쏟았다.
노동시장의 약자 보호를 중심으로 상습 체불 사업주에 대한 강도높은 조사와 제재, 산업 현장에서 근로자 보호 조치 강화 등이 대표적 예다. 고용노동부는 이를 바탕으로 실근로시간은 단축하고 다양한 근로 형태를 보장하는 근로시간제 개편을 발표했지만 '주69시간'이라는 덫에 빠졌다.
고용부는 일종의 '숨고르기' 과정으로 국민 시각과 여러 이해당사자의 심도깊은 논의를 통해 흔들림없는 노동개혁을 완수하겠다는 입장이다. 또 포괄임금제 개선, 공짜 야근 근절과 공정 채용 강화 조치 마련 등을 통해 개혁의 동력을 다시 살리겠다는 구상이다.
지난해 11월 정부는 2026년까지 사망사고만인율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 수준인 0.29?까지 감축한다는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발표했다. 노사가 스스로 위험요인을 발굴·개선하는 '위험성 평가'를 중심으로 '자기규율 예방체계'를 구축한다는 게 핵심이다.
처벌과 감독 등 정부의 사후 규제에서 노사의 사전 예방으로 산재를 감축한다는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처벌 강화로도 잡지 못한 산재를 자율 규제로 대처하는 게 가능한지에 대한 일부 비판도 없지 않다. 위험성평가 작성 의무 규정과 적용 대상 관련한 입법 절차가 마무리되고 있지 않은 상황도 위험 요인이다.
정부는 틀에 박힌 규제보다 각각의 사정에 맞는 위험요인 발굴을 통한 예방이 산재 감축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사업체 감독과 컨설팅을 통해 현장 안착을 위한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노동조합 회계 투명성 강화를 전제로 한 노사 법치주의 확립은 고용부의 핵심 과제다. '깜깜이 회계'를 방지하고 법으로 보장된 노조원의 권리를 보호하겠다는 취지다.
올해 2월 고용부는 노조의 재정에 관한 장부와 서류 등의 비치·보존의무 이행 여부를 보고해달라고 노조에 요청했다. 이를 거부한 노조에 대해서는 현장조사를 실시하고 과태료 등을 부과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장관은 "근로자와 조합원의 권익을 두텁게 보호하고 노사관계의 안정성 제고와 노사 법치주의 확립에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회적 대화는 힘든 숙제다. 노사정 대화를 이끌어야할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사실상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노사정이 극단적 갈등으로 치닫던 대우조선해양 사내하청 파업 당시, 설득과 대화를 통해 타협점을 찾은 이가 이 장관이다. 노동시장의 법치주의 확립이라는 확고한 정부 기준과 노동자 보호·권리 신장이라는 평행선 사이에서 고군분투 중이다.
변화하는 시대와 MZ(밀레니얼+Z세대)의 새로운 요구를 바탕으로 정당한 보상, 근로시간 단축, 자유로운 휴가를 사용하는 사회적 토대를 만들어야 하는 것은 노동개혁의 핵심이다.
앞서 고용부는 3월 '주52시간제' 근로시간 틀 안에서 주 단위 연장근로를 '월·반기·분기·연'으로 선택할 수 있게 하는 '연장근로 총량제'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설계안대로 근무시간을 설정하면 연장근로 시간이 분기는 10.8시간, 반기는 9.6시간, 연간으로는 8.5시간이 된다. 제도 도입에 따라 주52시간제를 유지하면서도 실근로 시간 단축 효과를 볼 수 있지만 '주69시간'이라는 덫에 빠졌다. 이론상 1주차에 69시간, 2주차에 63시간, 3주차에 40시간, 4주차에 40시간이라는 근로조건을 짤 수 있는 탓이다.
고용부는 노동시장의 악습과 관행을 개선하고 청년, 노인 등 노동시장 약자의 보호조치를 강화하면서 개혁의 불씨를 다시 살리겠다는 계획이다. 연간 1조원이 넘는 근로자 임금 체불을 근절하기 위해 구속수사와 신용제재를 강화하는 조치를 발표한 이유다.
청년 근로자가 많은 사업체를 대상으로 △서면 근로계약 체결 △임금명세서 교부 △최저임금 준수 △임금체불 예방 등 4대 기초노동질서 준수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감독도 착수한 상태다.
이 장관은 지난 8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지난 1년은 부족하지만 (노동 개혁의) 기틀과 청사진 마련했다"며 "개혁의 동력은 내용의 정당성, 절차적 정당성, 개혁 과정 등으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적 동의와 지지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노동개혁의 골든타임이다. 노사를 불문하고 법을 지키는 현장 관행을 확립하고 그 토대위에 제도 개혁을 완성시켜나가겠다"며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노동 정책의 변화를 이끌어내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