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에 쓸 비상금인데 "초과이익 나누자"…불붙은 '사회연대임금' 논쟁

세종=김사무엘 기자, 우경희 기자
2026.06.01 06:00

반도체가 쏘아올린 사회연대임금 논란(上)

"초과이익 기준은?" 정의도 모호...노동장관이 띄운 '사회연대임금' 논란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27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 기자실에서 열린 출입기자단 차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6.5.27/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세종=뉴스1)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띄운 기업의 초과이익에 대한 '한국형 사회연대 임금' 논란이 확산한다. 기업의 사회적 역할과 협력사와의 상생, 동반성장 등을 강조하는 취지지만 기업의 경영상 이익에 대해 정부가 사회적 대화로 논의하자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이다. 시장경제의 핵심인 사유재산권과 경영 자율성을 근본적으로 훼손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정부 내부에서도 기업의 이익을 어떻게 사용할 지에 대한 이견이 감지된다.

사회연대임금은 지난 27일 김 장관이 기자간담회에서 "대기업의 초과이익을 어떻게 재분배 할 것인지 논의하는 '한국형 사회연대 임금'의 가능성을 모색해야 한다"고 밝히며 처음 화두를 던졌다. 김 장관의 발언은 기업의 이익은 기업만의 노력으로 이뤄낸 성과가 아닌, 주주의 자본적 기여와 노동자의 노동력 제공, 정부의 사회적 인프라 구축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인데 이를 정규직 노동자만 성과급으로 가져가는 것이 옳으냐는 지적이다.

김 장관의 취지는 막대한 초과이익을 정규직만 가져갈 게 아니라 비정규직과 협력사, 지역사회 등과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자는 것이었다. 정부가 특정 방향을 강제하진 않겠다고도 덧붙였다. 그러나 경영계에서는 경영상 판단에 해당하는 잉여이익의 활용에 대해 정부가 나서서 논의해 보자고 하는 것 자체가 부담이라고 토로한다.

무엇보다 정부가 말하는 초과이익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도 모호하다. 김 장관은 "세금, 재무비용, 판관비, 감가상각비 등을 다 떼고도 남은 이익"이라고 설명했다.

회계적으로 보면 임의적립금이 초과이익과 유사한 형태로 보인다. 임의적립금이란 투자 등 미래의 특정 목적을 위해 이익금 중 일부를 사내 유보금으로 남겨놓은 일종의 비상금이다. 삼성전자를 비롯해 국내 주요 상장사들은 이익의 80~90% 이상을 임의적립금으로 적립해 놓고 있다.

임의적립금 규모가 과도하다는 지적도 일부 있지만 미래 불확실성에 대비한 자금인 만큼 이를 온전한 초과이익으로 보기도 어렵다. 황인태 중앙대 명예교수는 "삼성전자 영업이익이 300조원이라고 해도 미래 투자에 100조원을 쓸지, 200조원을 쓸지는 알 수 없는 것"이라며 "초과이익을 정의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반면 경제계는 기업 이익은 위험을 감수하고 자본을 투자한 주주와 경영 성과를 낸 기업의 몫이라고 주장한다. 국가 인프라 지원을 받았다고 해서 초과 이윤을 공공의 것으로 보는 논리는 세금을 내고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면서 인프라를 이용하는 기업에 대한 이중 과세라는 비판이다. 이 같은 분배 압박이 지속될 경우 기업은 공격적인 투자보다 정부의 눈치를 보는 소극적인 경영 행태를 보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반도체는 호황기에 벌어들인 초과이윤을 불황기에 대비한 연구·개발(R&D)과 천문학적인 설비 투자에 쏟아부어야 생존할 수 있는 대표적인 사이클 산업이다. 정부 기조에 맞춰 이윤을 임의로 쪼개기 시작하면 미래를 위한 투자는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정부 안에서 기업 이익의 사회적 재분배보다 미래 성장을 위한 투자에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다른 의견이 나온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지난 29일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기업 이익 활용의 최우선 원칙은 '생산적 재투자'여야 한다"며 "투자와 혁신의 속도가 주춤하는 순간 미래의 주도권은 다른 나라의 몫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노동부는 한국형 사회연대 임금 논의를 위해 오는 1일 토론회를 열 예정이었으나 다양한 의견 수렴을 위해 일정을 연기했다.

