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의 테마섹, 호주의 퓨처펀드를 본뜬 '한국형 국부펀드' 설립 계획이 180도 수정됐다. 한국형 국부펀드 설립의 목표였던 국내 첨단산업 육성 지원 기능을 기존 국부펀드인 한국투자공사(KIC)에 신설하는 것으로 방향을 틀었다. 새로운 국부펀드를 설립하는 것보다 지난 21년간 국부펀드로서 쌓아온 KIC의 전문성과 해외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게 국내 전략산업 육성 지원 취지에 효율적이라는 판단에서다.
재정경제부가 14일 국무회의에서 발표한 '하반기 경제성장전략'에 따르면 정부는 연말까지 KIC에 '전략투자계정'을 신설하고 종합형 국부펀드로의 확대 개편을 추진한다. 앞서 발표한 '한국형 국부펀드' 설립 계획을 철회하고, 그 기능을 KIC에 신설하는 게 골자다.
앞서 재경부는 지난해 말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한국형 국부펀드를 신설하고 국내외 전략산업 성장에 마중물 역할을 수행하겠다고 밝혔다. 기존 국부펀드인 KIC는 주로 외환보유액 등 재경부와 한국은행의 외화 자산을 해외에서 위탁 운영하도록 돼있어 고위험·고수익 투자를 하는데 제한적이란 판단에서다.
하지만 정부는 반년 만에 이 계획을 수정했다. 한국형 국부펀드가 하려던 기능을 KIC에 부여하기로 한 것이다. KIC의 기존 '외환보유액 위탁계정'과 엄격히 분리된 '전략투자계정'을 신설키로 하면서다. 외환보유액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저축형 국부펀드' 성격이 짙었던 KIC에 국내외 전략산업에 투자하는 '전략형 국부펀드' 역할을 추가로 부여함으로써 KIC를 '종합형 국부펀드'로 키우겠다는 구상이다.
정부는 한국형 국부펀드를 설립하는 것보다 기존 KIC를 활용하는 게 정책 취지 달성에 더 효율적이라고 판단한 결과라고 설명한다.
민경설 재경부 혁신성장실장은 "한국형 국부펀드 설립 발표 이후 어떤 게 가장 효율적인 방안이냐를 두고 국내외 전문가는 물론, 정부 내부에서도 상당히 많은 논의가 진행됐다"며 "'소버린 웰스펀드(Sovereign Wealth Fund, 국부펀드)가 우리나라에 기존에 있는데 왜 별개 기관을 만들어야 하느냐', '새로운 기관을 설립하면 초기에 안착하는데 상당한 시간도 걸리고, 오히려 기존 국부펀드의 전문성을 활용 못하는 것 아니냐'는 등 국내외 다양한 시각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신설되는 전략투자계정의 재원은 정부출자, 기부금, 운용수익 등으로 충당한다. 발생하는 수익은 재투자, 배당, 국고로의 환수로만 사용할 예정이다.
투자 대상은 △3대 메가프로젝트를 포함한 전략산업 △금융·인프라 등 기간산업 △해외 공급망 등 국가경쟁력·경제안보 관련 산업 등 3대 분야다. 이들 분야에 장기 인내자본(지분투자)을 제공하고, KIC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한 해외 국부펀드 등과의 국내외 협업투자도 추진할 계획이다.
특히 외환보유액에 대한 대외 신뢰도 확보를 위한 방화벽도 세운다. 이를 위해 기존 외환보유액 위탁계정과 신설되는 전략투자계정을 엄격하게 구분해 회계 처리할 방침이다.
다만 일각에선 중복과 과잉, 비효율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여전히 나온다. 150조원 규모로 출범한 국민성장펀드와의 기능 중복 우려 때문이다. 국민성장펀드 역시 주목적은 국내 첨단산업 육성 지원이다. 여기에 정부가 신설을 추진하는 미래대응기금 역시 핵심 전략산업인 3대 메가프로젝트를 뒷받침하는 재원으로 활용될 전망이다.
