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전에 이미 '짓고 있던' 원전을 멈췄다. 이번엔 아직 '짓지 않은' 원전을 멈춰 세웠다. 공통점이 있다. 기술이나 안전의 문제가 아니다. 정권 교체에 따른 정책 기조 변화가 이유다. 8년전 공사는 8개월 넘게 중단됐고 공론화 끝 최종 결론은 '건설 재개'였다.
정부가 다시 질문을 시작했다. 관련법과 전문가 검토를 거쳐 확정된 신규 원전 건설을 두고서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내년 1월까지 두차례 토론회와 여론조사를 거쳐 최종 결론을 내겠다고 했다. 이미 확정된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을 뒤집는 명분치곤 설명이 부족하다.
전기본은 법적 절차에 따라 2년마다 수립하는 15년짜리 중장기 계획이다. 지난 2월 확정 당시엔 현재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찬성했다.
원전 건설은 본래 '국가 결정형' 구조였다. 1970년대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정부가 그랬다. 빠른 산업화와 전력난 해소가 국가적 과제였다.
변화의 바람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불었다. '주민 수용성' 개념이 들어왔다.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처분장(방폐장) 유치 관련 주민 투표가 대표적이다. 사회적 합의를 위한 첫 실험이기도 했다. 다만 여전히 원전 건설 자체는 중앙 정부의 몫이었다.
2008년 이후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기술'과 '수출'에 방점을 찍었다. 아랍에미리트(UAE)에 원전 수출까지 성공하며 원전 확대 기조에 긍정적 영향을 끼쳤다. 공론화보단 안전성 검증과 홍보에 치중했다. 신규 부지보단 기존 부지 증설을 택했다.
한국 최초의 원전 공론화는 2017년 문재인 정부에서 시작했다. 탈원전 기조 아래 28~30%의 공정률을 보이던 신고리5‧6호기의 운명을 국민에게 맡겼다. 이 결정에 따라 2017년 6월 건설이 일시 중단된다. 471명의 시민참여단이 숙의토론, 전문가 설명, 숙박 토론의 과정을 거쳤고 59.5% 찬성으로 건설 재개를 택했다.
수업료는 적잖았다. 공론화 기간 3개월을 포함해 공사 정상화까지 8~9개월이 걸렸다. 상업운전도 그만큼 밀렸다. 이자 등 금융비용, 공사 중단·재개에 따른 인력·장비 재배치, 협력업체 손실 보전 등 수천억원의 간접비용이 발생했다. 정책 결정 유보에 따른 '시간 비용'이었다.
8개월 넘게 상업운전이 지연됐지만 다행스럽게도 단기 전력수급에는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기존 원전을 가동하고 석탄·액화천연가스(LNG) 설비의 여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상황이 좀 다르다. 당장 '부지 선정' 시계가 멈췄다. 11차 전기본에 따르면 올해 말에는 신규 부지 선정 절차에 착수해야 했다. 하지만 정부는 신규 부지 선정 절차 대신 공청회를 연다.
정부가 12차 전기본 확정(내년 초) 이후로 결정을 미루면서,실제 건설 절차는 빨라야 2027년에나 가능할 전망이다. 사실상 최소 2년의 시간이 증발하는 셈이다.
정부는 1월 안에 정책토론회, 여론조사 등의 과정을 마무리한다는 방침이지만 '일정 변경'과 '절차 지연' 등은 불가피하다.
정부 관계자는 "일상 생활의 변화, 전기의 필요성 등은 국민들도 인식하는 상황"이라며 "원전 건설 등의 기존 계획에 크게 반대할 것으로 보이진 않지만 의견 수렴을 거쳐 최종 결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