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이 뭉쳐져 있어 언뜻보면 마치 거대한 꽃이 연상케 된다. 몸통 색깔은 흰색 줄기에서 시작해 잎으로 올라갈수록 녹색으로 바뀐다. 생육기간은 품종에 따라 50일에서 90일 정도. 바깥을 둘러싸고 있는 잎들은 질기고 맛이 덜하지만, 속으로 들어갈수록 아삭한 식감에 고소하고 은은한 단맛이 난다. 쌍떡잎식물 십자화과에 속하는 두해살이풀 '배추' 얘기다.
한국에서는 '국민채소'로 대접받는 배추이지만, 외국으로 나가면 같은 배추라도 그 맛의 기준이나 쓰임은 달라진다. 가까운 중국만 해도 그렇다. 한국은 타원형으로 밑동의 면적이 좁고 동그란 배추를 좋아하지만, 중국인들은 종다리 모양의 길다란 형태의 배추를 선호한다. 각 국의 품목별 생육기술이 다르고, 지역마다 기후조건에 차이가 있다보니 같은 품종이라도 모양과 생육이 다를 수 밖에 없다.
해외수출에 나선 많은 국내 종자기업들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중 하나가 바로 현지화다. 국내에서 개발한 우수품종을 어떻게 해야 이들 국가에 최적화된 품종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느냐는게 최대 고민이다. 이를 위해 해당국가의 지역별 기후상태, 소비자 선호도 조사 등 필요한 정보를 수집·분석해야 하는 데 여기에 소요되는 시간적·공간적 비용이 만만치 않다. 또 중소 기업 입장에서는 그 비용을 감당하기 쉽지 않다. 국립종자원이 '해외현지 품종전시포'를 운영하고 있는 배경이다.
종자원은 중국, 튀르키예, 미국, 멕시코, 베트남,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등 해외 12개국 20개 지역에 해외전시포(1200여 품종 전시)를 조성·운영하고 있다. 전시포 조성은 국내 육성품종을 현지 전시포에 재배함으로써 해외 현지업체 및 바이어에게 국내 종자업체의 수출유망 품종을 소개해 종자 수출을 돕기위해 2011년 시작됐다.
전시포 운영에 참여하고 있는 국내 업체들도 이를 잘 활용하고 있다. 전시포에서 재배한 채소 등 다양한 품종의 적응성·시장성 평가결과를 공유하다보니 현지 수출품종 선발과 개발에 큰 도움을 받고 있다. 이들 참여기업의 수출도 증가했다. 2020년 26억원에서 2024년 71억원으로 평균 13% 늘어났다.
지난 달 21일 중국 산둥성(省) 자오저우시(市) 종자원 해외전시포 생육평가회(Field Day) 현장. 품종을 출원한 국내 종자업체 관계자들과 현지바이어들이 배추, 고추, 양배추, 파프리카, 무, 브로콜리 등 재배 작물의 생육상태를 꼼꼼히 살펴보고 있었다. 10개 국내 종자업체(우리종묘·소아종묘·대일국제종묘 등)가 참여하고 있는 이 곳 전시포에는 6개작물 87개 품종이 재배되고 있다.
칭다오 현지 바이어인 룽호이룬다 김성 대표는 "한국의 배추 육종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중국 바이어들도 이러한 한국의 우수 종자를 활용해 경쟁력 있는 농산물을 생산하고자 하는 니즈(needs)가 크다"며 "이곳에서 재배된 배추의 경우 숙기가 빠르고 결구성이나 형태가 우수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말했다.
종자원 안형근 경남지원장도 긍정적인 평가를 내놨다. 안 지원장은 "전반적인 재배여건과 제초관리, 관수 등 생육환경이 양호해 작물 재배및 생육은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브로콜리, 무, 양배추 일부 품목의 경우 숙기가 도달하지 않아 추후 특성조사를 실시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생육평가회를 통해 현지 바이어들의 다양한 의견도 경청할 수 있었다. 고추의 경우, 하늘초는 복화방(화방이 여러 개 임을 뜻함)에 길이가 7cm 이상되는 품종을 선호했으며, 내피와 외피의 색이 모두 진한 품종(색도 1만2000 이상)이 요구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배추는 한국의 가을배추와 동일한 작형으로 결구가 빨랐지만 현지에서는 전체적으로 길쭉한 품종과 속이 진한 노란색 배추 수요가 컸다.
해외현지 품종 전시포 사업은 글로벌 진출을 꿈꾸는 국내 종자기업들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되고 있다. 배추 종자의 경우, 주요 소비 시장은 중국과 동남아, 유럽 및 미주 지역으로 그 범위가 넓다. 특히 중국의 시장 규모는 전 세계 시장의 82%를 차지하고 있다. 또 경제발전과 함께 농업인, 소비자 모두 고품질 제품(종자)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어 국내 기업들의 진출이 더 확대될 수 있다.
양주필 국립종자원장은 "산둥성과 같은 해외 전시포에서는 국내에서 육성된 우수품종을 수출국 현지의 품종과 함께 비교 재배함으로써 해외 바이어들을 대상으로 우리 품종의 우수성을 적극 홍보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현지 기후적응성, 수량성, 내병성 등 품종 특성 평가를 통해 수출 유망품종을 발굴하는 한편 상업화 품종을 계약하는 등 '해외현지 품종전시포 사업'을 통해 국내 기업들의 해외시장 확대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