여당 내에서도 우려가 제기된다. 정태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재경부의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정부가 150조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를 만들고, 20조원 규모의 국부펀드와 미래대응기금도 만들려 하고 있다"며 "지원대상이 모두 전략산업으로 기금-펀드간 관계를 명확히 정리하지 않으면 큰 혼선이 있을 수 있고 비효율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구조개혁은 역대 모든 정부의 숙명과 같은 과제였다. 그러나 단기과제에 집중하다 보니 구조개혁 시기를 놓친 경우가 많았다.
이재명 정부는 성장률 반등세가 두드러진 올해부터 구조적 문제에 본격 대응한다는 계획이다. '골든타임'이라는 표현도 등장했다. 정부가 구상한 구조혁신 분야는 공공·세제·재정과 자본시장 등이다.
재정경제부는 14일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런 내용의 '2026년 하반기 경제성장전략'을 발표했다. 하반기 경제성장전략을 구성하는 핵심축 중의 하나가 구조혁신과 양극화 극복 등 구조적 문제 대응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대표적인 구조혁신 과제는 재정혁신이다. 재정혁신의 전면에 내세운 것은 당초 의도와 달리 운영된다는 평가를 받은 목적세다. 정부는 교통·에너지·환경세, 농어촌특별세, 교육세 등 특별한 목적을 지닌 목적세를 정비한다는 계획이다.
강기룡 재경부 차관보는 "목적세는 장기간 유지되면서 기존의 세출이 배분되는 구조들에서 경직적인 것이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며 "그런 세출 구조를 개편하기 위한 고민이 있다"고 말했다.
특히 농특세가 대폭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면서 목적세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커졌다. 농특세는 취득세와 종합부동산세 등 다양한 세목에 덧붙여 부과되는데, 코스피 주식 거래액의 0.15%의 세율로도 걷는다.
주식시장 호황을 반영하듯 올해 1~5월 농특세 수입은 7조7000억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163.5%(4조8000억원) 늘었다. 농특세는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을 계기로 농어업 경쟁력 강화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도입했고, 목적을 달성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 개편도 재정 당국을 중심으로 추진하는 재정혁신 과제다. 교육교부금은 내국세의 20.79%와 교육세 일부로 조성한다. 재정 당국은 내국세 연동 구조를 폐지하거나 축소하는 안을 검토 중이다. 교육부는 이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정부는 저출생·고령화라는 구조적 문제에도 대응한다. 기초연금은 저소득층 집중지원제도로 개편한다. 정부가 검토하는 방향은 저소득층에 기초연금을 추가로 지원하는 하후상박 구조다. 퇴직연금은 다음달 중으로 단계적 의무화 로드맵을 마련한다.
비과세·감면 등 조세지출은 원점에서 재검토한다. 조세지출은 일몰이 정해져 있지만, 일부 제도의 경우 여러 차례 일몰이 연장되는 등 관행적으로 유지돼 왔다. 정부가 개편을 공식화한 가업상속공제는 공제요건 합리화 등 제도 재설계에 나선다.
자본시장 분야에선 '생산적 금융 대전환'이라는 이재명 정부의 정책 방향을 이어간다. 이에 따라 평가기준일 전·후 각각 2개월 동안 종가의 평균액인 상장주식 평가 방법은 개편을 검토한다. 주가누르기 방지를 위한 조치다.
양극화 극복 역시 경제정책방향의 중요 축이다. 정부는 청년, 중소기업 등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지원에 나선다.
특히 청년 일자리를 회복하기 위해 3대 메가 프로젝트와 첨단산업 부문 등에서 청년 전문 인력을 2030년까지 20만명 이상 양성한다. 납입한도를 대폭 확대한 청년형 ISA(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는 내년 상반기에 출시한다. 대상자는 총급여 7500만원 이하 청년이다.
중소기업은 세제·재정 지원을 추진한다. 각종 혜택 때문에 중견기업으로 성장하길 꺼리는 중소기업을 겨냥해 특별세액감면 점감구간을 신설하고, 재정 분야에서도 고속성장 기업에 지원이 집중되도록 제도를 재설계한다.
