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이 남긴 청구서[우보세]

세종=정현수 기자
2024.12.05 06:00

[우리가 보는 세상]

[편집자주] 뉴스 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비상계엄 선포에서 해제까지 걸린 시간은 6시간 남짓. 짧다면 짧은 그 시간 탓에 대한민국 경제는 위기에 빠졌다. 저성장의 늪을 걱정하던 시기에 윤석열 대통령 스스로 늪을 만들었다. 정부 경제팀이 숱한 대응책을 내놓았지만 그 행간에서 읽히는 교집합은 허무함이다. 스스로 만든 늪에서 빠져나올 방법을 궁리하는 모습은 궁색하다. 애초에 늪에 들어가지 말았어야 했다.

이제 속속 날아들 청구서만 기다려야 할 처지다. 가장 먼저 반응한 건 외환시장이다. 계엄 선포 직후 원/달러 환율은 장중 40원 오른 1442원까지 치솟았다. 국회가 계엄에 제동을 걸자 이내 상승폭을 줄였지만, 대외 불확실성 속에서 이미 '뉴노멀'로 자리잡은 강달러는 더욱 힘을 받을 수밖에 없다. 외환시장을 방어하고 관리해야 할 시기에 대통령이 나서서 기름을 부었다.

증시도 출렁였다. 주요 외신이 한국 상황을 두고 속보까지 쏟아낸 마당에 외국인 투자자의 이탈을 막기 어려워 보인다. 우리 증시의 고질적인 저평가, 즉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에 나서겠다던 정부가 스스로 더 큰 악재를 만들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겠다며 내세운 '밸류업'(기업가치 제고)은 공허한 외침으로 기록될 것이다. 현재로선 계엄 정국이 가장 큰 디스카운트 요인이다.

무엇보다 시기가 좋지 않다. 주요 기관들은 내년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1%대로 내려잡았다. 저성장 고착화의 길목이다. 미국의 새로운 정부 출범을 앞두고 대외 불확실성은 덩치를 키운다. 윤 대통령이 계엄 선포의 배경으로 거론했던 예비비도 결국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한 예산이었다. 예비비 삭감을 '예산 폭거'라고 규정했지만 불확실성만 더 키웠다.

정부는 최근 10여년 동안 한번도 걱정하지 않았던 국가신용등급까지 우려하고 있다. 유무형의 대외 신인도 추락은 막을 방법이 없다. 국무위원 전원이 사의를 표명한 마당에 정책의 구심점은 더욱 찾기 어려워졌다. 정책 시계가 멈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윤 대통령이 계엄 선포 전날 민생토론회까지 열었던 소상공인·자영업자 대책은 이제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감을 잡기조차 힘들다.

상당수 국무위원, 즉 장관들은 계엄 선포를 위한 국무회의 참석 여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침묵하고 있다. 반대 의견을 피력한 장관들도 상당수 있다고 한다. 그들이 침묵하고 있기 때문에 진실을 알 방법은 없다. 헌법 제 89조는 국무위원의 역할을 국정에 관해 대통령을 보좌하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사의 표명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정부는 지난 2일 야당의 예산안 독주에 대항하기 위해 장관들 명의의 입장문을 남겼다. 당시 입장문에는 세 곳에 밑줄이 그어졌다. 계엄이 남긴 청구서를 정부가 당시 강조하면서 배포한 이 문장으로 대신한다.

첫째, 대외 불확실성으로 그 어느 때보다 엄중한 상황에 처해 있는 우리 경제에 리스크를 더욱 가중 시킬 것이다. 둘째, 글로벌 산업 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우리 산업의 경쟁력을 높일 골든 타임을 놓치게 된다. 셋째,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는 민생과 지역경제를 위한 정부의 지원 계획에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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