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뱃길 막는 '환경 규제' 파고… KCL, '녹색 쇄빙선'으로 뚫는다

세종=조규희 기자
2026.03.05 14:30
아시아 최초 TUV AUSTRIA 지정 획득으로 친환경 수출 기업의 글로벌 진출 지원을 본격화하는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KCL) 연구진. /사진제공=KCL

전 세계 무역 시장에 '그린 보호무역주의(Green Protectionism)'의 거센 파도가 몰아치고 있다. 과거 우리 수출 기업의 성공 방정식이 품질과 가격이었다면 이제는 탄소 배출량과 친환경성 입증이 국경을 넘기 위한 필수 비자가 됐다. 대한민국 수출 기업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장벽'이자 생존을 위협하는 위기다.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KCL)이 'K-인증'이라는 새로운 무기로 수출항로를 개척하는 이유다.

KCL은 5일 '플라스틱 대체물질 소재부품장비산업 지원센터'를 거점으로 해외 인증의 국산화와 과감한 규제 혁신을 통해 기업의 기술을 시장의 언어로 번역해 주는 '수출 조력자'로 활동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동안 국내 화이트바이오(생분해성 소재) 기업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개발하고도 해외 기관의 문을 두드려야만 하는 '인증 종속'의 한계에 부딪혔다. 유럽 시장에 진출하려면 제품 시료를 비행기에 실어 벨기에나 독일의 인증기관으로 보내야 해서다.

이 과정에서 기업들은 막대한 비용과 수개월의 대기 시간, 언어 장벽으로 인한 소통의 어려움을 겪으며 타국서 시험을 치러야 하는 '해외 원정'의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시험 과정에서 핵심 기술 레시피가 유출될 수 있다는 불안감도 컸다. 기술은 국산인데 그 품질을 증명할 성적표를 받기 위해 해외에 의존해야 하는 '인증 주권'의 부재 상황.

KCL은 이러한 산업계의 애로를 해소하기 위해 산업통상부, 인천시와 손잡고 '플라스틱 대체물질 소재부품장비산업 지원센터'를 구축해 해외 인증기관의 권한을 국내로 가져오는 데 성공했다. 아시아 최초로 유럽 TUV AUSTRIA로부터 'OK Biobased(바이오매스 함량)'와 'OK Biodegradable MARINE(해양 생분해)' 인증 시험기관으로 동시에 지정받았다.

수출 기업들을 괴롭히는 또 하나의 고질적인 문제는 중복 시험이다. 국내 공공조달 시장 진입을 위해 '환경표지인증(EL724)'을 받고 수출을 하려면 해외 기준에 맞춰 비싼 돈을 들여 해외 인증 시험을 다시 받아야 하는 이중고가 존재했다.

KCL은 한국환경산업기술원(KEITI)과 긴밀한 협업 체계를 구축해 기업이 KCL에서 국내 환경표지인증(EL724)을 위해 수행한 시험 데이터(생분해도, 중금속, 재질 분석 등)를 해외 인증(TUV 등) 심사 신청 시 그대로 활용할 수 있게 됐다.

KCL의 역할은 시험실 안에서만 머물지 않는다. 기술은 개발했지만 낡은 법과 제도에 가로막혀 사장될 위기에 처한 기업들을 위해 정부의 '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적극 활용해 시장의 문을 여는 해결사 역할을 하고 있다.

실례로 세계 최초로 생분해성 공기청정기 필터를 개발한 '(주)한새'는 혁신적인 친환경 제품을 개발하고도 예기치 못한 제도적 장벽에 부딪혔다. 친환경 소재로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현행 폐기물관리법상 폐필터에 대한 별도의 재활용 분류 코드가 없어 전량 소각 처리해야 하는 규제 공백에 놓였었다.

KCL은 TUV 인증 지원을 통해 유럽 수출길을 열어주는 한편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규제 샌드박스 실증특례 지정을 지원했다. 그 결과 '(주)한새'는 폐필터를 회수해 농업용 포트 등으로 재활용하는 자원순환 모델 검증에 착수할 수 있었다. 제도가 기술을 따라가지 못해 사장될 뻔한 혁신 기술을 KCL이 살려낸 것이다.

천영길 KCL 원장은 "기술은 세계 최고인데 낡은 규제나 인증 인프라가 없어서 수출을 못 한다는 것은 국가적 손실"이라며 "KCL은 산업통상부 유관기관으로서 정부의 '수출 플러스' 정책을 최일선에서 이행해야 할 책무가 있으며 단순히 시험 성적서만 발급하는 소극적 태도에서 벗어나 규제 샌드박스 등을 통해 기업이 맘껏 기술을 펼칠 수 있는 운동장을 만들어주는 것이 우리의 소임"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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