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석유 최고가격제를 정유사에만 적용하고 주유소에는 적용하지 않기로 하면서 정책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일부 주유소가 공급가 대비 과도하게 높은 가격에 제품을 판매한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공급가 규제가 실제 판매가 인하로 이어질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12일 산업통상부가 발표한 '석유제품 가격안정화 방안'에 따르면 석유 최고가격제는 정유사가 주유소에 공급하는 가격을 대상으로 한다. 주유소의 판매가는 지역별로 차이가 크고 주유소 경영전략이나 운영방식 등에 따라서도 가격이 달라져 일률적 규제가 어렵기 때문이다.
최고가격제를 도입한 배경이 '시중 석유제품 가격의 급격히 상승'이란 점에서 공급가만 규제하는 방식이 실제 판매가 인하에 도움이 될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석유제품 가격은 지난달 28일 미국·이스라엘이 이란을 공습한 후 급등세를 보였다.
오피넷에 따르면 리터당 1600원 후반을 유지하던 전국 보통휘발유 가격은 이달 2일 1702원으로 1700원대를 넘어선 이후 △3일 1723원 △4일 1777원 △5일 1834원 △6일 1872원 등으로 매일 40~50원 급등했다. 지난 10일에는 1907원으로 고점을 기록한 이후 현재는 보합세를 유지한다.
의문점은 현재 주유소가 판매하는 석유제품은 대부분 국제유가가 급등하기 전에 도입한 물량인데 왜 가격은 실시간으로 오르느냐는 것이다. 주유소업계는 국내 휘발유 가격의 기준이 되는 싱가포르 석유제품가격(MOPS)과 환율이 동시에 급등하면서 정유사들의 공급가도 급격히 올랐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정유사의 공급가격이 급등한 것은 사실이다. 산업부에 따르면 2월 넷째주 리터당 평균 1616.2원이던 보통휘발유 공급가격은 이날 기준 1830원대로 2주 만에 200원 이상 올랐다. 특히 중동전쟁이 발발한 직후인 3월 첫주에 급격히 오르면서 판매가격 불안을 부추겼다는 분석이다.
주유소업계의 주장에도 판매가격의 급격한 상승속도는 여전히 의문이다. 지역별로 다르지만 통상 주유소들은 2~3주 간격으로 제품을 공급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판매하는 제품은 2~3주 전 공급가격이 기준인 셈이다.
휘발유 공급가격은 2월 셋째주 1627.7원에서 넷째주에는 1616.2원으로 오히려 하락했지만 3월 첫주 주유소 판매가격은 전주 대비 55.3원 오른 1746.5원이었다.
소비자들이 석유제품 가격을 '오를 땐 빠르게, 내릴 땐 천천히'라고 느끼는 이유다.
경기 광주시의 한 알뜰주유소는 중동사태 발발 이후 5일 동안 경유가격을 850원 올렸다가 정부의 단속 분위기가 감지되자 하루 만에 600원을 내려 논란이 되기도 했다.
주유소 판매가가 공급가와 상관없는 '고무줄 가격'이라는 의구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최고가격제로 인해 정유사의 부담만 가중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석유사업법에 따르면 최고가격제 시행으로 석유판매업자의 손실이 발생하면 정부는 이를 보전하기 위한 재정지원을 할 수 있다.
문제는 분기단위로 정산해 손실을 보전하기로 하면서 정유사들의 손실이 곧바로 복구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정유사들이 손실액을 자체산정해 정산을 요청하면 최고액정산위원회를 통해 손실액을 검증한 후 정산한다는 계획이다.
분기마감 이후에도 심사에 소요되는 기간 등을 감안하면 손실이 발생한 시점부터 최소 3개월 이상 자체적으로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최고가격제를 해제하는 시점도 명확하지 않아 정유사, 주유소, 소비자 모두 혼란이 가중된다.
앞서 지난 11일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최고가격제를 해제할 수 있는 시중가격 기준을 1800원으로 잠정제시했다. 하지만 산업부는 중동정세, 국제유가, 수급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해제여부를 판단한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