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먼저 짓느냐' 전세계 경쟁…대한민국 최초 'i-SMR' 부지 선정

세종=조규희 기자
2026.06.17 19:31
'2026 부산국제원자력산업전'이 개막한 22일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 제1전시장에서 관람객들이 혁신형 소형모듈원전(I-SMR) 모형을 둘러보고 있다. 2026.04.22. /사진=뉴시스

소형모듈원전(SMR) 건설 부지는 단순한 '발전소 부지'가 아니다. 대한민국이 글로벌 SMR 제조 시장에서 '원전의 TSMC'가 되기 위한 핵심 실증 기지가 마침내 닻을 올리는 것이다. 이번 부지 선정으로 독자 노형인 '혁신형 SMR(i-SMR)'의 국내 첫 상용화 이정표가 세워짐에 따라 해외 수출 시 "국내에서 검증된 기술"이라는 가장 강력한 레퍼런스를 확보하게 됐다. 이에 따라 원전 기자재 공급망의 핵심인 국내 대기업들의 글로벌 수주 레이스도 본격화할 전망이다.

한국수력원자력 신규원전 부지선정평가위원회는 17일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반영된 신규원전(대형원전 2기, SMR 1기) 건설을 위한 후보부지로 대형원전은 영덕군, SMR은 기장군이 선정됐다고 발표했다. SMR 신청지역인 부산 기장군은 87.11점, 경북 경주시는 84.56점을 획득해 최종 기장군이 선정됐다.

현재 전 세계 원전 시장은 "누가 먼저 짓느냐"를 두고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과거 대형 원전이 정부 주도의 공공 인프라 사업이었다면 SMR은 민간 빅테크 기업들이 자금줄을 대며 시장을 견인하는 완전히 새로운 생태계다.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아마존 등 글로벌 IT 공룡들은 AI 데이터센터 구동에 필요한 막대한 전력을 확보하기 위해 SMR 개발사들과 장기 전력구매계약(PPA)을 체결하며 자금난에 허덕이던 제조업체들에 '금융의 다리'를 놓아주고 있다.

국가 간 속도전도 임계점에 달했다.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일본의 자본력과 미국의 기술력을 결합한 '미·일 에너지 동맹'을 강화하며 SMR 조기 확충에 나섰다. 영국은 롤스로이스 SMR 등을 주축으로 내년 초 최종 2개 노형을 선정, 2029년까지 최종투자결정(FID)을 완료한다는 촘촘한 타임라인을 가동 중이다. 스웨덴 역시 최근 롤스로이스를 공급업체로 낙점하고 링할스 원전 부지 등에 SMR 3기를 건설하기로 확정하는 등 북유럽을 중심으로 한 실증 무대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이러한 글로벌 패권 경쟁 속에서 대한민국의 오늘 부지 선정은 전 세계에 "한국이 가장 먼저 상용화 타임라인을 증명하겠다"는 출사표를 던진 것과 다름없다.

에너지 업계 등에 따르면 향후 글로벌 SMR 시장 규모는 1조5000억 달러(약 2160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단순히 전력 판매뿐만 아니라 산업용 열 공급, 해수 담수화 등 확장성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SMR이 이처럼 각광받는 이유는 압도적인 건설 효율성과 안전성에 있다. 거대한 인프라를 현장에서 토목 공사로 짓던 대형 원전과 달리 SMR은 주요 부품을 공장에서 모듈 형태로 찍어내 현장에서 조립하는 '단위 생산 경제'를 추구한다. 덕분에 건설 기간을 대형 원전의 5분의 1 수준인 3~5년으로 단축할 수 있어 막대한 초기 금융 비용 리스크를 혁신적으로 줄인다.

안전성 역시 차원이 다르다. 배관 없이 원자로와 증기발생기 등을 하나의 압력용기에 넣는 '일체형 구조'를 채택해 기존 대형 원전의 아킬레스건이었던 '배관 파단(터짐)'으로 인한 방사능 유출 사고 가능성'을 구조적으로 원천 배제했다. 특히 유사시 별도의 전원이나 조작 없이도 중력과 자연 대류만으로 원자로를 식히는 '무동력 자연냉각' 시스템이 적용되어 대형 사고 위험을 기하급수적으로 낮췄다.

무엇보다 SMR은 용인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처럼 고품질의 안정적인 기저 전력이 필수적인 첨단 산업단지의 '전력 구원투수'가 될 전망이다. 재생에너지의 치명적 약점인 간헐성을 완벽히 보완하면서도 탄소중립(Net-Zero)을 달성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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