정운찬도 언급한 '초과이익공유'…"한국엔 적용 어려워" 지적도

경기 수원시 영통구 삼성전자 수원본사 모습. 2026.05.27. jtk@newsis.com /사진=뉴시스

정부가 화두로 던진 '한국형 사회연대 임금'은 오래 전부터 이어져 왔던 논쟁 거리였다. 대한민국 헌법에 담긴 경제민주화에서 이익공유의 개념을 찾기도 하고 보수 정부의 총리를 지냈던 정운찬 전 국무총리도 '초과이익공유'를 주장하기도 했다. 스웨덴에서는 1950년대부터 사회연대임금을 도입했다.

핵심은 지속가능한 자본주의를 위해 대기업, 중소기업, 지역사회가 동반성장하는 상생 모델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노동시장 구조와 글로벌 산업 경쟁력 등을 감안하면 한국형 사회연대 임금을 적용하기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언급한 한국형 사회연대 임금은 기업이 예상을 뛰어넘는 막대한 이익을 거뒀을 때 이를 사회적으로 어떻게 재분배할지를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직접 노동력을 제공한 노동자뿐 아니라 비정규직과 협력사, 자본적 기여를 한 주주, 지역사회까지도 고려해야 한다는 취지다.

◆ 기업의 이익을 공유? 지속적 논쟁거리

기업의 이익을 여러 주체와 공유해야 한다는 개념은 지속적인 논쟁 거리였다. 기업의 이익이 온전히 기업의 노력만으로 이뤄낸 게 아닌 만큼 기업도 일정 부분 사회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기업도 이익에 대한 세금을 내고 전기 등 각종 인프라 이용을 위한 공공요금을 납부한다. 하지만 산업 육성을 위한 정부의 각종 지원 정책과 외교적 노력, 기업이 안정적으로 경영할 수 있도록 하는 민주주의 시스템과 사회 치안 등 무형의 가치도 기업의 성과에 함께 고려할 요소다.

이익 공유 근거를 헌법에서 찾는 시각도 있다. 대한민국 헌법 119조에는 '경제민주화' 개념이 명시돼 있다.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과 적정한 소득 분배를 유지할 의무가 있고 경제의 민주화를 위해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민주화를 위한 정부의 시장 개입을 어디까지 허용할지는 이견이 있지만 시장경제가 잘 작동하기 위해선 정부가 어느정도 역할을 해야한다는 의미다.

◆ 정운찬 전 총리 2011년 초과이익공유제 주장 논란...스웨덴식 연대임금정책이 모델

이명박 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지냈던 정운찬 전 총리도 2011년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으로 재직할 당시 초과이익공유제 도입을 주장해 논란이 됐다.

정 전 총리가 주장한 초과이익공유제는 대기업과 중소 협력사의 거래관계에서 발생하는 성과를 합의된 규칙에 따라 나누는 시장 내 공정거래 모델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경영계에서는 사유재산 침해라는 반발이 일었고 이건희 당시 삼성전자 회장은 "사회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공산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김 장관의 사회연대임금은 스웨덴식 연대임금정책에서 따온 것으로도 보인다. 1930년대 스웨덴에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동자 간 임금 격차가 문제가 되면서 오히려 대기업 노조에서 먼저 나서서 협력업체의 임금을 높이자는 운동을 전개했다.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1950년대 도입된 연대임금정책이다. '동일 노동 동일 임금' 원칙 하에 대기업 근로자의 임금 상승을 일부 억제하는 대신 중소 협력사의 임금을 높이는 방식이다.

◆ 사유재산권과 경영자율성 침해 자유롭지 못해

정부가 제시한 한국형 사회연대 임금이 상생을 위한 모델이라 하더라도 기업의 경영상 판단을 정부가 강제할 순 없다는 점에서 사회적 저항감이 상당할 것이란 전망이다. 헌법에 명시된 정부의 의무라 해도 사유재산권과 경영자율성을 침해한다는 논란에서도 자유롭기 어렵다.