정부가 국내생산·비축, 해외생산 등 4단계에 걸친 K-공급망 구축에 나선다. 거시경제, 금융·외환시장 안정을 위한 거시건전성과 관련한 장관급 회의체도 신설한다.
재정경제부는 14일 이같은 내용의 '중동 전쟁 이후 전략'을 포함한 '2026년 하반기 경제성장전략'을 발표했다. 여기엔 거시경제 안정적 운영을 위한 고물가·고환율·고금리 부담 완화 방안, K-공급망·에너지 자립 확보 등이 담겼다.
정부는 중동 전쟁 이후 드러난 에너지·자원의 수급불안 요인을 해소하기 위해 4단계에 걸친 K-공급망 구축 방안을 발표했다. △국내생산 가능품목 △국내생산 불가품목 △국내생산·비축 불가품목 △국내생산·비축 및 해외생산 불가품목 등으로 분류해 단계적 대응방안을 마련하는 내용이다.
먼저 전략적 중요성이 높은 품목을 국내 생산·판매량에 따라 지원하는 국내생산세액공제를 도입한다. 국내 생산·판매량에 생산단위별 적정 단가를 곱한 금액을 법인세·소득세 세액에서 공제하는 방식이다.
국내생산이 불가능한 품목은 전략적 비축에 나선다. 비료용 요소·나프타·원유 등 산업·민생 필수품을 신규비축하고 기존 비축물량도 확대한다. 보관용기 적재·관리 자동화 등 가능한 첨단비축기지 건설을 검토하고 핵심광물 전용 비축기지와 석유비축시설을 증설한다. 오는 8월 차량용 요소 등 재고순환이 필요한 품목은 타소비축 방식 외에 신규 비축모델을 시범 도입한다.
국내생산과 비축이 모두 불가능한 품목은 해외생산능력을 확보한다. 수익성이 낮아 민간 단독 투자가 어려운 요소와 핵심광물 등은 해외공급망투자로 마련한다. 국부펀드, 정책펀드, 개발금융 등을 활용해 해외자원개발, 정·제련, 공급 우선협상권 확보를 지원한다.
국내생산·비축과 해외생산 모두 불가능한 품목은 대체수입 지원을 확대한다. 중동 등 특정국 의존도가 높은 품목을 대체 수입 시 공급망안정화기금으로 전액 저리대출을 지원해 수입 비용을 지원한다. 비중동산 초중질유 정제기술을 개발 추진하고 운임 지원으로 원유 다변화도 확대한다.
에너지 자립 방안도 내놨다. 구체적으로 공공주도의 대규모 태양광 입지를 발굴해 2030년까지 87GW(기가와트)를 보급한다. 하반기 대규모 발전사업자에 재생에너지 설비투자 의무를 부여한다. 2035년까지 산업부문 탄소를 24% 이상 감축하기 위한 목표를 설정하고 철강·석유화학·정유·시멘트·반도체 등 5대 다배출 업종의 탈탄소 전환 로드맵도 마련한다.
고물가·고환율·고금리 등 대응 방안도 담겼다. 3500억원 수준의 농축수산물 최대규모 할인행사를 추진한다. 하반기 중 수입과일·식품원료 등 먹거리 49개 품목에 최대 30%포인트 할당관세를 적용한다.
고환율 대응을 위해 외환건전성부담금 면제(3개월)와 외화지준부리와 고도화된 스트레스테스트 감독상 조치 유예(6개월)를 연장한다. 고환율 부담이 큰 중소기업에 15조원 규모의 긴급경영자금도 지원한다. 고금리 부담을 줄이기 위해 서민금융 지원을 위해 변동금리 대출의 장기·고정금리 전환 활성화 방안도 살펴본다.
달라진 거시경제와 금융·외환시장, 부동산 등 전체 시장의 종합적인 리스크 관리를 위해 통합시장점검간담회도 새롭게 운영한다. 거시건전성 관련 장관·기관장급 공식 회의체도 신설한다.