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 되려면 개천 떠나라?…고향 남은 비수도권 청년 '가난의 대물림' 심화

최민경 기자
2026.02.11 12:00
한국은행

우리 사회에서 세대 간 계층 이동이 빠르게 둔화되고 있다. 특히 지역 격차가 확대되면서 부모의 경제력이 자녀에게 그대로 이전되는 '대물림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11일 한국은행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공동으로 진행한 'BoK 이슈노트:지역간 인구이동과 세대간 경제력 대물림'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세대 간 경제력 대물림 정도는 최근 세대일수록 뚜렷하게 강화되고 있다.

부모의 소득 순위가 자녀 소득 순위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를 나타내는 소득백분위 기울기(RRS)는 0.25로 추정됐다. 이는 부모 소득 순위가 10계단 오를 경우 자녀 소득 순위도 평균 2.5계단 상승한다는 의미다. 자산 기준 대물림은 이보다 더 강해 자산 RRS는 0.38에 달했다.

특히 1970년대생 자녀에 비해 1980년대생 자녀에서 소득·자산 모두 대물림 강도가 크게 높아지는 모습을 보였다. 1970년대생 자녀의 소득 RRS는 0.11, 자산 RRS는 0.28인 반면, 1980년대생 소득 RRS는 0.32, 자산 RRS는 0.42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약화되고 있는 사회의 인식과도 궤를 같이 한다"고 말했다.

지역 이동, 대물림 완화 효과는 '수도권만'

세대 간 대물림을 완화하는 주요 요인으로는 지역 이동이 꼽혔다. 다른 지역으로 이주한 자녀의 평균 소득 순위는 부모보다 6.5%포인트 상승한 반면, 출생지에 머문 자녀는 오히려 2.6%포인트 하락했다. 이주 집단의 소득·자산 RRS 역시 비이주 집단보다 현저히 낮아 이주가 계층 이동에 긍정적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이 효과는 출생 지역에 따라 크게 갈렸다. 수도권 출생자의 경우 수도권 내부 이동만으로도, 특히 저소득층 자녀를 중심으로 계층 상향 이동이 활발히 나타났다. 반면 비수도권 출생자는 수도권으로 이동했을 때만 의미 있는 소득 개선 효과가 있었고, 광역권 내부 이동의 효과는 과거에 비해 크게 약화됐다.

비수도권 '남아 있으면 가난해진다'

문제는 저소득층일수록 수도권 이동이 어렵다는 점이다. 부모 자산이 하위 25%인 자녀는 상위 25% 자녀보다 수도권 이주 확률이 43%포인트 낮았다. 높은 주거비와 생활비 부담으로 인해 인근 거점도시 이동을 선택하지만, 이 경로는 더 이상 계층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결과 비수도권에서 태어나 고향에 남은 자녀들 사이에서는 '가난의 대물림'이 뚜렷해지고 있다. 비수도권 출생·비이주 자녀 가운데 부모 소득이 하위 50%인 경우, 자녀 역시 하위 50%에 머무를 확률은 최근 세대에서 80%를 넘어섰다. 소득 상위 25%로 진입하는 비율은 과거 13%에서 4%로 급감했다.

연구진은 "비수도권 출생자는 수도권으로 이동할 유인이, 수도권 출생자는 수도권에 잔류할 유인이 점점 커지고 있다"며 "개인의 합리적 선택이 청년층의 일방적 수도권 집중으로 이어지면서 지역 양극화와 사회 통합 약화, 초저출산에 이르는 큰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책 대안으로는 △지역별 비례선발제 도입을 통한 비수도권 저소득층의 상위권 대학 진학 확대 △비수도권 거점대학에 대한 선택과 집중형 투자 △거점도시 중심의 산업·일자리 육성 등이 제시됐다. 연구진은 "용이 될 재목을 강으로 보내는 정책과 함께, 지역의 작은 개천을 스스로 큰 강으로 키우는 전략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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