사회연대 임금을 한국에 적용하기엔 쉽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김덕호 성균관대 교수는 "스웨덴 등 유럽은 산업별 노동조합(산별 노조)의 토양이 잘 닦여 있다보니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동자가 연대해 연대임금을 도입하는 것이 가능했다"며 "반면 우리나라는 대기업 위주로 성장해 왔고 중소기업의 노조 조직률도 매우 낮기 때문에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초과이익의 재분배 논의는 필요하지만 정부가 강제할 일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김 교수는 "산업 생태계를 어떻게 살려나갈 것인가는 경영계가 선제적으로 고민하고 노조와 시민단체가 논의를 주도해 나가야 한다"며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지만 너무 서두르지 않았으면 한다"고 밝혔다.

황인태 중앙대 명예교수는 "기업이 막대한 이익을 거뒀을 때 이를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논의는 어떤 식으로는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기업이 스스로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금 깎아 양극화 해소?"...혁신당에 역풍 안긴 '사회연대임금'
(서울=뉴스1) 이승배 기자 = 서왕진 조국혁신당 원내대표가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2026.1.26/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서울=뉴스1) 이승배 기자

정부가 공론화한 기업 '초과이익' 배분 방식의 '사회연대임금제'는 지난 2024년 총선에서 조국혁신당이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던 제도다. 대기업이 임금 인상을 자제하면 그 재원을 활용해 중소기업 임금은 높이자는 게 취지지만 재계와 노동계 모두가 반발하는 역풍을 불러왔다.

조 대표는 총선 직전이던 2024년 4월 초 사회연대임금제 공약을 발표했다. 혁신당이 당시 총선 비례대표 정당투표에서 12석을 확보하는 등 돌풍을 일으키면서 정치권과 경제계, 노동계를 중심으로 사회연대임금제 공약이 큰 주목을 받았다.

혁신당 구상의 핵심은 대기업이 임금 인상 폭을 최소화하면 정부가 기업에 세제 혜택을 주는 내용이었다. 혁신당은 다만 임금 인상 폭의 기준이나 세제 혜택 재원 마련 방안 등 각론은 제시하지 못했다.

조 대표는 당시 "젊은이들이 중소기업에 가지 않는 게 큰 문제 중 하나"라며 "정부와 대기업, 중소기업이 임금 관련 사회적 대타협을 이뤄 대기업이 임금 인상을 자제하고 중소기업이 임금을 높이는게 공약의 골자"라고 했다.

구체적 방법론이 없는 공약이었지만 보수정치권과 재계는 물론 노동계도 강하게 반발하며 공약 철회를 요구했다. 당시 국민의힘은 "조 대표의 사회연대임금제는 '임금을 깎아서 다 같이 못 살자'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재계도 크게 반발했다. 대기업 임금 인상 억제가 근로자들의 근로 의욕을 저하시킬 것이란 우려였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기업에 세제혜택을 주더라도 근로자들은 혜택을 나눠 갖지 못한다는 우려가 지배적이었다"며 "오히려 일자리가 줄어들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고 했다.

노동계 역시 대기업 노동자의 임금을 깎아 양극화를 해소하겠다는 왜곡된 접근이라며 혁신당을 비판했다.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는 "이름은 연대임금이지만 내용은 대기업 노동자 임금동결법"이라고 했다. 금속노조는 "대기업이 임금인상을 자제하면 면죄부에 인센티브까지 주자는 생각이 어떻게 사회연대"냐 "격차 해소 문제를 노동자와 중소 영세기업에 넘기는 법은 기업연대고 자본연대"라고도 했다.

사회연대임금이 과거 유럽 일부 국가들이 시행했다 실패한 정책인 데다 대기업 노동자의 임금을 깎으면 인재 유출과 기업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도 나왔다. 이런 이유로 더불어민주당도 사회연대임금의 실현 가능성과 부작용을 우려해 당론 차원에서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였다.

여권에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의 천문학적 이익 배분 문제를 정부가 공론화한 만큼 사회적 숙의 과정과 정교한 설계로 불필요한 갈등을 줄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여당 의원은 "투자 여력을 희생하자는 게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하되 중장기적 개혁과제로서의 필요성을 강조해 나가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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